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저축하고 도움을 인출해요…요즘 품앗이 '서울시간은행'

시민기자 김윤경

발행일 2022.06.20. 13:45

수정일 2022.06.20. 17:11

조회 5,515

서울시간은행 시청지점 회원들
서울시간은행 시청지점 회원들 ⓒ김윤경

“각자 잘 하는 걸 나누다 보니, 지역사회뿐 아니라 개개인 삶의 질까지 높이는 효과가 생기더라고요.” 자기 시간을 할애해 이웃을 도와 시간화폐를 적립하고, 또 도움이 필요할 때 그 화폐를 사용하는 신개념 품앗이가 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9일부터 서로 돕는 문화를 확산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보완할 ‘서울시간은행’을 시범운영하고 있다.
서소문청사 9층 서울시간은행 포스터가 눈에 띈다.
서소문청사 9층 서울시간은행 포스터가 눈에 띈다. ⓒ김윤경

서울시간은행의 지점은 4곳. 국민대-정릉지점, 서울시청지점, 방아골 종합사회복지관지점, 홍은동 타임뱅크하우스지점 등으로 지점마다 그 유형이 다르다. 처음 시작한 국민대-정릉지점은 국민대 산학협력단이 있으며 인근 주민들과 오랫동안 공동체 활동을 해왔다. 따라서 대학과 지역의 상생을 위한 활동, 재능교환, 지역상권 살리기, 간단한 집수리 등 주거환경 개선 등의 공유활동이 잘 형성돼 있다.

시청지점은 주로 시청 내 직원들이 많아 일과 직장 어린이집 등 도움을 주고 받는 직장연계형에 가깝다.

방아골지점은 방아골 종합사회복지관을 이용하는 다양한 세대가 함께 활동하는 세대통합형 공간 연계모델이다.

이 사업의 표본 같은 타임뱅크하우스지점은 서대문구 홍은동에 거점을 둔다. 시니어층과 발달장애인 가족이 많아 서로 돌봄 활동이 더욱 기대되는 곳이다. 생활권 기반형 중 지역거점모델, 문제해결형 중 노노케어모델 두 가지가 함께 운영된다.

또한 번외 지점인서울시민지점이 있다. 이곳은 TV 방송에 소개된 후, 다른 지역 사람들도 시간은행활동에 공감하고 참여하기를 원해서 만들어진 지점이다. 4곳 시범 모델 지점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가입하도록 되어 있다.
서울시간은행 카페에 가입해 도움 요청 게시판에 글을 올려 보았다.
서울시간은행 카페에 가입해 도움 요청 게시판에 글을 올려 보았다. ⓒ김윤경

시간은행에 관해 듣고는 반가운 마음이 들어 서울시간은행 네이버카페에 가입했다. 먼저 회원등록이 필요한데, 간략한 회원정보와 줄 수 있는 도움과 받고 싶은 도움을 기입한 뒤, 4개 지점 중 자신이 소속한 지역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해당 지역이 없는 경우, 번외인 서울시민지점을 택하면 된다. 여기까지가 가입절차다. 필자도 가입인사를 쓰면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망설였는데, 의외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예시를 보니, 내가 줄 수 있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도움이 생각보다 꽤 많았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움 요청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다. 요청에 댓글이 달리면 카페 내 1대1 채팅이나 코디네이터를 통해 약속을 잡아 진행한 후, 다른 사람들을 위한 후기를 남긴다. 현재 지점마다 코디네이터가 있으며, 요청된 활동의 성격과 진행 상황을 감안하여 활동 현장에 동행하기도 한다.
시간은행을 통해 직장 선배의 인생 조언 듣기
시간은행을 통해 직장 선배의 인생 조언 듣기 ⓒ서울시간은행

처음 가입하면 시간은행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가 없어 도움을 주는 일부터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미리 말하자면 일단 시간은행에 가입하면 모두에게 기본 300페이가 부여된다. 시간은행 활동을 통해 도움을 준 사람은 도움을 준 시간만큼을 ‘타임페이’로 받게 된다(최소활동단위 : 30분(30페이). 시간은행에서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상관없이 걸린 시간으로 계산된다. 예를 들어 함께 커피를 마시거나 아이를 돌본다고 해도 시간당 얻는 페이는 같다. 만약 여러 명에게 강의를 해도 받을 수 있는 건, 사람 수가 아닌 시간만큼의 페이다. 나머지는 기부통장으로 들어간다. 아직 기부통장의 용도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좀 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화폐를 주는 방법 등 여러 방안을 모색해 보고 있다고 한다.
카톡을 통해 기타와 뜨개질 강습, 건강식단 등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은 사례
카톡을 통해 기타와 뜨개질 강습, 건강식단 등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은 사례 ⓒ서울시간은행

카페 게시판을 보니 사례가 많았다. 누군가는 아이를 가르쳤던 경험을 살려 수학 공부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간단한 영상제작 및 편집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필요로 하는 도움 또한 다양했다. 직장생활 노하우를 구하거나 시각장애인 무용연습을 도와줄 사람을 찾았고, 여행 계획 검토를 부탁하기도 한다.

마침 필자도 도움이 필요하게 됐다. 시청에 갈 일이 있었는데 여유 시간이 생겼던 거다. 누군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시간은행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을까? 도움을 청해보기로 했다. 시간은행 카페 도움 요청 게시판에 글을 올리자, 코디네이터가 댓글을 달았고, 약속이 잡혔다. 남은 시간을 유용하고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돼 흐뭇했다. 서소문2청사에서 시청지점 코디네이터 김현진 주무관(지역공동체과 지역기획팀)과 정보라 주무관(지역공동체과 지역기획팀), 신선미 주무관 (지역공동체과 마을자치팀)을 만났다.
시간은행 서울시청지점의 코디네이터 김현진 주무관
시간은행 서울시청지점의 코디네이터 김현진 주무관 ⓒ김윤경

“나와 이웃을 위한 호혜적인 활동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국장님께서 올해 초 ‘타임뱅크’라는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그때 건네주신 책이 ‘해외 타임뱅크 사례집’이었습니다.” 김현진 주무관이 말을 꺼냈다. 

“생소하게 들리는 개념이지만, 이미 서울시 곳곳에서 크고 작은 시간은행 활동이 진행되어 오고 있었더라고요. 서대문구 홍은동에서는 어르신들이 발달장애인들 손을 잡고 산책을 하기도 하고요. 또 발달장애인들은 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활동을 하고요. 그 시간을 개인별 시간은행 계좌에 시간화폐로 적립해 두었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 사용하신다고 합니다.” 김현진 주무관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을 했다. 
시간은행을 통해 헤어 클리닉 꿀팁을 공유받은 사례
시간은행을 통해 헤어 클리닉 꿀팁을 공유받은 사례 ⓒ서울시간은행

시간은행을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신선미 주무관은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집에서 할 수 있는 헤어 클리닉에 대해 알고 싶어 시간은행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정보라 주무관님이 댓글을 달아주셨더군요. 점심시간에 3명이 만나 같이 설명을 들었습니다. 요즘 영상도 많지만, 직접 만나서 설명을 들으니 더 도움이 되더라고요. 주기별, 상황별 정보와 함께 꼼꼼하게 정리해 놓은 노트도 공유해 주셔서 더 배우기 쉬웠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정보라 주무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좀 쑥스럽네요. 사실 미용실에서 얻은 팁을 직접 해봤는데 효과가 있었거든요. 알려드릴 때는 좀 사소하지 않나 싶었는데 받는 분이 무척 고마워하시는 걸 보니 뿌듯하더라고요. 생각보다 시간은행을 통해 받는 행복감이 커요.” 
서울시청점에서 진행한 보고서 작성 등 멘토링 활동 모습
서울시청점에서 진행한 보고서 작성 등 멘토링 활동 모습 ⓒ서울시간은행

같은 지역이나 같은 부서 소속이라 해도 옆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은행 카페를 통해 서로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어서 더 유익하다고 세 사람 모두 입을 모았다.  

나아가 세대 갈등 완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선배는 후배에게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업무 노하우나 보고서 작성법을 알려주고, 후배는 선배에게 새로운 앱과 컴퓨터 기기 등에 대해  알려줄 수 있다. 실제 시간은행을 통해 엑셀 다루는 법이나 직장생활 대처법 등을 알려주고, 태블릿 PC로 웹툰 그리기를 가르쳐 주는 경우도 있었다. 
24시간 호흡기 환자를 위해 간병 영상을 촬영하는 것을 돕고 있다.
24시간 호흡기 환자를 위해 간병 영상을 촬영하는 것을 돕고 있다. ⓒ서울시간은행

그 동안 뜻깊은 일도 있었다. 근육이 수축되는 병을 앓고 있는 한 청년이 시간은행 카페에 가입했다. 새로운 간병인이 오는데, 기존 간병인이 하는 활동을 영상으로 찍어 두었다가 새 간병인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도움을 구했다.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는 댓글이 달렸고, 코디네이터들도 동행해 무사히 도움활동을 마쳤다. 
시간은행을 통해 저녁 식단관리와 관련해 배우고 있다.
시간은행을 통해 저녁 식단관리와 관련해 배우고 있다. ⓒ서울시간은행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도움을 받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서울시간은행이 잘 정착되고, 잘 유지되면 좋겠어요. 일방적으로 도움만 주거나 받다 보면 중간에 그만둘 수 있지만, 시간은행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내가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떳떳하게 시간화폐를 사용할 수 있으니 또 찾게 된다고 할까요.

서울시간은행에 참여하면서 좋은 점도 알게 됐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찾다 보니, 모르고 지나친 자신의 장점을 알게 돼 자존감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취미도 없어 타인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분도 떠오르는데요. 전화로 40여 분 이야기하다 보니 가까운 산책 같은 것은 자신도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할 수 있는 걸 찾게 돼 좋아하셨죠.”

자신의 장점을 찾으며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 보니, 삶의 활력과 함께 타인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 얼핏 몸이 불편하면 도움을 받게만 되지 않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텃밭 강의나 말벗 등 앉아서 할 수 있는 것들도 꽤 많다.

특히 혼자서 어려움을 겪는 1인 가구들에게는 퍽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아직은 시범사업으로, 전용 온라인 플랫폼이 없는 등의 불편함도 존재한다. 현재는 대학교, 복지관, 시청 등 거점이 확실하고 코디네이터가 중간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으나, 본격적으로 사업이 진행된다면 경찰과 협력해 신원 확인 등의 절차를 거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화폐 설명서
시간화폐 설명서 ⓒ서울시간은행

훈훈한 점은 서울시간은행에 대해 소개를 하거나 전화로 물었을 때,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보다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줄 수 있는 도움은 370여 건이면, 받고 싶다는 도움은 250여 건 정도란다.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다는 건, 팍팍한 생활 속에서도 아직 우리 사회가 살 만하다는 방증 아닐까.   

“서울시간은행 시범사업 동안에 다양한 모델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이렇게 점차 많은 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더 나은 지역, 동네가 되는 데 기여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서울시간은행은 시민들이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성패가 달려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가치 있고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참여한다면 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지 않을까?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웃과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잊지 말자.

서울시간은행

서울시간은행 네이버카페
○ 문의: 시민협력국 지역공동체과 지역기획팀(02-2133-6341), 국민대학교-정릉지점(02-354-9276), 방아골 종합사회복지관지점(02-3491-0583), 홍은동 타임뱅크하우스지점(070-7779-7979), 서울시청지점(02-2133-6341)

시민기자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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