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된 아파트가 충정로에 있다
발행일 2015.07.30. 16:55
대한민국 가장이라면 꼭 가지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필수 부동산, 그것은 바로 아파트가 아닐까 싶다. 시영아파트, 시민아파트 등 아파트 보급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은 온통 아파트로 뒤덮여갔고, 한국 부동산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 최근 뉴타운과 신도시 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좋은 아파트를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꿈도 함께 커졌다.
그렇다면 이 한반도의 곳곳을 뒤덮은 아파트는 어디에 가장 처음 지어졌을까. 1930년 일본인 기업에 의해 회현동에 지어진 미쿠니 아파트가 최초의 아파트라고 전해진다. 당시로써는 유럽에서 유행하던 모더니즘 건축을 보급시킨 최초의 건물이기도 했다. 미쿠니 아파트는 당시 경성 미쿠니상사가 일본인 직원의 숙소 용도로 지어놓은 3층 건물이었다. 곧이어 1932년, 충정로 철길 바로 옆에 토요다 아파트가 세워졌다. 초창기 건물 소유주의 이름이었던 토요다 다네오 씨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곳은 독립을 거치게 되면서 토요다(豊田)의 한국식 발음인 풍전아파트로, 곧이어 유림아파트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어디일까. 해가 바뀌며 철거되고, 전쟁으로 파괴된 1930년대의 다른 아파트와는 달리 끝까지 살아남았던 아파트가 있으니 바로 충정아파트다. 충정아파트는 인민군의 재판소로도 사용되고, 곧이어 유엔군의 호텔로도 사용되며 전란으로 인한 파괴의 위험에서 아슬아슬하게 피해 지나갔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숱한 사연을 품은 채 서울신탁에 매각되었고, 6.25 전쟁 직후에는 한 층을 더 증축했다. 1979년에는 신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충정로가 확장되는 과정 중 건물 일부를 잘라냈던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이 그대로 유지되어왔다.
본래 호텔 및 숙소 용도로 지정되었던 것과는 다르게 현재는 서민아파트로 남아있는 충정아파트는 지금도 아파트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재 충정로에 본사를 둔 여러 기업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며 우뚝 서 있는데, 이 좁아 보이는 건물 안에 지금도 60세대가 살아가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주상복합 아파트’처럼, 아파트 1층에는 많은 상가들이 입주해 있다.
건물의 내부에는 1930년대 당시 유행하던 중앙정(일본식 거실)이 마련되어있다. 당시 일본식 맨션 건물에 유행하던 방식이었다. 공용화장실이 주를 이뤘던 당시에는 집 안에 화장실이 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서울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일으킬 정도였다고 한다.
살아가는 사람들도 다양하다고 한다. 각 세대의 넓이가 26, 49, 59, 66, 82, 99㎡로 다양하기 때문에 원룸도 있고, 4인 가족이 살기 좋은 ‘34평형’ 세대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가가 아닌 세입자로 살아간다고 하는데, 여러모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모두 축소해 놓은 기분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담은 채 우뚝 서 있는 충정아파트. 가끔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사진을 찍고 나가기 때문에, 경비원 분은 “하도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데다가, 입소문을 타고 와서 이렇게 외부인은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붙일 정도이다”라고 털어놓기도 한다. 게다가 오래된 아파트는 음산한 분위기 영화의 배경으로 쓰일 가능성도 크다보니 많은 주민들이 상업 촬영을 극렬히 반대한다고 한다. 주민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2013년 서울시에서는 충정아파트를 ‘100년 후의 보물, 서울 속 미래유산’으로 지정해 두었다. 더욱이 이 건물을 190억을 들여 매입해 문화, 예술단지로 조성할 예정이라고도 한다.
1930년대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서양식의 고급 ‘펜트하우스’를 보여주며 센세이션을, 1950년대에는 전란 속 ‘아픔의 역사’를, 1970년대에는 개발도상국 ‘부유층의 상징’으로 자리를 지켜왔던 충정아파트. 현재는 재개발이냐, 보존이냐를 가지고 둘로 나뉘고 있지만, 최초 아파트로서의 현존 가치를 지키고 충정로의 랜드마크로 우리 곁에 오래오래 남아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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