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기지 둘레길'에서 일제강점기·한국전쟁 역사를 보다

시민기자 이용수

발행일 2022.06.28. 13:45

수정일 2022.06.28. 16:30

조회 3,118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용산을 중심으로 철도를 만들고 군대를 주둔시킨다. 이때부터 용산역은 침략과 약탈을 위한 일제의 군수 물자 운반 기지로 사용되는데, 일본이 군사기지를 건설했던 곳이 바로 오늘날 용산공원 자리다.

조선시대에는 현재의 효창공원 자리를 용산이라고 불렀지만, 일제강점기에 용산역 일대를 ‘신용산’이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지금도 그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1945년 광복 후에 일본군이 떠난 자리에는 미군정이 들어서게 된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한국전쟁 초기 용산은 국방부, 육군본부, 미군사고문단이 함께 위치했던 군사상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러나 북한군과 격전을 벌이면서 용산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된다. 특히, 1950년 7월 16일 미군은 북한군이 점령한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용산기지 일대를 대규모로 폭격하면서, 미처 피난 가지 못했던 용산 주민들의 희생이 컸다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1957년 용산기지에 주한미군사령부가,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가 들어선다.

2022년, 용산 국방부 청사에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섰다. 이와 함께 120년 만에 용산공원 일부가 시민들에게 개방되면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6월 26일을 끝으로 용산공원은 다시 문을 닫고 재정비에 들어간 뒤, 오는 9월 시민들에게 다시 개방될 예정이다.

아직 용산공원을 가보지 못했거나, 용산공원에 다녀온 뒤 아쉬움이 남는다면,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용산 곳곳에 남은 근현대 역사의 흔적을 따라 '용산기지 둘레길'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용산역을 시작으로 연복사탑 중창비, 용산미군기지 14번 게이트, 왜고개 성지, 옛 간조 경성지점, 옛 경성전기주식회사 용산출장소 터, 삼각지 화랑거리를 거쳐 삼각지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일제강점기 당시 용산역 일대를 '신용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용산역 일대를 '신용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용수
용산역 광장에 있는 '강제징용 노동자상',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돼 머나먼 이국땅으로 떠난 조선 노동자들을 기리고 있다.
용산역 광장에 있는 '강제징용 노동자상',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돼 머나먼 이국땅으로 떠난 조선 노동자들을 기리고 있다. ⓒ이용수
'연복사탑 중창비'는 용산역 옆 철도회관 입구 안쪽에 있다. 개경에 있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용산역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연복사탑 중창비'는 용산역 옆 철도회관 입구 안쪽에 있다. 개경에 있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용산역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용수
1928년 지어진 옛 용산철도병원 건물에 지난 3월 '용산역사박물관'이 개관했다.
1928년 지어진 옛 용산철도병원 건물에 지난 3월 '용산역사박물관'이 개관했다. ⓒ이용수
일제강점기에 조선군사령부의 출입문이 있었던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은 이곳 근처에 병원을 세워 사용했다. '용산미군기지 14번 게이트'는 최근 용산공원 시범개방을 하면서 주출입구로 사용됐다.
일제강점기에 조선군사령부의 출입문이 있었던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은 이곳 근처에 병원을 세워 사용했다. '용산미군기지 14번 게이트'는 최근 용산공원 시범개방을 하면서 주출입구로 사용됐다. ⓒ이용수
14번 게이트 앞은 주한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보세 옷 가게가 많았다. 지금은 맛집과 카페가 즐비한 '용리단길'이 들어서 있다.
14번 게이트 앞은 주한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보세 옷 가게가 많았다. 지금은 맛집과 카페가 즐비한 '용리단길'이 들어서 있다. ⓒ이용수
'왜고개 성지'는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한 한국인 첫 천주교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시신이 잠시 모셔졌다가 이장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현재 이곳에 천주교 군종교구청, 천주교 국군중앙 주교좌성당이 들어서 있다.
'왜고개 성지'는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한 한국인 첫 천주교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시신이 잠시 모셔졌다가 이장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현재 이곳에 천주교 군종교구청, 천주교 국군중앙 주교좌성당이 들어서 있다. ⓒ이용수
'옛 간조 경성지점'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 기반 시설 구축의 중심에 있었던 기업이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피해를 입자 1926년 철근콘크리트 2층으로 개축했다.
'옛 간조 경성지점'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 기반 시설 구축의 중심에 있었던 기업이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피해를 입자 1926년 철근콘크리트 2층으로 개축했다. ⓒ이용수
1970년에 준공한 노란색 6층 건물 삼각맨션 앞에 '옛 경성전기주식회사 용산출장소 터'가 있다. 1915년 경성전기 주식회사는 서울의 전기, 전등, 전차 사업을 독점했으며 광복 이후 한국전력주식회사(현 한국전력공사)가 됐다. 오늘날 한전 용산 창고로 사용했던 건물 2동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이용수
1970년에 준공한 노란색 6층 건물 삼각맨션 앞에 '옛 경성전기주식회사 용산출장소 터'가 있다. 1915년 경성전기 주식회사는 서울의 전기, 전등, 전차 사업을 독점했으며 광복 이후 한국전력주식회사(현 한국전력공사)가 됐다. 오늘날 한전 용산 창고로 사용했던 건물 2동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이용수
삼각지는 '세모꼴로 생긴 땅'이란 뜻이다. 한강과 서울역, 이태원으로 향하는 세 갈래 길이 만나는 곳이다. 1939년 삼각지 교차로 로터리가 생겼으며, 가수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로 지명이 유명해졌다.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타원형식 입체교차로가 들어섰다가 1994년 철거됐다.
삼각지는 '세모꼴로 생긴 땅'이란 뜻이다. 한강과 서울역, 이태원으로 향하는 세 갈래 길이 만나는 곳이다. 1939년 삼각지 교차로 로터리가 생겼으며, 가수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로 지명이 유명해졌다.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타원형식 입체교차로가 들어섰다가 1994년 철거됐다. ⓒ이용수
용산기지 둘레길 '한강로' 산책 코스
용산기지 둘레길 '한강로' 산책 코스 ⓒ용산공원 시민소통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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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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