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에서의 소풍! 너무 좋아서 한 번 더 다녀오려고요

시민기자 이준엽

발행일 2022.10.14. 14:30

수정일 2022.10.14. 11:39

조회 938

빌딩 숲 속 조선 왕들의 안식처, 강남구 선릉(조선 9대 성종과 정현왕후)과 정릉(11대 중종) ⓒ이준엽
빌딩 숲 속 조선 왕들의 안식처, 강남구 선릉(조선 9대 성종과 정현왕후)과 정릉(11대 중종) ⓒ이준엽
서초구의 신성한 공간, 헌릉(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과 인릉(23대 순조와 순원황후) ⓒ이준엽
서초구의 신성한 공간, 헌릉(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과 인릉(23대 순조와 순원황후) ⓒ이준엽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소풍 가기 딱 좋은 가을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 날씨가 너무 좋아 선정릉과 헌인릉으로 소풍을 다녀왔다. 

소풍은 언제 들어도 설레인다. 어린 시절, 혹여나 소풍날 비라도 올까 마음 졸이던 추억과 김밥, 사이다, 수건돌리기, 보물찾기 등 행복했던 기억이 한가득 떠오른다. 필자는 은평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터라, 매년 봄, 가을 서오릉으로 소풍을 갔다. 그 시절, 소풍은 원래 왕릉으로 가는 것인 줄만 알았다. 

한참 지나 알게 된 사실이지만, 조선 왕릉으로 소풍을 갈 수 있는 건 서울 시민의 엄청난 혜택이었다. 조선 임금이 하루안에 참배를 다녀올 수 있어야 했기에, 왕릉을 궁궐로부터 80리(약 32km) 안쪽으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조선왕릉은 조선의 왕과 왕비 73명의 무덤으로 모두 42기가 있으며,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풍수사상에 따라 최고 명당에 왕릉 자리를 정하고 주변의 지형과 경관을 그대로 살렸기에, 그 어느 곳보다 역사와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서울 속 가을 피크닉, 도심속 힐링을 위한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조선왕릉은 조선의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조선왕릉은 조선의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준엽
떡갈나무 도토리. 조선왕릉 소풍으로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 할 수 있다 ⓒ이준엽
떡갈나무 도토리. 조선왕릉 소풍으로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 할 수 있다 ⓒ이준엽
백당나무 열매. 봄에 흰 꽃이 피며, 둥근 열매는 가을에 붉게 익어 겨우내 달려있다 ⓒ이준엽
백당나무 열매. 봄에 흰 꽃이 피며, 둥근 열매는 가을에 붉게 익어 겨우내 달려있다 ⓒ이준엽

조선왕릉 소풍의 최고 장점은 도심 속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고즈넉하게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입구에서부터 왕릉 특유의 경건한 분위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경건해진 마음 덕분에 몸도 차분해지고,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느리게, 천천히 걷게 된다. 그제서야 비로소 얼굴에 스치는 바람을 느낄 수 있게 되고, 계절의 변화도 온 몸으로 마주한다. 

선정릉과 헌인릉 곳곳에 의자가 잘 준비되어 있어, 잠시 앉아 쉬면서 흔들리는 잎사귀나 까치, 다람쥐를 넋을 놓고 멍하니 바라 보고 나면,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왕릉이 주는 힐링 에너지로 삶의 기운을 가득 충전하는 듯 하다. 
왕릉이 주는 힐링 에너지로 삶의 기운을 충전해 본다 ⓒ이준엽
왕릉이 주는 힐링 에너지로 삶의 기운을 충전해 본다 ⓒ이준엽

소풍가기 좋은 조선왕릉의 장점으로 왕릉산책로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조선왕릉은 높지 않은 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선정릉 산책로는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가는 숲길이다. 소나무 가득한 언덕 길. 길 전체가 한 눈에 보이지 않으니, 몇 걸음만 들어가도 포근한 숲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이 아늑하다. 빼곡한 빌딩 사이로 넓은 숲을 느낄 수 있게, 이 곳에 왕릉을 조성해 준 선조들에게 늘 감사할 따름이다. 

헌인릉 능역 아래쪽 대모산 남쪽으로 유입되는 빗물로 형성된 습지대에는 오리나무 군락이 자라잡고 있다. 서울특별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 오리나무 숲은 산초나무, 꼬리조팝나무, 노랑물봉선, 가락지 나물 등 습지 식물과 큰오색딱다구리, 직박구리, 맹꽁이 등이 공존하는 자연생태계의 보물창고이다. 사철 흥미진진한 자연학습장이라고 할 수 있다. 
습지대는 습지 식물과 직박구리, 맹꽁이 등이 공존하는 자연생태계의 보물창고다 ⓒ이준엽
습지대는 습지 식물과 직박구리, 맹꽁이 등이 공존하는 자연생태계의 보물창고다 ⓒ이준엽

무엇보다, 왕릉소풍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 의식 수준을 한 층 높여 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선정릉과 헌인릉에 갈 때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사실들이 하나 둘 씩 더 눈에 들어왔다. 조선왕릉이 신성 구역임을 표시하는 홍살문(진입공간), 제례를 올리는 정자각(제향공간), 돌아가신 왕의 공덕을 적은 비석과 이를 보호하는 비각 그리고, 왕과 왕후가 잠든 능침(신성공간) 등 왕릉의 구조를 이미 이해하고, 향과 축문을 들고 걷는 길 '향로'와 임금이 걷는 '어로'가 구분되어 있다는 걸 안다면,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는 이미 왕릉으로 소풍 좀 다녀본 고급 방문객이라고 할 수 있다. 

풀벌레 소리 높아지고, 단풍잎 가득한 깊은 가을 어느 날에,  맛있는 김밥 싸서 한 번 더 소풍 나온다고 마음 깊이 다짐해 본다.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으로 가는 길은 혼령이 지나가는 '향로'와 임금이 걷는 '어로'로 나뉜다 ⓒ이준엽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으로 가는 길은 혼령이 지나가는 '향로'와 임금이 걷는 '어로'로 나뉜다 ⓒ이준엽
계단도 선대왕이 지나다니는 '신계'와 임금이 올라가는 길 '어계'로 나뉘어 있다 ⓒ이준엽
계단도 선대왕이 지나다니는 '신계'와 임금이 올라가는 길 '어계'로 나뉘어 있다 ⓒ이준엽
올 가을에  맛있는 김밥 싸서 한 번 더 소풍오리라 다짐해 본다 ⓒ이준엽
올 가을에 맛있는 김밥 싸서 한 번 더 소풍오리라 다짐해 본다 ⓒ이준엽

시민기자 이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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