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몸과 마음의 쉼표가 되어주는 절, 흥천사 여행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22.07.20. 10:12

수정일 2022.07.20. 18:33

조회 1,535

북악 하늘길이 이어지는 600년 왕실 원찰
아파트가 둘러선 도심 속 사찰 흥천사 ⓒ김종성
아파트가 둘러선 도심 속 사찰 흥천사 ⓒ김종성

좋은 산은 좋은 절을 품는다는 옛말처럼 산이 많은 서울에는 크고 작은 절들이 많다. 북한산 기슭에 자리한 흥천사(興天寺, 성북구 돈암동)는 나무숲 울창한 자연과 도시 아파트 숲 사이에 자리한 사찰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건립한 흥천사는 조선시대 도성 안에 세워진 첫 사찰이다. 마흔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부인 신덕왕후가 잠들어 있는 정릉을 보호·관리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한 절이다. 이런 곳을 원찰(願刹) 또는 능침사찰이라고 한다.  

경전철 우이신설선 정릉역에서 정릉 방향으로 1km쯤 걷다보면 도심에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큰 사찰이 숨어 있다. 주변에 높다란 아파트가 호위하듯 서있는 도심 속 산사지만, 사찰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 새소리가 들려오는 고즈넉한 공간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전각 처마 밑에 걸려있는 물고기 모양의 풍경소리가 청아하다. 산들바람이 불어올 적마다 낭랑하게 울리는 사찰의 풍경은 처마와 지붕에 벌레들이 꼬이지 못하게 한단다. 
인자한 모습으로 불자를 맞이하는 미륵부처 ⓒ김종성
인자한 모습으로 불자를 맞이하는 미륵부처 ⓒ김종성
합장하듯 앞발을 모으고 앉아있는 길고양이 ⓒ김종성
합장하듯 앞발을 모으고 앉아있는 길고양이 ⓒ김종성

폭염으로 인해 사람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사찰 안마당을 거닐다 길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쳤다. 절에 자주 와서 그런지 합장하듯 앞발을 공손히 모으고 얌전히 앉아 있다. 사람을 피하기 바쁜 도시 고양이와 달리 제 구역에서 유유자적하는 절 고양이들이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그래서일까 경내에 서있는 머리에 갓을 쓴 미륵부처의 모습이 유난히 인자하게 다가왔다. 

야트막한 울타리 너머 대나무 발이 쳐진 승방을 바라보며 무더위 속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을 떠올려보았다. 마당 한가운데 가장 뜨거운 7월의 여름날 화려하게 피어나는 연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볕더위 속 탁한 늪이나 연못의 진흙탕 같은 깨끗하지 않은 물속에서 아름다운 빛깔과 자태로 피어나는 연꽃은 볼수록 신비하다. 사찰 건너편에는 한옥으로 지은 이색적인 어린이집이 있다. 2015년 국토교통부 선정 올해의 한옥상으로 뽑힐 정도로 눈길을 끄는 건물이다. 
이성계의 부인 신덕왕후가 잠들어 있는 정릉 ⓒ김종성
이성계의 부인 신덕왕후가 잠들어 있는 정릉 ⓒ김종성
불자들의 소원이 담긴 연등 ⓒ김종성
불자들의 소원이 담긴 연등 ⓒ김종성

신덕왕후가 잠든 정릉과 흥천사는 여러 사연을 품고 있다. 두 곳 모두 본래 이성계가 살던 경복궁에서 가까운 정동에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시 중구 정동(貞洞)은 정릉(貞陵)에서 유래한 오래된 동네 이름이다.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는 조선이 개국한지 5년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난다. 이성계는 사랑하던 아내를 가까이 두고 싶어서 도성 내에 정릉을 만들고 흥천사를 지었다. 그는 흥천사의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밥 수저를 들지 않았다고 한다. 

후일 이성계가 세상을 뜨자 아들 이방원(태종)은 왕위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였던 계모 신덕왕후에 대한 보복으로 그녀를 후궁으로 강등시키고, 정릉을 도성 밖 현재의 성북구 정릉으로 내보낸다. 

기구한 팔자는 흥천사도 마찬가지여서 1510년 연산군 때 숭유억불를 주창하는 유생들에 의해 화재로 불에 타면서 폐사되고 만다. 이후 정릉 부근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정조 때인 1794년 비로소 현재의 자리에 중창하게 된다. 흥천사의 상징과도 같은 동종(銅鐘)은 보물 제1460호로 1985년까지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 쓰이다 사찰로 돌아가지 못하고 현재 덕수궁에 보관 중이다. 조선시대를 대표한 사찰이었던 만큼 흥천사에는 문화재가 즐비하다. 보물로 지정된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 국가등록문화재에 등재된 흥천사 대방 등을 포함해 총 25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흥천사 대표 불전 극락보전 ⓒ김종성
흥천사 대표 불전 극락보전 ⓒ김종성
친근한 호랑이가 나오는 산신각 ⓒ김종성
친근한 호랑이가 나오는 산신각 ⓒ김종성

사찰마다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는 대표 불전인 대웅전과 달리 흥천사에는 극락보전이 주불전이다.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는 불전으로 서울시 유형문화재이기도 하다. 아미타불은 부처임에도 열반(저승)에 들지 않고 극락세계에 머무는 부처다. 스님들이 흔히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염불을 하는데, '아미타불과 관음보살에게 귀의한다'는 의미다. 

절에 가면 꼭 들리는 곳이 산신각 혹은 삼성각이라는 불전이다. 사찰마다 있는 전각으로 산신령과 여러 무신(巫神)을 모시는 곳이다. 불교가 전래되기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믿어오던 무신을 배척하는 대신,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 포용한 것이다. 불교가 오랜 역사와 함께 한국인의 민족종교가 된 비결이기도 하다.

절마다 산신령이나 무신 그림이 달라 유심히 보게 된다. 어릴 적엔 꿈에 나올까봐 무서웠는데 어느 때부턴가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산신각 불화에는 우리 민족의 수호신 동물 범(호랑이)도 꼭 들어간다. 사찰마다 무섭고 용맹하거나, 민화에 나오는 친근하고 재미있는 모습의 호랑이 등 다양하다. 흥천사 산신각의 호랑이는 산신령의 반려견 마냥 귀엽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호랑이 관련 이야기가 많아 호담국(虎談國)이라 불렸다던데 절에 와보니 그럴만했다. 
적조사 불전에 걸려있는 불화 신중도(神衆圖) ⓒ김종성
적조사 불전에 걸려있는 불화 신중도(神衆圖) ⓒ김종성
산책하기 좋은 북악 하늘길 ⓒ김종성
산책하기 좋은 북악 하늘길 ⓒ김종성

흥천사에서 이어지는 숲속 산책길을 따라 걷다보면 과거 암자였던 작은 절 적조사를 만난다. 불전에 들어서면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불화 ‘신중도(神衆圖)’가 눈길을 끈다. '신중'은 인도의 고대 신에서 비롯된 여러 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불교에 전해진 후 재앙을 없애 주고 복을 내려 주는 신으로 믿게 되었다. 적조사에서 밖으로 나가면 가까운 정릉으로 가는 길과 북악산의 명품 산책로 북악스카이웨이가 선물처럼 기다린다. 

북악 하늘길로도 불리는 이 길은 성북구 정릉동 입구에서 북악 팔각정을 지나 종로구 창의동 창의문에 이른다. 차량들이 주로 다니는 길이였지만 차도 옆에 걷기 좋은 데크길, 마사토길이 이어져 있다. 산길이지만 산책로 경사가 완만하고 한편에 북악산의 울창한 나무숲이 이어져 있어 여름에도 많은 시민들이 찾아온다. 해치지 않는 다는 걸 아는지 청설모 같은 산짐승들이 쉽게 존재를 드러내주어 걸음걸음이 더욱 가볍다.    

흥천사

시민기자 김종성

나는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 매일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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