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최초의 강남이 '영등포'였다고?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1.11.22. 13:05

수정일 2021.11.23. 09:10

조회 1,655

서울미래유산 현장답사, 숨겨진 영등포 옛날 이야기를 찾아서

단계적 일상회복에 접어들면서 서울미래유산 답사가 재개됐다. ‘최초의 강남, 영등포의 옛날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는 여정을 함께 걸었다. 장장 세 시간의 도보 여행이었다. 
서울미래유산 답사가 영등포를 시작으로 재개되었다. ⓒ서울미래유산
서울미래유산 답사가 영등포를 시작으로 재개되었다. ⓒ서울미래유산

문래역 1번 출구에는 방직공장들의 이야기가 물들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도 ‘사옥정’이라고 할 만큼 방직공장들이 우후죽순 생겼던 곳으로 ‘문래’라는 지명 자체가 방적기의 순 우리말인 ‘물레’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길을 건너 문래창작촌을 걸었다. ‘설계도면만 있으면 비행기도 만든다’는 말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의 모든 철물은 문래동으로 통했다. 원래 청계천에 있던 철공소들이 1980년대에 제조업체 이전 정책 등에 따라 이주하면서 자리를 잡았는데, 1990년에 제조업 쇠퇴와 외환위기 여파로 많은 곳이 문을 닫았다. 그 빈 공간에 2000년대 초반 홍대나 대학로의 예술가들이 들어오면서 창작촌이 형성됐다. 
토요일이어서 문을 닫은 철공소 주변으로 카페, 예술공간들이 공존한다. ⓒ이선미
토요일이어서 문을 닫은 철공소 주변으로 카페, 예술공간들이 공존한다. ⓒ이선미

한쪽에서는 아버지뻘인 어른이 새까만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며 철을 다루고, 다른 한쪽에서는 젊은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을 하는 문래동의 오늘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영등포를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의 변천도 한눈에 볼 수 있는 ‘문래동 영단주택단지 일대’는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여전히 영업 중인 문래동 철공소 모습 ⓒ이선미
여전히 영업 중인 문래동 철공소 모습 ⓒ이선미

1905년 일본인 아이들을 위해 지었던 영등포초등학교를 지났다. 1960년경에 수영장이 있었을 만큼 유명했던 이 학교에서 영등포 지역 최소 다섯 학교가 분교했다고 한다.
1905년 일제강점기에 문을 열어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영등포초등학교 ⓒ이선미
1905년 일제강점기에 문을 열어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영등포초등학교 ⓒ이선미

도림동성당은 명동과 중림동, 그리고 혜화동에 이어 국내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천주교 성당으로 가톨릭노동운동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본당 건물은 한국전쟁으로 반파가 됐다가 이탈리아, 남미 천주교 신자들의 모금으로 1962년 다시 세워졌다. 지금은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지만 공장지대 언덕에 자리 잡은 이 성당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한국전쟁 때 반파됐다가 다시 세워진 도림동성당 ⓒ이선미
한국전쟁 때 반파됐다가 다시 세워진 도림동성당 ⓒ이선미

현대식으로 디자인된 장미창과 대리석 제대와 난간석, 천장 장식들이 건축사 측면에서 보존가치가 높아 2013년 서울미래유산에 지정됐다.
도림동성당은 건축사 측면에서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됐다. ⓒ이선미
도림동성당은 건축사 측면에서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됐다. ⓒ이선미

역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영등포 쪽방촌’에는 약 400개의 방이 있다. 난방이나 방음의 열악함은 물론이고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쪽방촌은 전세나 보증금 없이 대부분 월세를 내는데 일세로 사는 경우도 있다. 서울미래유산이지만 여전히 360여 명 정도의 시민이 살고 있는 쪽방촌을 ‘답사’할 수는 없어서 멀찍이 바라보고 지나왔다.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멀리서 내려다본 영등포 쪽방촌 ⓒ이선미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멀리서 내려다본 영등포 쪽방촌 ⓒ이선미

서울 최초의 강남 영등포, 사통팔달이었던 영등포역사 앞 사거리를 마주하고 서니 역사의 한복판에 선 듯 느낌이 묘했다. 옛날에는 송파나 강동, 강남에서 오는 모든 버스 종착지가 영등포였다고 한다. 영등포역사를 나와 영등포공원으로 들어섰다.
OB맥주 공장 부지에 조성한 영등포공원 ⓒ이선미
OB맥주 공장 부지에 조성한 영등포공원 ⓒ이선미

1933년 일본은 수량이 풍부하고 깨끗한 한강물을 활용할 수 있는 영등포에 맥주공장을 지었다. OB맥주 전신인 쇼와기린맥주였다. 공원에는 1997년 OB맥주 공장이 경기도 이천으로 옮길 때까지 60여 년 동안 실제 사용했던 담금솥이 있다. ‘1933년에 제작해 1996년까지 맥주 제조용으로 사용됐다’는 문구가 새겨진 담금솥은 맥아와 호프, 전분, 물을 배합해 끓인 후 발효시키는 핵심 설비 중 하나다.
1933년부터 사용했던 ‘OB맥주 담금솥단지’가 영등포공원에 남아 있다. ⓒ이선미
1933년부터 사용했던 ‘OB맥주 담금솥단지’가 영등포공원에 남아 있다. ⓒ이선미

아침 10시부터 걸어 이제 점심시간이 되었다. 먹자골목으로 들어가자 배가 고팠다. 식당이 서울미래유산을 신청하려면 1920년에서 1970년대 사이에 개업을 한 곳으로 옮기지 않고 한 자리에서 영업을 해온 곳이어야 한다. 영등포시장 골목에 있는 ‘대문점’은 1968년 개업 이래 계속 영업 중인 중국음식점으로 오향장육과 물만두가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오향장육과 물만두가 맛있다는 서울미래유산 ‘대문점’ 입구 ⓒ이선미
오향장육과 물만두가 맛있다는 서울미래유산 ‘대문점’ 입구 ⓒ이선미

영등포시장역을 지나 20분쯤 걸은 끝에 이날의 마지막 목적지인 ‘영등포산업선교회’에 닿았다. 거의 50년 동안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고 지켜주며 민주화운동을 해온 의미 깊은 곳으로 우리나라 노조가 첫 발자취를 뗀 곳이다. 노동자들, 특히 영등포 지구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이 된 이 자리에 ‘노동선교의 요람 민주화운동 사적지’라는 비석이 서 있다. 영등포산업선교회는 43년 만에 리모델링을 하고 새로운 출발을 했다.
영등포 지구 노동자들의 인권운동과 민주화운동 중심지였던 영등포산업선교회 ⓒ이선미
영등포 지구 노동자들의 인권운동과 민주화운동 중심지였던 영등포산업선교회 ⓒ이선미

‘서울 최초의 강남’으로 우리 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영등포, 힘들었던 시대를 이끌어온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을 돌아본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서울미래유산 답사는 매주 토요일 진행된다. 답사 신청은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서울미래유산 인생투어 신청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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