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의 정신이 깃든 곳! '경교장'을 가다
발행일 2022.07.12. 10:40
지난 6월 26일은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 73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은 서대문의 경교장 2층 집무실에서 대한민국 육군 소위이자 주한미군 방첩대(CIC) 요원이었던 안두희가 쏜 총탄에 맞아 서거했다.
경교장은 본래 일제 강점기의 부호 최창학에 의해 1938년에 건축된 저택이었다. 1945년 해방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한 후에는 임시정부의 활동 공간이자,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의 숙소로 사용됐다.
1949년 김구 선생의 서거 이후에는 외국 대사관과 병원 등으로 사용되면서 변형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던 중 1990년대부터 시민사회의 보존운동이 본격화되고, 마침내 2001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 2005년에 국가 사적으로 승격된 후, 2010년부터 복원이 시작되어 2013년에 전시관으로 개관하였다.
현재 경교장의 지하공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경교장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조성되어 있고, 1~2층은 임시정부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 및 재현되어 있다. 지하의 제1전시실에서는 경교장의 역사와 복원과정을 볼 수 있으며, 제2전시실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관련된 각종 사료와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3전시실에는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김구 선생이 피격 당시 입고 있었던 저고리와 바지가 전시되어 있는데, 옷 전체에 혈흔이 남아 있어 그날의 비극이 아직도 생생히 느껴지는 듯하다.
1층의 재현 공간 중 하나인 귀빈식당은 1945년 임정 요인들이 11월 23일 1차로, 12월 1일 2차로 환국 후 한자리에 모여 12월 2일에 임시정부 공식 만찬을 가졌던 곳이다. 오랫동안 염원하던 환국의 기쁨과 함께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 했던 안타까움도 느껴진다.
2층에 위치한 김구 선생의 집무실에는 서거 당시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피격 당시 앉아 있었던 의자와 총탄 흔적도 재현되어 있어 역사의 비극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경교장은 본래 일제 강점기의 부호 최창학에 의해 1938년에 건축된 저택이었다. 1945년 해방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한 후에는 임시정부의 활동 공간이자,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의 숙소로 사용됐다.
1949년 김구 선생의 서거 이후에는 외국 대사관과 병원 등으로 사용되면서 변형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던 중 1990년대부터 시민사회의 보존운동이 본격화되고, 마침내 2001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 2005년에 국가 사적으로 승격된 후, 2010년부터 복원이 시작되어 2013년에 전시관으로 개관하였다.
현재 경교장의 지하공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경교장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조성되어 있고, 1~2층은 임시정부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 및 재현되어 있다. 지하의 제1전시실에서는 경교장의 역사와 복원과정을 볼 수 있으며, 제2전시실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관련된 각종 사료와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3전시실에는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김구 선생이 피격 당시 입고 있었던 저고리와 바지가 전시되어 있는데, 옷 전체에 혈흔이 남아 있어 그날의 비극이 아직도 생생히 느껴지는 듯하다.
1층의 재현 공간 중 하나인 귀빈식당은 1945년 임정 요인들이 11월 23일 1차로, 12월 1일 2차로 환국 후 한자리에 모여 12월 2일에 임시정부 공식 만찬을 가졌던 곳이다. 오랫동안 염원하던 환국의 기쁨과 함께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 했던 안타까움도 느껴진다.
2층에 위치한 김구 선생의 집무실에는 서거 당시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피격 당시 앉아 있었던 의자와 총탄 흔적도 재현되어 있어 역사의 비극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경교장의 전경. 지금은 높은 병원 건물에 둘러싸여 있지만 건립 당시에는 전체 면적이 1,500평이 넘는 큰 저택이었다고 한다. 2층 좌측이 김구 선생의 집무실이 있던 곳이다. ⓒ이정규
경교장에 들어서면 백범 김구 선생의 흉상이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이정규
지하에 위치한 제1전시실은 경교장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사진은 임시정부 청사로 사용될 당시의 층별 모형과 복원 모형이다. ⓒ이정규
제2전시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을 조명하고 있다. 사진은 임정 요인들이 환국하기 직전, 귀국에 대한 감회를 적은 것이다. ‘새 살림 차리어 잘 사세’라는 소박한 듯 보이는 문구가 모든 이의 바람을 대변하는 것 같다. ⓒ이정규
제3전시실에는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은 김구 선생의 시계인데 원래는 윤봉길 의사의 시계였으나, 의거를 위해 상하이 홍커우공원으로 떠나던 날 김구 선생의 시계와 맞바꾼 것이다. ⓒ이정규
김구 선생이 저격을 받아 서거할 당시 입고 있었던 저고리와 바지로, 옷 전체에 혈흔이 남아 있다. ⓒ이정규
김구 선생의 서거 당일에 조각가 박승구가 뜬 데드마스크이다. ⓒ이정규
1층에 위치한 응접실의 모습. 1945년 12월 3일 임시정부의 환국 이후 첫 번째 국무위원회가 개최된 곳으로, 김구 주석의 주재 하에 이승만을 비롯한 임정 각료들이 참석하였다. ⓒ이정규
1층에 위치한 임시정부 선전부 활동공간. 선전부는 임시정부의 홍보 및 언론관계를 담당하였다. 우측부터 유동열, 김규식, 이승만, 이시영, 선전부장 엄항섭의 모습이다. ⓒ이정규
1층 귀빈식당. 1945년 12월 2일 임시정부의 공식 만찬이 개최되었고, 김구 주석이 서거하였을 때 빈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이정규
2층 응접실(서재). 임시정부 환국 후 김구 주석과 국내 정당 대표들과의 회담 및 국무위원회가 열렸던 곳이다. ⓒ이정규
2층 응접실에는 임시정부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벽난로가 있다. 벽난로 위 사진 속의 김구 선생이 1946년 1월, 바로 이 벽난로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규
임시정부 요인과 수행원들이 환국한 후 임시정부 요인 숙소로 사용된 공간이다. 경교장에서의 생활은 경제적으로 결코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구 선생은 겨울에 난방조차 할 수 없어 혜화동 지인의 집에 가서 묵고 출근하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정규
2층 김구 선생의 집무실 앞에는 서거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이정규
김구 선생의 집무실(거실). 김구 선생은 창가의 의자에 앉은 채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서거하였다. ⓒ이정규
김구 선생이 서거한 창가 의자 뒤편 유리창에 당시의 총탄 흔적이 재현되어 있다. ⓒ이정규
경교장
○ 위치: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강북삼성병원 내)
○ 교통: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도보 5분
○ 관람시간: 09:00~18: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 관람료: 무료
○ 홈페이지
○ 문의: 02-735-2038
○ 교통: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도보 5분
○ 관람시간: 09:00~18: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 관람료: 무료
○ 홈페이지
○ 문의: 02-735-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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