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길에 새겨진 역사 속 한 장면, '역사문화답사' 참여기

시민기자 박칠성

발행일 2022.06.28. 11:40

수정일 2022.06.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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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문화답사'에 참가한 시민들의 목록을 확인하는 운영위원들 모습
'서울역사문화답사'에 참가한 시민들의 목록을 확인하는 운영위원들 모습 ©박칠성

해마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시민들과 함께 서울 사람들의 삶과 역사의 흔적을 찾아 곳곳을 답사하는 <서울역사문화답사>를 운영하고 있다. 2021년까지 북한산·도봉산 등 외사산 일대, 한강 일대, 인왕산·백악·낙산·남산 등 내사산 일대 권역별 답사를 한 결과물을 <서울역사답사기> 시리즈로 발간한 바도 있다. 올해는 '역사 속 한 장면을 따라 서울의 길을 걷다'라는 주제로 한양에 살았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알아보고자 답사를 기획했다.

필자는 지난 6월 25일 '역사 속 한 장면을 따라 서울의 길을 걷다' 기획 중 상반기 마지막 4회차로 '1691년 숙종, 환궁 길에 동묘를 찾다' 역사문화답사에 참여했다. 12시 30분경 답사 시민들의 모임장소인 정릉역(우이신설선) 2번 출구에 올라서니 많은 답사 참여 시민들이 보였다.
 답사 일정과 일부 변경 사항을 알리고 있는 강사 심승구 교수와 참가 시민들
답사 일정과 일부 변경 사항을 알리고 있는 강사 심승구 교수와 참가 시민들 ©박칠성

우선 필자는 참가 명단 확인 후 답사노트 한 권과 수신기를 수령하고, 마스크 착용에 대한 지시도 받았다. 이번 답사에서 강사로 활동해주실 한국체육대학교 심승구 교수는 여름 무더위 때문에 정릉과 흥천사까지 걷고 보제원과 안암천(성북천)은 간략한 설명으로 대체하며, 동관왕묘는 지하철로 이동한다고 일정 변경 안내를 해주셨다. 
정릉 매표소에서 입장권 구매하고 있는 참가 시민들
정릉 매표소에서 입장권 구매하고 있는 참가 시민들 ©박칠성
신덕왕후 왕릉 참배 차 올라가는 시민들
신덕왕후 왕릉 참배 차 올라가는 시민들 ©박칠성

첫 방문지인 정릉은 조선 왕조 최초의 왕비인 신덕왕후의 묘소로 조선 최초의 왕릉이다. 600m 거리의 좁은 도로와 인도를 안내자를 따라 질서를 지키면서 걸어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 후 입장했다. 가장 먼저 신덕왕후의 묘소에 도착해 참배했는데, 봉분에는 난간석과 병풍석이 없었다. 혼유석, 문인석, 석마 각각 1쌍의 석양과 석호가 있었지만 원형이 아니라고 했다. 강사님은 사각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두 개의 고석만 옛 능에서 옮겨온 것이고, 장명등에는 상부의 주두가 없다고 설명해주셨다. 

내려와서 홍살문 근처 그늘 진 축대에 앉아 태조와 신덕왕후의 처음 만나게 된 아름답고 재미있는 버들잎 설화와 왕릉 봉분의 안타까운 수난사를 들었다. 1392년 조선이 개국하자마자 현비로 책봉되었다가 원비인 신의왕후가 태조 즉위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신덕왕후가 조선 왕조의 최초 왕비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성계와의 사이에서 방번, 방석 두 왕자와 경순공주를 낳았으며, 세자인 방석의 왕위 계승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는 강의가 이어졌다.  
옛 능에서 옮겨 온 상부의 주두가 없는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두개의 고석들
옛 능에서 옮겨 온 상부의 주두가 없는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두개의 고석들 ©박칠성

신덕왕후에게 남다른 사랑을 쏟았던 이성계는 도성 안에 왕릉 터를 정하는 것은 물론 그 봉분 우측에 자신의 봉분인 수릉을 정하고 능호를 정릉으로 정했다고 한다. 서울 한복판인 영국대사관 자리와 경향신문 문화체육관 근처로 추정해왔으나 신덕왕후 능의 석물로 보이는 문인석이 서울 중구 정동 소재 주한 미국대사관 내에서 발견되면서 정릉의 최초 위치가 변경되었다. 이 지역을 오늘날은 정릉이 있던 곳이라 정동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계모의 아들인 방석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긴 이방원은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신덕왕후의 아들인 방번과 방석을 죽이고 동복형인 방간이 자신을 치려고 하자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결국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태조와 자신의 친어머니 신의왕후를 함께 모시고, 신덕왕후를 후궁의 지위로 격하해 신위를 모시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여 년 뒤인 선조 14년(1581)과 그 뒤 현종 10년(1669)에 마침내 복위 되면서 신주가 종묘에 봉안되었다고 한다. 
흥천사는 참선도량의 절로 알려진 사찰이다.
흥천사는 참선도량의 절로 알려진 사찰이다. ©박칠성

이어 신덕왕후를 먼저 떠나보낸 이성계는 그녀를 곁에 두고 싶은 마음으로 지금의 정동 부근에 왕후의 명복을 비는 능침사찰인 흥천사를 지었는데 조선시대 도성 안에 세워진 첫 사찰이다. 흥천사는 연산군 때 불타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정조에 의해 현재 자리에 새로 지어졌다. 이성계가 신덕왕후를 그리면서 들었던 종소리를 낸 흥천사 대종은 보물 제1460호로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다고 한다. 
흥천사에서 강의하는 강사와 수신기를 끼고 수강하는 서울시민들
흥천사에서 강의하는 강사와 수신기를 끼고 수강하는 서울시민들 ©박칠성

보제원은 1393년부터 1895년까지 임금이 집을 떠나 여행하는 백성들에게 숙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굶주린 백성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한의사를 배치해 의지할 곳 없는 가난한 병자들을 치료해주던 구휼기관이다. 무더위에 힘들어 하는 교육 참가시민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흥천사를 방문하는 대신에 간략한 해설 강의로 대신했다.  
동관왕묘에서 강의 내용을 적으면서 열심히 수강하고 있는 시민들
동관왕묘에서 강의 내용을 적으면서 열심히 수강하고 있는 시민들 ©박칠성

최종 목적지인 서울시 숭인동에 있는 문화재 지정보물 제142호 서울 동관왕묘는 1601년 조선후기 촉나라 장수 관우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관왕묘는 무장을 모시는 무묘(武廟)이며 조선시대에 1598년 남관왕묘(南關王廟), 1883년 북묘, 1902년에 서묘가 세워졌으나 현재는 동관왕묘만 남아 있다. 남관왕묘는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명나라 장군 진인(陳璘)이 부상으로 서울에 머물었던 후원에 건립한 것이며 그 뒤 동대문 밖에 동관왕묘가 설치됐다. 숙종 때부터는 왕이 능행 때 남관왕묘에 들르기도 했다고 한다.
동관왕묘 사당내 관우상과 주위에 걸려 있는 편액과 주련들
동관왕묘 사당내 관우상과 주위에 걸려 있는 편액과 주련들 ©박칠성

동묘 내에 있는 사당 건물은 남북축선상에 배치된 중국 묘사(廟祠) 건축의 영향을 받은 중국풍의 건축양식이라고 했다. 서울 동관왕묘의 정전에 있는 편액(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과 주련(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 삼아 세로로 써서 붙이는 글씨)이 무려 49개나 되며 이 글을 번역한 내용이 답사노트에 기록돼 있다. 오후 5시 쯤, 장장 4시간에 걸쳐 진행된 '1691년 숙종, 환궁 길에 동묘를 찾다' 프로그램 강의가 끝이 났다. 

이번에 걸으면서 답사한 역사탐방 길에서 버들잎 설화의 주인공인 태조 이성계와 왕비인 신덕왕후의 운명적 만남의 이야기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감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 조선의 초대 왕후이고 최초의 왕릉이었지만 태종이 즉위하면서 위상이 바뀌는 슬픈 이야기로 시작돼 이후 시호와 존호가 복귀되고 신주가 종묘에 봉안되었다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강의해주신 한국체육대학교 심승구 교수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역사 속 한 장면을 따라 서울의 길을 걷다' 문화답사의 상반기 행사는 끝났다. 하지만 9월부터 11월까지 매달 1번 씩, 3번 하반기 행사가 열릴 예정이며, 시민 여러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9월에는 '한양 선비들의 출근길을 따라가다', 10월에는 '조선통신사 한양을 출발해 1년 여정 길에 오르다' , 11월에는 '1795년 정조 어머니 모시고 수원행차 길에 오르다'를 주제로 열린다고 하니 꼭 한번 참여해보길 추천한다.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
○ 문의 : 02--2413-9511(서울역사편찬원)

시민기자 박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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