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오동나무를 위해 정원을 만들다! 인사동 '코트'

박혜리 도시건축가

발행일 2021.10.14. 15:10

수정일 2022.11.28. 10:01

조회 6,168

박혜리 도시건축가
인사동 코트의 오동나무정원이 보이고 그 너머에 유구가 노출된 재개발 현장이다.
인사동 코트의 오동나무정원이 보이고 그 너머에 유구가 노출된 재개발 현장이다.
<내 손안에 서울> 전문칼럼에 새로운 필진이 합류합니다. 오늘부터 매월 셋째주 목요일 ‘박혜리의 별별 도시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네덜란드 공인 도시계획사 및 건축사인 박혜리 도시건축가는 서울의 도시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세운상가 그 이상: 대규모 계획 너머> 편저자로 참여하였으며, 서울에서 여러 도시 및 건축설계 실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칼럼을 통해 도시건축가로서 바라보는 서울 그리고 공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등 별별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과 함께 여행하듯 풀어낼 예정입니다. 새롭게 바뀐 <내 손안에 서울> 전문칼럼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박혜리 도시건축가의 별별 도시 이야기 (1)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코트(KOTE)’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다 현재 서울에서 임시적 노마드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이곳에 느슨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인사동 ‘코트(KOTE)’의 코트랩이다. 인사동 초입에 숨겨진 보물 같은 문화복합시설, 인사동 코트 소개로 나의 별별 도시 이야기의 첫 문을 열고자 한다. 
인사동 코트 입구, 옆 승동교회 입구 골목이 보인다.
인사동 코트 입구, 옆 승동교회 입구 골목이 보인다.

인사동길7번지, 종로 및 탑골공원측 인사동길 남측 초입에 들면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산지인 ‘승동교회’의 입구가 있다. 그 옆 하나의 전시공간이 있는데, 그 전시공간에 들어오거나 바로 옆 골목을 들어서면 세 동의 건물을 하나로 엮은 복합문화단지가 중정을 중심으로 배치돼 있다. 이곳 남측에 위치한 인사1길 피맛골 지역 재개발 공사터는 최근 세종대왕시절 훈민정음 활자 1,600여 점이 출토돼 화재를 이끌기도 했다. 
코트랩 공간 건물
코트랩 공간 건물

이렇듯 재개발과 보존의 혼돈 속에서 도로 안쪽 코트는 60년 넘은 오래된 건물 약 500평 공간에 깊숙이 그리고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및 창작가에게는 월 30만 원의 착한 임대료로 공유 작업 공간을 제공하고 여러 전시홀 및 카페 등을 시민들에게 열어 공유와 소통의 장을 열고 있다. 
1층 전시 및 이벤트 공간
1층 전시 및 이벤트 공간
옛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여 시간의 중첩이 보이는 코트카페
옛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여 시간의 중첩이 보이는 코트카페

이곳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인사동 코트 안주영 대표는 오랜 기간 간직해 온 ‘공간의 공정무역’이라는 꿈을 이곳을 통해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애초에는 가구작업장이었다가 이후 음식점 및 노래방 등이 들어서 있었고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 않았던 열악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안대표는 안쪽에서 건물에 포위당한 채 죽어가고 있던 오동나무를 본 순간 투자를 결심하고 이곳을 살려야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지난 4년간 투자처의 잠적 및 공동투자자와의 철학적 이견 등으로 고생을 하였는데 코로나까지 터지면서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안대표는 오히려 코로나 위기로 인해 코트를 문화공간으로 재단장하는 시간을 벌었다며 지속적인 기획에 힘을 쏟고 있다. 
2층 공유작업공간 코트랩
2층 공유작업공간 코트랩

나의 업무공간이 자리한 2층 코트랩에는 영화, 사진, 무용, 그림, 디자인, 패션,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관련 전문가 40여 명이 둥지를 틀고 있다. 여타 다른 공유오피스는 ‘오피스(office)’의 기능에 충실하다면, 여기는 예술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작업실(workshop)’ 분위기가 강하다. 나도 다른 공유오피스를 전전하다 이곳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자유로운 분위기의 코트와 건축, 도시디자인 영역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입주하게 됐다.  

경계가 없는 코트랩에서는 서로 자연스럽게 인사하며 새로운 기획과 아이디어를 불러일으키는 ‘용광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얼마 전 코트에 입주해 있는 박직연 작가(ANPERIOD)의 ‘일어서다’ 영상 작업을 코트에서도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박작가는 뉴욕 타임스퀘어 및 코엑스 등에서 이 주제로 영상전시를 한 적이 있고, 약 1년간 전국 300여 명을 참여시켜, 가장 기본적인 ‘일어섬’을 통해 힘겨운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근원적인 힘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단순하고도 장엄한 슬로우 영상으로 보여주는 인상적인 작품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코트 전시공간에서 진행된 전시는 코트에 입주해 있는 아티스트들이 각자 원하는 코트의 공간에서 일어서는 모습을 담았다. 입주 작가들이 이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연속적인 교류’를 지향하는 코트의 다양한 예술적 시도에 하나의 움직임을 더한 기회였다. 
‘일어서다’ 코트. 입주작가들이 코트의 여러 장소에서 각자의 움직임으로 일어서고 있다.
‘일어서다’ 코트. 입주작가들이 코트의 여러 장소에서 각자의 움직임으로 일어서고 있다.
외부공간이 풍부한 코트. 옥상정원, 오동나무 정원이 압도적이다.
외부공간이 풍부한 코트. 옥상정원, 오동나무 정원이 압도적이다.

해봉빌딩에는 스타트업 및 다양한 회사가 입주해 오피스공간으로 쓰고 있고, 1층 전시 및 카페 공간과 2층 각자의 소장한 책을 모으는 ‘내면의 서재’는 이벤트 공간으로, 오동나무 중정을 둘러싸는 비어가든, 코트키친에서는 먹거리 공간을 제공한다.   
비어가든. 일과 후 맥주 한 잔씩 하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다.
비어가든. 일과 후 맥주 한 잔씩 하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다.

날마다 새로운 이벤트와 교류가 행해지고 다채로운 공간의 경험을 마련하고 있다. 1층 비어가든 및 오동나무정원에서는 팝업마켓인 ‘마르쉐’의 장터가 열리기도 했다. 신선한 로컬 채소 및 공예품을 사고 파는 공유의 현장이다. 이렇듯 코트는 다양한 문화 예술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장으로 상시 오픈되어 있다. 
정원에서 마르쉐 장터가 열린 한창인 토요일 오후.
정원에서 마르쉐 장터가 열린 한창인 토요일 오후.

공유작업장 코트랩에 입주나 체험을 원하면 사무국으로 통해 문의를 하면 된다. 이벤트 개최를 원한다면 정원을 함께 쓰는 1층 전시공간, 또는 옥상정원으로 바로 통하는 3층 전시공간 대여를 문의하면 된다. 

주변 재개발 현장 및 고층 오피스빌딩 숲에 둘러싸여 있지만 오동나무 정원 속 이곳은 여러 켜의 시간과 풍부한 문화의 층위가 겹쳐져 무한한 가치를 창조하고 있다.  
오동나무 정원에서 커피 한 잔.
오동나무 정원에서 커피 한 잔.

인사동길을 지나가다 코트카페에서 가지고 온 텀블러에 50% 할인된 가격의 커피를 한 잔 산 후 오동나무정원으로 들어가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 속, 멈춰진 이 문화의 오아시스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건 어떨까. 시민들에게 인사동 코트는 문화예술의 느낌표, 시민들의 일상의 쉼표 같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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