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도핑도 끝이 좋지 않은 건 매한가지

최순욱

발행일 2016.08.10. 15:05

수정일 2016.08.10. 17:05

조회 725

스웨덴에서 발견된 고대 청동판에 그려진 베르제르커(오른쪽)ⓒWikipedia

스웨덴에서 발견된 고대 청동판에 그려진 베르제르커(오른쪽)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41) 도핑을 한 북유럽의 전사 베르제르커

2016 리우 올림픽이 한창이다. 하지만 지난번에도 밝혔듯이 이번 올림픽은 대내외적으로 분위기가 엉망진창이라는 말이 많은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도핑(금지약물 복용) 스캔들이다. 대회 직전 올림픽 조직위원회(IOC)가 국가 차원의 조직적 도핑이 벌어졌던 러시아 선수단에 사실상의 사면을 내렸던 것 때문에 리우에 모인 선수들 사이에 도핑 전력이 있는 선수들에 대한 혐오감이 극에 달해 있다고 한다. 선수들이 공개적으로 비난 발언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심지어 러시아 선수가 등장하기만 하면 도핑 전력이 있건 없건 관중석에서 야유와 조롱이 빗발친다고 한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선수 중에도 도핑 때문에 욕을 찰지게 먹고 있는 선수가 있다. 바로 수영 경기에 출전한 박태환인데, 며칠 전에도 4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딴 호주의 맥 호튼 선수가 “속임수 쓰는 선수에겐 할 말이 없다”면서 박태환 선수와 역시 최근 도핑으로 징계를 받았던 중국의 쑨양 선수를 겨냥해 경멸을 한가득 담은 독설을 날렸다. (개인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송까지 거쳐 올림픽에 출전했는데 성적도 엉망이라 많은 사람들이 댓글로 “약한 모습 보이지 마라”라거나, “박태환 좀 네비도(박 선수가 투약한 금지약품)라”라며 조롱 섞인 비난을 퍼붓고 있는 중이다. 한때 ‘마린보이’라는 별칭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걸 돌이켜보면 나까지 참담한 기분이 든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막론하고 운동선수가 절대 도핑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도핑은 부당하게 경기력을 향상시킴으로써 공정한 스포츠 경쟁을 저해하며, 둘째, 부적절한 약물을 사용함으로써 선수생명 자체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스포츠 선수라면 누구나 자신이 복용하거나 주입하는 약품을 면밀히 살펴서 도핑 문제가 없도록 해야만 한다. 도핑을 한 선수가 ‘나는 몰랐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 그렇다면 운동선수로서의 책임을 방기해 버린 것이다. 최대한 좋게 표현해도 멍청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신화나 전설 속에도 약물의 힘을 빌려 보통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는 신체 능력이나 정신적 고양 상태를 얻으려고 했던 시도들이 종종 나타난다. 그 중 하나가 곰 가죽을 뒤집어쓴 북유럽 신화 속 살육과 파괴의 전사 베르제르커다. 이들은 평소에는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일단 전투에 돌입하면 엄청난 분노 때문에 짐승과 같은 상태가 되어 상처, 부상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적이 완전히 전멸하거나 자신이 죽을 때까지 싸웠다. 신화에 등장하는 존재지만 고대 북유럽에는 실제로 이런 전사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멀쩡하던 베르제르커가 어떻게 사람의 상태에서 벗어나 ‘짐승’으로 변신할 수 있었을지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데, 이런저런 약물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파리버섯 같은 음식물에 들어 있는 마약, 환각제 성분이나 다량의 알콜(술)을 이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고대의 도핑인 셈인데, 하워드 파빙(Howard D. Fabing)이라는 신경학자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한다. 그는 베르제르커에 대해 ‘…매우 큰 심리적인 압박이 수반되고 이 때문에 베르제르커는 종국적으로 맹목적인 극도의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된 베르제르커는 짐승과 같이 포효하며 방패도 들지 않은 채, 피아 구분 없이 마주치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 도핑이나 고대의 도핑이나 끝이 좋지 않은 건 매한가지다. 하워드 파빙은 베르제르커에 대한 설명에서 ‘하지만 베르제르커는 분노에서 벗어나면 아주 큰 상실감과 무력감에 빠지는데, 이런 상태는 며칠씩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며 인위적으로 일으킨 육체적‧각성 상태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베르제르커들은 대개 전장의 혼란 속에서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극도의 광기에 사로잡힌 채 명이 끊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스포츠계에서 도핑으로 스포츠맨십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선수 생명을 갉아먹는 선수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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