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가을, 아차산 자락에서 만난 단풍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2.11.24. 09:26

수정일 2022.11.28. 10:43

조회 6,390

서울단풍길 96선 중 ‘워커힐로’ 탐방
아차산 생태공원 위에서부터 곧바로 단풍길이 시작된다.
아차산 생태공원 위에서부터 곧바로 단풍길이 시작된다. ⓒ이선미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다시 가을가을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서둘러 가는 것 같던 가을이 조금 속도를 늦추는 것 같은 날씨다. 단풍도 막바지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만날 수 있는 단풍길을 찾아 아차산 자락을 찾았다.

광나루역 1번 출구로 나와서 아차산 생태공원 쪽으로 올라가면 이정표가 보인다. 빅토리아 연꽃까지 피어나는 습지원과 나비정원, 자생식물원 등이 조성되고, 억새와 구절초 등 가을 풀꽃들도 피어나는 생태공원은 한창 공사 중이어서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쉬울 게 없었다. 단풍길이 곧장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차산 생태공원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면 단풍 명소 워커힐 길이 1킬로미터 정도 이어진다.ⓒ이선미
아차산 생태공원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면 단풍 명소 워커힐 길이 1킬로미터 정도 이어진다. ⓒ이선미

드라이빙하면서 단풍 구경도 좋지만 워커힐길은 뚜벅뚜벅 걷는 게 최고다. 인도도 나무 데크로 안전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천천히 여유 있게 걸으며 단풍을 즐겼다. 접근성이 좋아서인지 아이들과 함께한 젊은 부부들도 눈에 띄고 반려견과 산책하는 시민들도 오갔다. 걷다 보면 아차산으로 들어서는 길들이 나있어서 등반하고 내려오는 시민들도 많았다.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단풍놀이하고 있는 부부 ⓒ이선미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단풍놀이하고 있는 부부 ⓒ이선미

나무마다 단풍 드는 시기가 조금씩 달라서 단풍의 색도 저마다 달랐다. 워커힐로에는 가장 마지막에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나무가 쭉 이어져 있어서 아직 충분히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저마다 다른 빛깔로 물든 단풍 ⓒ이선미
저마다 다른 빛깔로 물든 단풍 ⓒ이선미

단풍은 총천연색이라는 표현 그대로였다. 초록부터 연록까지, 붉은색부터 주황, 빨강, 노랑까지 수많은 색이 어우러진 단풍이 시민들을 사로잡았다. 유독 밝고 유독 원색인 나무 아래에서는 목이 아플 정도로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는 시민들도 많았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워커힐호텔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용마도시자연공원을 지나간다. 여러 가지 운동 기구들이 마련돼 있어서 근처 주민들이 숲속에서 체력단련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시민들이 호젓한 용마도시자연공원을 산책 중이다.ⓒ이선미
시민들이 호젓한 용마도시자연공원을 산책 중이다. ⓒ이선미

워커힐로에서 다시 아차산 생태공원을 지나면 시원하게 탁 트인 아차산 어울림광장이 넓게 펼쳐지고, 그 뒤로 지난 10월 정식 개관한 아차산 숲속도서관 책쉼터가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아차산 아래 문을 연 ‘아차산 숲속도서관 책쉼터’ ⓒ이선미
아차산 아래 문을 연 ‘아차산 숲속도서관 책쉼터’ ⓒ이선미

광장에서는 ‘아차산 동행숲길’로 들어설 수 있는데, 이 숲길 끝에서 아차산 둘레길이 이어진다. 아차산 동행숲길은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 등 보행 약자도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데크가 완만하게 이어지는 무장애 숲길이다. 

단풍길을 따라 길을 올라가면 영화사라는 사찰이 있다. 단정해 보이는 경내에 기도하는 분위기가 배어 있어서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 크지 않은 사찰이지만 역사는 신라시대로 올라가고, 깃든 이야기도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1980년 이후 불교가 깊은 산에서 사람 사는 도시로 내려오고 젊은이들에게 다가서는 등 혁신하며 사회와 함께하는 종교로 거듭나게 된 과정에서도 영화사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영화사는 불교가 사회와 함께하는 종교로 거듭나던 장소라고 한다. ⓒ이선미
영화사는 불교가 사회와 함께하는 종교로 거듭나던 장소라고 한다. ⓒ이선미

범종각 바로 옆으로 침목으로 만들어놓은 계단이 이어졌다. 미륵전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설 때마다 붉은 단풍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종종 낙엽이 톡톡 스쳤다. 단풍을 즐기는 시민들과 기도하러 올라가는 불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붉은 단풍길을 한 불자가 올라가고 있다. ⓒ이선미
붉은 단풍길을 한 불자가 올라가고 있다. ⓒ이선미

추운 겨울이 가까워지고 있다. 나무들은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나뭇잎과 이별한다. 적절한 때가 되면 나무는 떨켜를 만들어 뿌리에서 잎으로 가는 영양분을 차단한다. 잎은 점점 초록의 빛을 잃고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색을 드러낸다. 울긋불긋 어여쁜 색으로 찬란해진 잎들은 마침내 낙엽이 된다.
단풍 사이로 보이는 영화사 대웅전ⓒ이선미
단풍 사이로 보이는 영화사 대웅전 ⓒ이선미

떨켜는 나무가 살아가기 위한 전략이다. 잎을 버리지 않으면 긴 겨울을 견딜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다시는 봄도 만날 수 없다. 결국 떨켜는 또 다른 내일을 위한 준비다. 미륵전 기도처에 앉아 고요히 마음을 모으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니, 기도는 마음의 떨켜를 만드는 시간 같았다.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긴 나무처럼, 쓸데없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모으는 시간. 그 뒷모습이 단풍처럼 고왔다.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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