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들어요! 눈 감아도 보이는 세상~ 점자책 제작 봉사 현장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2.04.21. 14:55

수정일 2022.04.21. 13:33

조회 2,407

학생들이 교실에서 '장애인 인식 개선'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용산구자원봉사센터
학생들이 교실에서 '장애인 인식 개선'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용산구자원봉사센터

‘장애인의 날’을 한 주 앞둔 4월 13일 오후, 종이 울리자 떠들썩하던 교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배문고등학교 학생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서 교실 앞의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1,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봉사학습활동이 있는 날이다. 그런데 오늘의 봉사활동은 여느 때의 봉사활동관 다르다. 그동안의 봉사활동은 교내외에서 교사의 인솔하에 학생들이 몸을 많이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오늘의 봉사활동은 가만히 앉아서 집중력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봉사학습활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봉사에 학습이 가미된 것이다.

용산구자원봉사센터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서 ‘눈 감으면 보이는 세상’이라는 청소년 봉사학습활동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총 2시간 동안 점자책을 제작해 봤다. 학생이 나 혼자가 아닌 여럿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경험하게 하는 목적으로 기획했다. 용산구자원봉사센터는 청파도서관으로부터 '통일점자사전'을 지원받고, 전문 점역 강사들과 교육 멘토 봉사자가 함께했다.
학생이 '통일점자사전'을 만들기 위해서 점자판을 대고 점자를 찍어내고 있다.Ⓒ용산구자원봉사센터
학생이 '통일점자사전'을 만들기 위해서 점자판을 대고 점자를 찍어내고 있다. Ⓒ용산구자원봉사센터

먼저 첫 시간에는 학생들이 '장애인식 개선 교육과 함께하는 삶', '점자의 원리와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다음 시간에는 점자책 '통일점자사전'을 제작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교실마다 1권씩, 총 14권의 '통일점자사전'을 제작했고, 이 책은 시각장애인 도서관이나 시각장애인 단체에 기증될 예정이다.

점자는 지면 위에 도드라진 점을 손가락으로 만져서 읽도록 만든 시각장애인용 문자이다. 점자는 비장애인이 읽고 쓰는 한글과는 다르다. 한글이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점자는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6점(세로로 3점, 가로로 2점)으로 구성되며, 이 여섯 개의 점을 조합하여 총 64개의 점형을 만든다. 따라서 점자는 많은 점형으로 이루어지고, 그 각각의 점형에 의미가 부여된 문자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점자를 자주 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 버튼이나 보드블록에 점자가 표시되어 있다. 학생들은 점자판에 특수종이를 대고 인쇄 모양에 따라 점자를 찍는 방식으로 점자책 제작에 참여했다.
점자책 제작 봉사학습활동에 참여한 전태진 학생(좌)과 백승준 학생(우)을 만났다. Ⓒ윤혜숙
점자책 제작 봉사학습활동에 참여한 전태진 학생(좌)과 백승준 학생(우)을 만났다. Ⓒ윤혜숙

점자책을 제작하는 봉사학습활동에 참여한 두 학생을 만나봤다. 1학년 전태진, 2학년 백승준 학생이다. 두 학생은 점자책을 제작해보는 봉사학습활동이 그동안 주로 했던 봉사활동관 달라서 처음엔 생소해서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염려했지만, 막상 끝나고 나니 뿌듯하고 1시간이 부족할 만큼 아쉬웠다고 말한다.
1,2학년 학생들 대상으로 교실마다 1권씩, 총 14권의 '통일점자사전'을 제작했다. Ⓒ용산구자원봉사센터
1,2학년 학생들 대상으로 교실마다 1권씩, 총 14권의 '통일점자사전'을 제작했다. Ⓒ용산구자원봉사센터

전태진 학생은 “점자를 따라서 찍어내는 게 단순해 보였는데 막상 제가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어요”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그는 “점자를 찍다가 하나라도 틀리면 지금까지 작업했던 게 무용지물이었어요.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했으니깐요”라면서 점자책을 제작할 때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면서 그는 “저 혼자 점자책 제작을 했더라면 그 시간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교실에서 반 친구들과 함께 하는 활동이어서 편안한 상태로 작업했어요. 그렇지만 집중력이 있어야 하는 일이었어요”라고 말한다.

백승준 학생은 “시각장애인의 글로 점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점자책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이번에 점자책을 제작하면서 점자는 한글처럼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점자책을 만들면서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지만, 모든 점자를 찍어서 완성했을 때의 짜릿한 쾌감을 잊을 수 없어요. 제 활동이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단 생각에 책임감이 생겼고 그래서 더욱 열심히 작업할 수 있었어요”라면서 환하게 웃는다.
점자책을 제작하려면 집중력을 갖고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용산구자원봉사센터
점자책을 제작하려면 집중력을 갖고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용산구자원봉사센터

두 학생에게 4월 20일이 무슨 날인지를 물었다. 마치 기자가 당연한 것을 묻는 듯 두 학생은 이구동성으로 “장애인의 날이죠”라고 대답한다. 

두 학생이 장애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전태진 학생은 "제가 살아오면서 장애인을 직접 본 적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어요. 장애인을 보면 몸이 불편하니까 안타깝고, 그래서 제가 가까이 다가가서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첫 시간에 장애인 영상을 시청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첫 시간에 장애인 사례를 영상으로 시청하면서 제가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장애인 또한 우리와 다름없는 인간이라면서 "장애인은 단지 몸이 불편한 것뿐이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에요. 장애인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안 돼요!"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학생들 각자 제자리에 앉아서 점자책을 만들고 있다. Ⓒ용산구자원봉사센터
학생들 각자 제자리에 앉아서 점자책을 만들고 있다. Ⓒ용산구자원봉사센터

백승준 학생은 "외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해서 걷지 못하셔요. 그래서 휠체어에 의존해서 생활하십니다. 외할머니를 위해서 경사진 길을 갈 때 휠체어를 밀어드리거나 잔심부름 등의 일을 도와드리고 있어요"라면서 "병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외할머니를 대하면서 누구든 장애인이 될 수 있고, 그렇기에 장애인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제가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듯이 장애인 역시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도와드려야 하겠죠"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점자책을 제작하는 것도 장애인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었어요"라고 강조해서 말한다.
백승준 학생(좌)과 전태진 학생(우)이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경사진 길을 가리키고 있다. Ⓒ윤혜숙
백승준 학생(좌)과 전태진 학생(우)이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경사진 길을 가리키고 있다. Ⓒ윤혜숙

두 학생은 이번에 봉사학습활동하면서 느낀 바가 컸다고 한다. 전태진 학생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 의무적으로 하는 봉사활동보다 이런 의미 있는 봉사학습활동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바람을 전했다. 백승준 학생은 "점자책을 만들어 보니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아주 어렵지 않았어요. 시중에 비장애인을 위한 책들은 수없이 많지만,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점자책은 적어요. 앞으로 시각장애인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어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배문고등학교 정문 앞 바닥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드블록 점자가 있다. Ⓒ윤혜숙
배문고등학교 정문 앞 바닥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드블록 점자가 있다. Ⓒ윤혜숙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점자책을 제작하는 봉사학습활동은 단순히 봉사활동에 머물지 않았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과 장애인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활동이 결합하면서 학생들에게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값진 체험이 되었다. ‘장애인의 날’이 아니어도 이런 봉사학습활동이 널리 확산하길 바라본다.

용산구자원봉사센터
청파도서관

시민기자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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