5월 광주를 알린 청년을 위해…'오월걸상'

시민기자 김진흥

발행일 2020.06.05. 17:37

수정일 2020.06.05. 17:37

조회 452

김의기 열사를 기리는 오월걸상
김의기 열사를 기리는 오월걸상 ⓒ김진흥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공포가 우리를 짓눌러 우리의 숨통을 막아 버리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 우리를 번득이는 총칼의 위협 아래 끌려 다니는 노예로 만들고 있는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40년 전, 5월 광주를 직접 목격한 22살 대학생이 남겼던 글의 일부다. 1980년 5월 30일, 서강대 무역학과 김의기는 계엄령과 탄압으로 알려지지 않은 5월의 광주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진실을 전하고자 했던 그의 울림은 그가 운명했던 장소에 걸상이 되어 시민에게 돌아왔다.

김의기 열사 추도예배 장소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앞
김의기 열사 추도예배 장소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앞 ⓒ김진흥

이 곳에 청년 김의기의 이름으로 걸상이 설치된다.
이 곳에 청년 김의기의 이름으로 걸상이 설치된다. ⓒ김진흥

지난 달 30일, 사단법인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및 김의기열사 오월걸상 건립위원회는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앞에서 '오월걸상(의자)' 설치 및 김의기 열사 40주기 추도예배를 진행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제한된 채 유가족과 추진위원회 등 김의기 열사와 관련된 사람들이 참여했다. 오후 5시 추도예배 중에 오월걸상 제막식을 진행하는 것으로 계획됐다.

짧은 생을 남기고 떠난 김의기 열사(1959~1980)는 5월 광주 모습을 처음으로 알리고자 했던 인물이다. 경상북도 영주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난 김의기 열사는 1976년 서강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된 후, 그는 농촌활동에 힘썼다. 하계 농촌활동, 농업문제연구모임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감리교청년회 전국연합회 농촌선교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김의기 열사가 5월 광주를 알리고자 했던 '동포에게 드리는 글'
김의기 열사가 5월 광주를 알리고자 했던 '동포에게 드리는 글' (출처: 서울시)

서강대학교에 있는 김의기 열사 추모비
서강대학교에 있는 김의기 열사 추모비 ⓒ김진흥

1980년 5월 19일, 김의기 열사는 함평 고구마 농민 투쟁 승리 기념식에 참여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했다. 그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계엄군의 만행을 생생히 보았다. 충격에 휩싸인 김 열사에게 농민회 활동을 통해 안면이 있었던 동화작가 윤기현이 한 마디 건넸다. “지금은 계엄군에게 맞서 싸우는 것보다 광주가 고립되지 않도록 상황을 외부에 알리는 게 중요하다”. 이후 김의기 열사는 계엄군의 포위망을 뚫고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서울은 계엄군의 언론 통제로 인해 5월 광주 소식을 몰랐다. 김의기 열사는 두 눈으로 목격한 광주의 진상을 밝히고자 했다. 1980년 5월 30일, 그는 기독교회관 6층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쓰고 인쇄했다. 이 글은 신군부의 비상계엄전국확대 조치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인쇄하는 도중, 갑자기 계엄군이 들이닥쳐 김의기 열사를 체포하려고 했다. 계엄군과의 실랑이를 벌이던 김의기 열사는 ‘동포에게 드리는 글’ 유인물과 함께 6층 베란다 밖으로 떨어졌다. 당시 계엄군은 떨어진 사람보다 유인물을 수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김의기 열사는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김의기 열사 추모예배가 진행 중이다.
김의기 열사 추모예배가 진행 중이다. ⓒ김진흥

그가 숨을 거둔 자리에서 추모예배가 진행됐다. 김의기 열사를 기리는 자리인 만큼 일반 예배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예배 전, 김의기 열사가 남겼던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낭독하며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의 뜻을 되새겼다. 이어 감리교청년회동지회(이하 감청동지회) 회장 최병천 장로의 사회로 추도예배가 거행됐는데, 찬송가 대신 민중가요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불렀다.

김의기 열사와 관련된 분이 설교 말씀을 전했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이자 김의기 열사가 생전에 다녔던 교회의 목사였던 김영주 목사다. 이어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인 이홍정 목사가 추모사를 전했다.

오월걸상 제막식
오월걸상 제막식 ⓒ김진흥

이후 오월걸상 제막식이 거행됐다. 오월걸상은 5월 광주 현장을 알렸던 김의기 열사를 기리고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서울시 기념사업의 일환이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5월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를 후원하며 도왔다. 서울시는 지난 3월 광주광역시와 5.18 민주화운동 제 40주년 기념사업 공동추진 업무협약을 맺으며 5.18 민주화운동의 뜻을 기리는 데 함께했다.

오월걸상이 유족과 관계자의 손으로 공개됐다. 서울우수공공디자인으로 인증된 걸상을 덮은 천에는 ‘오월을 위해 한 생을 살다간 청년 김의기의 이름으로 여기 한 개 걸상을 놓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걸상 뒷편에는 같은 내용을 영어로 남겼다.

김의기 열사 친누나 김주숙 씨가 걸상에 앉아있다.
김의기 열사 친누나 김주숙 씨가 걸상에 앉아있다. ⓒ김진흥

오월걸상이 제막한 뒤 가장 먼저 앉은 이는 김의기 열사 친누나인 김주숙 씨였다. 감격에 겨운 그는 “여러분 덕분에, 의기가 죽었지만 다시 산 것 같다. 감사하다. 22살 청년 김의기가 말했던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는 올해 나이 65인 제 가슴을 울린다. 그 말에 담긴 뜻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이 걸상은 6월 중에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앞 보도에 설치될 예정이다.


김의기 열사 유족과 관계자들 ⓒ김진흥


대중에 공개된 오월걸상 ⓒ김진흥

추모예배를 마치고 나서 김의기 열사 유족들과 관계자들은 오월걸상에 앉으며 김의기 열사를 추억했다. 김의기 열사에게 말을 전하며 서울로 향하게 했던 윤기현 씨와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이자 남영동 고문치사 사건으로 생을 마감한 박종철 열사의 친형인 박종부 씨, 5·18 서울기념사업회 최수동 회장 등 오월 광주와 민주화 운동에 힘쓴 이들이 다수 참여해 뜻을 같이했다.

김의기 열사 '오월걸상' 
○위치: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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