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청계천 온전히 누리다! 기획전시부터 청계8경 산책까지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3.11.07. 10:00

수정일 2023.11.07. 15:58

조회 1,032

‘북둔도화, 성북천을 거닐다’

청계천을 걷고 싶던 차에 전시 소식도 들려와 ‘청계천박물관’으로 향했다. 내년 3월 10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이어질 전시 ‘북둔도화-성북천을 거닐다’는 지금과는 무척 달라진 성북동과 성북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궁금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했다. 언뜻언뜻 옛 기록들에서 보던 옛 모습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니 좀 설레기도 했다.
청계천 판잣집 뒤 ‘청계천박물관’에서 ‘북둔도화-성북천을 거닐다’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선미
청계천 판잣집 뒤 ‘청계천박물관’에서 ‘북둔도화-성북천을 거닐다’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선미

‘북둔도화’에서 ‘북둔’은 조선 영조 때부터 생긴 이름이다. 당시 성북천 상류는 사람이 살지 않는 황폐한 곳이어서 도적들도 출몰하던 곳이었는데, 영조가 대신들의 건의로 숙정문과 혜화문 사이 골짜기에 둔전을 조성했다고 한다. 둔전은 군대의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경작하는 토지로 군인과 가족들이 옮겨와 마을을 이뤄 살게 되었다. 도성 북쪽에 있어 이 지역은 ‘북둔’이라고 불렸고, 마을을 흐르던 물길은 도성의 북쪽, ‘성북천’이 되었다.
1900년대 초기 혜화문과 성북천 사진. 백동수도원 자리에는 가톨릭대학교가 들어섰고, 혜화문은 위치를 옮겨 복원했다. ©이선미
1900년대 초기 혜화문과 성북천 사진. 백동수도원 자리에는 가톨릭대학교가 들어섰고, 혜화문은 위치를 옮겨 복원했다. ©이선미
영조에게 건의해 성북둔을 만든 두 가문은 풍산 홍씨와 경주 김씨였다고 한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놓고도 대척점에 있었던 두 가문의 이야기도 공교롭다. ©이선미
영조에게 건의해 성북둔을 만든 두 가문은 풍산 홍씨와 경주 김씨였다고 한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놓고도 대척점에 있었던 두 가문의 이야기도 공교롭다. ©이선미

전시는 총 다섯 개 주제로 진행된다. ▴‘한양도성과 성북천’ ▴‘성북동 마을의 형성’ ▴‘동소문 밖 복사꽃 유람’ ▴‘성북천의 도시화’ ▴‘삶과 문화의 순환도시 성북’을 주제로 조선시대부터 오늘까지 성북동의 다양한 기억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시 ‘북둔도화, 성북천을 거닐다’에서 성북동의 과거부터 오늘날까지를 만날 수 있다. ©이선미
전시 ‘북둔도화, 성북천을 거닐다’에서 성북동의 과거부터 오늘날까지를 만날 수 있다. ©이선미

도성 밖 성저십리에 속한 성북동에는 한양이 수도로 기능하는 데 필요한 공간들이 들어섰다. 왕비가 양잠을 장려하며 선잠제를 모시던 선잠단지도 이곳에 있었다. 선잠단지에서는 1993년부터 선잠제 재현 행사가 열리고, 가까이에는 '성북선잠박물관'도 문을 열었다.
지금은 효용이 사라진 선잠단지지만 조선시대에는 의미 있는 국가 제의 공간이었다. 아래는 현재 성북동 선잠단지 모습 ©이선미
지금은 효용이 사라진 선잠단지지만 조선시대에는 의미 있는 국가 제의 공간이었다. 아래는 현재 성북동 선잠단지 모습 ©이선미

조정에서는 북둔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마전과 메주 쑤는 일을 권장하고 지원했다. 그래도 달리 소득이 없었던 사람들이 과실수를 심었다. “…시냇물 양 언덕의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복숭아를 심어서… 매년 늦은 봄에 놀러오는 사람들의 수레와 말들이 산골짜기를 가득 메운다.”(<한경지략> 권2, 명승) 이러한 기록을 보면 지금의 지하철 한성대입구역에서부터 성북동으로 올라가는 곳에도 복숭아나무가 가득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복사꽃 유람을 시와 산문으로 남겨두었다. 그 가운데 이번 전시명이 된 ‘북둔도화’여러 벗이 성북동을 유람하며 함께 시를 지은 기록에서 비롯했다.

딱히 성북동의 복사꽃은 아니지만 임득명의 ‘등고상화’는 당시의 풍경을 그려보게 해주었다. 채제공의 ‘성북동 유람기’는 움직이는 화면에 글이 이어져 혜화문을 나서서 선잠단을 지나 다리를 건너고 북둔에 이르는 과정을 함께 걷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필운대에서 그린 그림이지만 조선 후기 복사꽃 유람의 정취를 보여주는 임득명의 ‘등고상화’ ©이선미
필운대에서 그린 그림이지만 조선 후기 복사꽃 유람의 정취를 보여주는 임득명의 ‘등고상화’ ©이선미

옛 선비들이 그랬듯이 근대에 들어서도 문인과 화가들이 성북동에 자리를 잡았다. 만해 한용운부터 간송 전형필까지 아름다운 역사의 한 장면들이 성북동 곳곳에 자취를 남기고 있다.
성북동 곳곳에는 문화예술인들의 과거와 현재가 배어 있다. ©이선미
성북동 곳곳에는 문화예술인들의 과거와 현재가 배어 있다. ©이선미

1960년대부터 도시 개발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성북천은 복개되고 그 위에 현대식 건물들이 지어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자연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복개한 하천 위에 세워진 건물들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청계고가가 철거되고 청계천이 복원된 것처럼 성북천의 건물들도 철거되고 자연 생태 하천으로 복원이 시작됐다. 그 옛날의 복숭아나무는 아니지만 이제 성북천에는 봄마다 벚꽃이 눈부시게 피어나 아스라이 옛 정취를 느끼게도 한다.
봄이면 성북천에 벚꽃이 눈부시게 핀다. 사진은 2023년 3월 풍경이다. ©이선미
봄이면 성북천에 벚꽃이 눈부시게 핀다. 사진은 2023년 3월 풍경이다. ©이선미

청계천박물관에 갈 때 기대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미디어아트로 만났던 장 줄리앙 푸스가 ‘시정(詩情)’을 주제로 신작 ‘사우다드(Saudade)’를 선보인다. '사우다드'는 포르투갈 파두(Fado)의 정서이기도 한데, 우리 민족의 한(恨)과도 무척 비슷하다고 전해진다. 그 진하고 어두운 노래에 가득 배인 '사우다드'가 ‘북둔도화’ 유람길을 어떻게 담아놓았을지 무척 궁금했다.
‘북둔도화’ 전시실에 들어서면 장 줄리앙 푸스의 미디어아트 ‘사우다드’가 흐른다. ©이선미
‘북둔도화’ 전시실에 들어서면 장 줄리앙 푸스의 미디어아트 ‘사우다드’가 흐른다. ©이선미

전시실로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사우다드’가 ‘흐르고’ 있었다. 작품은 크지 않았지만 마치 그 풍경 속으로 들어선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풍경이 흐르고 ‘복사꽃 유람’에 나선 사람들이 지나가고 꽃과 물과 산과 마을이 흘렀다. ‘사우다드’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사우다드'는 ‘존재의 유무를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막연하고도 끝없는 갈구’를 의미하는 포르투갈 말인데, 작가는 늦봄 저물녘 가벼운 바람 속에 고요하고 평화로운 자연을 바라보는 기쁨, 그 시적인 순간을 그리고 싶었다고 썼다. 그리고 옛 선비들이 고요한 성찰 속에서 완상했을 자연은 이제 ‘신기루 같은 디지털 이미지’로만 남아 있다며 "시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당대 선비들의 정신을 살펴볼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작가의 질문을 마음에 담고 청계천박물관을 나섰다.

가을 깊어가는 청계8경

북둔도화 유람은 이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지만 청계광장부터 고산자교까지 청계천에도 의미를 담은 ‘청계8경’이 있다. 복개됐다가 복원된 까닭에 상류가 좀 인공적인 느낌이라면 ‘청계8경 버들습지’ 쪽은 보다 자연적인 하천이다. 2006년에는 철새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청계천박물관 가까이 고산자교 아래쪽으로는 청계8경인 버들습지가 있다. ©이선미
청계천박물관 가까이 고산자교 아래쪽으로는 청계8경인 버들습지가 있다. ©이선미

청계천을 걷는 일은 우리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청계천박물관이 있는 고산자교부터 청계광장의 첫 다리 모전교까지 스물두 개의 다리에는 최고 권력자들의 이야기부터 서민들의 애환까지 갖가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처연한 슬픔을 간직한 영도교에는 ‘청계4경 빨래터’를 만들어놓았다. 단종이 영월로 떠날 때 정순왕후는 이 다리에서 남편을 떠나보낸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영도교가 젊은 왕과 왕비의 참담한 이별을 들려준다면 광통교에서는 또 다른 의미로 참담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태종 이방원이 아버지의 계비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의 석물들을 가져다 만들었다는 돌다리의 자취 앞에서는 늘 복잡한 심정이 들 수밖에 없다.
단종 임금과 정순왕후의 이별 이야기를 만나는 영도교에는 빨래터를 만들어 놓았다. ©이선미
단종 임금과 정순왕후의 이별 이야기를 만나는 영도교에는 빨래터를 만들어 놓았다. ©이선미
청계천 곳곳에 옛 사진이 있어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이선미
청계천 곳곳에 옛 사진이 있어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이선미

8경부터 거슬러 청계광장까지 가을빛에 물드는 청계천을 걸었다. 하지만 8경을 온전히 만나지는 못했다. 지금 청계천은 노후산책로 정비공사로 황학교에서부터는 종로 측 산책로가 통제되고 있다. 12월 10일까지는 을지로 쪽으로만 통행이 가능해서 청계2경인 광통교와 3경 정조반차도 등을 가까이에서 보지 못했다.

‘북둔도화’, 사라진 성북동의 기억에 젖어 청계8경을 걸어본 시간,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을 준비하는 가을날 적절한 산책이었다.

‘북둔도화北屯桃花: 성북천을 거닐다’ 전시

○ 일시 : 2023. 11. 2~2024. 3. 10.
○ 장소 : 서울 성동구 청계천로 530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실
○ 운영시간 : 화~일요일 09:00~18:00
○ 휴무 : 월요일
누리집
○ 문의 : 02-2286-3410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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