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배운다, 인생을 쓴다" 문해교육 온라인 시화전 개최

시민기자 이정민

발행일 2021.10.12. 10:27

수정일 2021.10.12. 16:54

조회 3,715

세월로 쓰고, 마음으로 그린 시와 그림 40개 작품…온라인 시화전 개최

"제 까막눈이 부끄러워…/ 그래서 한글교실 찾아 찾아갔어요…/ 글을 배우니 이제 내 이야기 밥 짓듯 지을 수 있어요."

올해 ‘서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서울특별시장상을 받은 박영자 학습자(80세)의 시 ‘어머니 전상서’의 일부다.
서울특별시장상을 수상한 박영자 학습자(강감찬관악종합사회복지관)의 ‘어머니 전상서’
서울특별시장상을 수상한 박영자 학습자(강감찬관악종합사회복지관)의 ‘어머니 전상서’ ⓒ서울문해교육시화전

남들보다 늦게 한글을 배워 공부하며 느낀 심정을 한 글자씩 꾹꾹 눌러쓴 80세 시인의 글을 비롯한 수상작들이 세상과 만난다. ‘세월로 쓰고 마음으로 그린, 시와 그림 이야기’란 주제로 문해 학습자들의 배움 속 희망을 담은 시화작품들이 온라인을 통해 전시 중이다.

이 전시는 유네스코가 정한 ‘문해의 달’ 행사의 하나로 서울지역 문해 학습자들이 학습 성과를 공유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마련된 행사다. 코로나19로 대면 교육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한글을 배우려는 학습자들의 높은 열정으로 지난해(111개)보다 많은 양의 작품 190점이 접수됐다. 이 중 심사를 거쳐 선정된 40개의 수상작이 공개됐다.
'2021 서울문해교육 시화전' 작품들을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다.
'2021 서울문해교육 시화전' 작품들을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다. ⓒ서울문해교육시화전

용산구평생학습관의 문해교실 강사 김인숙 대표(전국문해기초교육협의회)는 “우리 학습자들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한글을 사랑하는 분들이다. 세종대왕도 사랑한다고 쓰실 정도로 한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며 대부분 60대 이상인 어르신들의 한글을 배우는 애정과 열의를 전한다. "그분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 갈증이 있으셨던 분들"이라며, "삶의 조각들이 모여 시가 된 작품을 보면 언제나 뭉클하죠"라고 말했다.
성인문해 초등과정 교과서들
성인문해 초등과정 교과서들 ⓒ국가문해교육센터

인생 후반전에 한글을 배우는 학습자들을 가르치는 특별한 비법은 무엇일까. "아마 많은 선생님들이 한글을 가르칠 때 맞춤법이 다가 아니라, 소리 나는 대로 쓰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쓸 수 있으면 된다고 말하실 거다"라고 김 대표는 말한다. 이어서 "칭찬이 그 비법이다. 학습자들을 끊임없이 응원하고 격려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지난 5일 '2021 서울문해교육 시화전' 소규모 시상식이 열렸다.
지난 10월 5일 '2021 서울문해교육 시화전' 소규모 시상식이 열렸다. ⓒ전국문해기초교육협의회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은 지난 5일, ‘2021 서울문해교육 시화전’의 소규모 시상식을 개최해 수상자를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상식에 참석한 김인숙 대표는 "학습자들이 처음 받는 상이기에 부끄러워하지 않으실까 걱정했는데, 자신감 있어 보이시고 자녀들이 축하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며 "가족들이 문해 교육을 이해하는 자리가 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오는 14일 오후 2시,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유튜브를 통해 시화전 및 시상식 영상이 공개될 예정이다.
최금자 학습자의 작품 ‘금자와의 대화’
최금자 학습자의 작품 ‘금자와의 대화’ ⓒ서울문해교육시화전

수상작 중 일부를 소개한다. 먼저 '금자와의 대화'를 쓴 최금자 학습자(양천구평생학습관)는 작품에서 "글을 몰라 자신이 없던 모습에서 못 배운 한을, 배움으로 밀어내고 자신 있게 살겠다"며 스스로에게 박수로 격려하고 있다. 학습관 앞에서 가방을 메고 활짝 웃는 얼굴과 박수 치는 두 손을 그린 시인의 설렘이 자연스럽게 담겼다.
김복순 학습자의 작품 '순댓국'과 안선재 학습자의 작품 '글 만드는 쎄프’
김복순 학습자의 작품 '순댓국'과 안선재 학습자의 작품 '글 만드는 쎄프’ ⓒ서울문해교육시화전

"순대 모양은 이응이요 머릿고기 모양은 미음이라…." 순댓국 그릇에 글자를 한 가득 담은 김복순 학습자(세종한글교육센터)의 작품도 인상적이다. 한글 공부에 푹 빠진 시인이 된 어르신의 일상이 감각적으로 표현됐다. 또한 안선재 학습자(대신야학)의 시 '글 만드는 쎄프'는 "이젠 야학 다니며 글도 쓰니 글 만드는 소문난 쎄프나 되볼까"라며 자신의 글맛을 뽐내고 싶어 하는 속내가 천진한 아이 같다.
박연순 학습자의 작품 ‘괜찮다’
박연순 학습자의 작품 ‘괜찮다’ ⓒ서울문해교육시화전

"늘 괜찮다고 하시는 선생님 / 쓰기는 어려워도 참 좋은 말 / 괜찮다" 박연순 학습자(살구평생학교)는 자신의 시 '괜찮다'에 적은 대로 늘 괜찮다는 선생님 덕분에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 같다.
김영혜 학습자의 작품 '꽃'
김영혜 학습자의 작품 '꽃' ⓒ서울문해교육시화전

"행복학교 다니며 보니…/ 비록 늦깍이 중학생이지만 / 지금이 내 생에서 가장 벅찬 나날이로다" 김영혜 학습자(고덕평생학습관)의 시 '꽃'처럼 학교에서 이들이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1년 서울문해교육 시화전’ 온라인 갤러리는 늦은 배움 속에서 아팠던 세월을 치유하고 인생의 봄날을 찾은 서울시 문해교육 학습자들의 글과 그림은 배움의 가치와 의미를 새삼 깨닫게 해줄 것이다.

☞‘2021년 서울문해교육 시화전’ 온라인 갤러리 바로가기

시민기자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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