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자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본 청계천 7경!

시민기자 김인수

발행일 2022.06.07. 09:30

수정일 2022.06.07. 16:04

조회 1,255

알고 있는가? 청계천에는 청계광장 앞의 모전교에서 시작돼 고산자교에 이르기까지 무려 22개의 다리가 있다는 사실을! 이 중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 세운교, 새벽다리, 나래교, 맑은내다리, 두물다리는 인도전용 다리이고, 나머지 다리들은 차도와 인도 겸용 다리로 쓰이고 있다. 게다가 청계광장을 비롯해 존치교각, 빨래터 등 청계 7경이 별다른 설명 없이 시민들이 찾아와주길 기다리고 있다.

필자는 천천히 그리고 낯선 여행자의 시선으로 청계천 다시보기를 시작했다. 일로 걷던 길과 여행자가 되어 걷는 길은 같은 길이지만, 전혀 다른 길로 느껴졌다. 새로운 것이 생겨나지 않았음에도, 그간 보이지 않던 것들이 참 많았다. 청계광장의 청계천 미니어처가 그랬고, 팔석담, 태종과 신덕왕후간의 갈등, 빨래터 등이 새롭게 보였다. 빈번하게 오가던 길이었는데, 청계천에 이렇게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니, 새삼 놀라웠다.

청계천의 본래 이름은 '개천'이다. 1411년(태종11) 12월 하천을 정비하기 위한 '개거도감(開渠都監)'을 설치하고, 다음 해인 1412년(태종12) 1월 15일부터 2월 15일까지 모두 5만 2,800명의 인부를 투입해 물길을 크게 고쳐 '내를 파내다'라는 의미의 ‘개천(開川)’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이 때의 개천 공사를 계기로 지금의 청계천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1760년에는 20여만 명을 동원해 바닥을 깊이 파고 석축을 쌓아 물길을 새롭게 내고 이를 칭송한 ‘준천가’가 오간수교 아래에 있어 읽어보면 좋겠다.

청계천을 낯설게 그리고 천천히 보았다. 매순간 새롭게 발견되는 게 있어 즐거웠다. 고산자교까지 둘러보고 조금만 되돌아 와서 청계천판잣집 체험관과 그 맞은편에 있는 청계천박물관을 방문해 청계천 역사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추천한다. ☞청계천 정보 바로가기(클릭)
청계 1경, 시민광장이자 민주주의와 인권광장으로 시대의 쟁점이 있을 때마다 다시 태어난 청계광장이다.
청계 1경, 시민광장이자 민주주의와 인권광장으로 시대의 쟁점이 있을 때마다 다시 태어난 청계광장이다. Ⓒ김인수
청계광장 입구에 설치된 대형 조형물 ‘스프링(spring)’은 클래스 올덴버그와 아내 코샤 반 브루겐의 공동 작품으로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다슬기를 형상화했다..
청계광장 입구에 설치된 대형 조형물 ‘스프링(spring)’은 클래스 올덴버그와 아내 코샤 반 브루겐의 공동 작품으로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다슬기를 형상화했다. Ⓒ김인수
청계천 전 구간을 100분의 1로 축소한 60미터의 청계천 미니어처. 모전교부터  22번째 고산자교까지 이름표가 빠짐없이 물길에 있다.
청계천 전 구간을 100분의 1로 축소한 60미터의 청계천 미니어처. 모전교부터 22번째 고산자교까지 이름표가 빠짐없이 물길에 있다. Ⓒ김인수
전국 8도에서 가져온 석재로 제작된 ‘팔석담’. 조선 8도와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에 흐르게 될 물의 의미를 담기 위해 각 도를 상징하는 8도 석재조형물로 구성하였다.
전국 8도에서 가져온 석재로 제작된 ‘팔석담’. 조선 8도와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에 흐르게 될 물의 의미를 담기 위해 각 도를 상징하는 8도 석재조형물로 구성하였다. Ⓒ김인수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첫 번째 다리인 모전교다. 다리 주변에 과일을 팔던 과전(果廛)을 다른 말로 모전(隅廛)이라 하였다.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첫 번째 다리인 모전교다. 다리 주변에 과일을 팔던 과전(果廛)을 다른 말로 모전(隅廛)이라 하였다. Ⓒ김인수
청계 2경인 청계천 광통교. 처음에는 토교(土橋)로 만들어졌다가 1410년(태종 10년) 홍수로 다리가 파괴되자 석교(石橋)로 건설됐다.
청계 2경인 청계천 광통교. 처음에는 토교(土橋)로 만들어졌다가 1410년(태종 10년) 홍수로 다리가 파괴되자 석교(石橋)로 건설됐다. Ⓒ김인수
광통교와 광교 사이에 있는 보도용다리인 세월교
광통교와 광교 사이에 있는 보도용다리인 세월교 Ⓒ김인수
광교와 삼일교 사이에는 1825년 김정호의 서울시가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와 함께 정조 능행반차도를 타일 5,120장을 이용해 재현한 청계 3경이 있다.
광교와 삼일교 사이에는 1825년 김정호의 서울시가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와 함께 정조 능행반차도를 타일 5,120장을 이용해 재현한 청계 3경이 있다. Ⓒ김인수
정조의 능행반차도를 천천히 감상하다 보면 경호하는 인원이 눈에 띄게 많아진 부분이 보이는데 왕이 있는 곳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정조의 능행반차도를 천천히 감상하다 보면 경호하는 인원이 눈에 띄게 많아진 부분이 보이는데 왕이 있는 곳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김인수
1420년(세종2년) 건립된 수표교는 본래 마전교라 불렸으나 1441년(세종 23)에 개천 수위를 측정하는 수표석(水標石)을 세운 이후 수표교라고 불렸다. 원형은 청계천을 복개할 때 장충단공원으로 옮겼다.
1420년(세종2년) 건립된 수표교는 본래 마전교라 불렸으나 1441년(세종 23)에 개천 수위를 측정하는 수표석(水標石)을 세운 이후 수표교라고 불렸다. 원형은 청계천을 복개할 때 장충단공원으로 옮겼다. Ⓒ김인수
버들다리 또는 전태일 다리다. 보행자의 동선을 위해 차도와 인도를 분리해 놓았다. 다리 위에 한국노동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전태일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버들다리 또는 전태일 다리다. 보행자의 동선을 위해 차도와 인도를 분리해 놓았다. 다리 위에 한국노동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전태일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인수
전태일 동상이 주변 상가에서 옷감 등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로 둘러 쌓였다. 분신 35주기가 되는 2005년 11월에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졌다.
전태일 동상이 주변 상가에서 옷감 등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로 둘러 쌓였다. 분신 35주기가 되는 2005년 11월에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졌다. Ⓒ김인수
오간수교. 동대문에서 을지로6가로 가는 성벽 아래 청계천6가에 있던 다리로 원형은 찾아볼 수 없다.
오간수교. 동대문에서 을지로6가로 가는 성벽 아래 청계천6가에 있던 다리로 원형은 찾아볼 수 없다. Ⓒ김인수
문화의 벽. 시각의 미로(배진환 작), 별(장수홍 작)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청계천 복원 이후 최고 물높이가 4.72미터였음을 알리는 푯말이 있다.
문화의 벽. 시각의 미로(배진환 작), 별(장수홍 작)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청계천 복원 이후 최고 물높이가 4.72미터였음을 알리는 푯말이 있다. Ⓒ김인수
청계 4경인 빨래터. 다산교와 영도교 중간에 재현해 놓았다. 옛 여인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고, 충남 천안에서 옮겨 심은 능수버들 16그루가 어우러져 있다.
청계 4경인 빨래터. 다산교와 영도교 중간에 재현해 놓았다. 옛 여인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고, 충남 천안에서 옮겨 심은 능수버들 16그루가 어우러져 있다. Ⓒ김인수
조선시대 도성 밖 개천에 놓여 있는 유일한 다리가 영도교다. 북쪽 동묘와 남쪽 왕십리를 연결한다.
조선시대 도성 밖 개천에 놓여 있는 유일한 다리가 영도교다. 북쪽 동묘와 남쪽 왕십리를 연결한다. Ⓒ김인수
청계 7경인 존치교각. 비우당교와 무학교 사이에 미래유산 248호로 지정되었다. 청계고가도로를 받치던 교각 중에 3개를 남겨 놓은 것이다.
청계 7경인 존치교각. 비우당교와 무학교 사이에 미래유산 248호로 지정되었다. 청계고가도로를 받치던 교각 중에 3개를 남겨 놓은 것이다. Ⓒ김인수
청계 두물다리. 두 개의 물이 만나는 다리라는 의미이며, 다리 모양도 서로 만나는 형상이다. 2004년 5월 31일에 완공한 이 다리는 청계천 다리 중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청계 두물다리. 두 개의 물이 만나는 다리라는 의미이며, 다리 모양도 서로 만나는 형상이다. 2004년 5월 31일에 완공한 이 다리는 청계천 다리 중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김인수
판잣집 체험관 맞은편에 청계천 박물관이 있다.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 미래를 전시하고 있다.
판잣집 체험관 맞은편에 청계천 박물관이 있다.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 미래를 전시하고 있다. Ⓒ김인수
청계천 22번째 다리로 조선시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호를 따서 지은 고산자교다. 인근에 ‘고산자로’가 있다.
청계천 22번째 다리로 조선시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호를 따서 지은 고산자교다. 인근에 ‘고산자로’가 있다. Ⓒ김인수
청계 6경인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 위치한 소망의 벽. 2만여 명의 시민들이 소망과 바람들을 표현한 타일을 이어 붙여 큰 벽을 조성했다.
청계 6경인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 위치한 소망의 벽. 2만여 명의 시민들이 소망과 바람들을 표현한 타일을 이어 붙여 큰 벽을 조성했다. Ⓒ김인수

시민기자 김인수

기억은 그 시절 그대로 소환되지 않는다. 그 순간을, 그 현장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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