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릉, 비밀의 숲 거닐며 현대사를 만나다
발행일 2021.06.28. 09:20
평소에는 닫혀 있던 조선 왕릉 숲길 11곳이 지난 5월 16일부터 6월 말까지 임시 개방됐다. 석관동에 있는 의릉 천장산 숲길도 그 중 한 곳이다.
조선 왕릉 숲길 11곳이 6월 말까지 개방된다. ⓒ이선미
의릉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한 사람인 희빈 장씨의 아들 경종과 경종의 왕비 선의왕후가 묻힌 곳이다. 초여름 오후, 입구에 자귀나무 꽃이 핀 의릉에 들어섰다. 아담한 능역이 신록으로 물들었다.
의릉이 조성된 천장산은 ‘하늘이 숨겨놓은 곳’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했는데, 그만큼 명당으로 알려져 조선 왕실의 여러 무덤이 자리한다. 1724년 경종의 의릉이 조성된 이후, 남양주 홍유릉으로 합장하기 전까지 명성황후의 홍릉이 있었고, 영친왕의 어머니 순헌귀비 엄씨의 영휘원과 영친왕의 아들 이진의 숭인원이 근처에 남아 있다.
의릉이 조성된 천장산은 ‘하늘이 숨겨놓은 곳’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했는데, 그만큼 명당으로 알려져 조선 왕실의 여러 무덤이 자리한다. 1724년 경종의 의릉이 조성된 이후, 남양주 홍유릉으로 합장하기 전까지 명성황후의 홍릉이 있었고, 영친왕의 어머니 순헌귀비 엄씨의 영휘원과 영친왕의 아들 이진의 숭인원이 근처에 남아 있다.
금천교로 흐르는 개울 너머 정자각. 눈이 시원한 풍경이다. ⓒ이선미
푸른 잔디가 시원하게 펼쳐진 정자각 너머 경종과 왕후의 능이 보였다. 사초지를 따라 선의왕후의 능이 앞서고 그 위쪽으로 경종의 능이 자리한 동원상하릉으로, 좁은 능역에서 좋은 기운을 놓치지 않고 지형도 훼손하지 않으며 풍수지리에 따라 배치됐다고 한다. 왕과 왕후의 능이 양옆이 아니라 위아래로 조성된 동원상하릉은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여주 영릉과 의릉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의릉의 비각 너머로 선의왕후와 경종의 능이 올려다 보인다. ⓒ이선미
얼핏 보기에 의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규모가 조촐하다. 능침 아래에 정자각과 비각만 남아 있고, 다른 왕릉에 있는 수복방과 수라간, 재실 등이 보이지 않았다. 이 아담한 공간은 250년 동안 젊은 임금의 정원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편안해 보이기만 하는 이 능역에 참담한 역사가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의릉은 한눈에 보기에 무척 조촐해 보인다. ⓒ이선미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고 경운궁이나 창경궁 등을 훼손하고 유린한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1962년 대한민국 국가기관인 중앙정보부가 의릉을 훼손하기 시작했다. 영구임대 형태로 의릉에 청사를 세운 중정은 왕릉의 우측 능선을 깎아 축구장을 만들고 콘크리트 청사 건물을 세웠다. 좌측 능선 역시 건물을 짓기 위해 산허리를 잘라냈다.
정자각에서 바라보는 홍살문. 참도 역시 복원된 것이다. ⓒ이선미
1972년경에는 정자각과 홍살문 사이 사초지의 땅을 파서 일본식 정원을 꾸몄다. 인공연못을 만들어 돌다리를 놓고, 비단잉어를 풀었다. 외래 수종 나무들을 식재하고 사찰에 있던 석탑을 옮겨놓기도 했다고 한다.
금천교로 흘러가는 개울 ⓒ이선미
정자각은 유독 장엄해 보였다. 월대에 올라 홍살문 쪽을 바라보니 복원된 참도가 말끔했다. 정자각을 내려와 비각을 들여다보았다. 서른일곱 임금과 스물여섯 왕후가 묻힌 의릉의 역사가 간단하게 새겨져 있었다.
비문에는 ‘조선국 경종대왕 의릉 선의왕후 부’(朝善國 景宗大王 懿陵 宣懿王后 祔)가 새겨져 있다. ⓒ이선미
정비된 산책로에는 군데군데 벤치가 놓이고 시민들이 각기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르신들도 나무그늘 아래 수다 삼매경이었다. 소나무 사이로 망초가 흐드러지는 숲을 따라 걸었다.
의릉 산책로에서 만나는 오래된 향나무 ⓒ이선미
능침 뒤쪽으로 돌아가니 서슬 퍼렇던 중앙정보부 건물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남북 분단 이후 최초로 남과 북이 합의한 역사적인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중앙정보부 강당 ⓒ이선미
“첫째,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및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7·4남북공동성명’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공식 천명했다.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인 이 건물은 2004년 등록문화재 제92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7·4남북공동성명’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공식 천명했다.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인 이 건물은 2004년 등록문화재 제92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92호 ‘서울 의릉 구 중앙정보부 강당’ 표지에 ‘7·4남북공동성명’이 적혀 있다. ⓒ이선미
1995년 중정은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내곡동으로 이전했다. 그 자리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들어섰다. 2003년에야 복원이 시작돼 강당 앞 축구장과 테니스장은 흙으로 덮고 소나무를 심었다. 정자각 앞의 연못을 메우고 참도와 금천교 등을 복원했다. 외곽을 둘러싼 2㎞길이의 콘크리트 담장과 철조망 울타리, 초소와 지하벙커 등도 철거됐다.
의릉 안에 중앙정보부 강당이 남아 있다. ⓒ이선미
의릉이 시민들에게 개방된 것은 2005년으로 접근 불가 지역이 된 지 43년 만의 일이었다. 같은 성북구의 정릉이 잘 알려진 데 비해 의릉이 오랫동안 낯선 곳이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중앙정보부 강당을 지나오며 다시 바라본 능침 ⓒ이선미
신록 너머 정자각이 장엄하다. ⓒ이선미
의릉에 이어, 임시 개방한 천장산 숲길에 올랐다. 비밀의 숲에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조금 올라가자 ‘하늘이 숨겨놓은 곳’이라는 산에 연두색 울타리가 둘러쳐졌다. 울타리 너머로 종종 산책 나온 시민들이 스쳤다.
울타리 너머는 한예종에서 이어지는 ‘천장산 하늘길’이다. ⓒ이선미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나무 계단과 시멘트 계단이 이어졌다. 낯선 시멘트 계단은 군사시설의 흔적으로 보였다. 가끔 노송의 기운이 만만찮아 보이는 숲길에 의자가 놓여 있었다.
노송의 기운이 심상치 않은 길에 의자가 놓여 있다. ⓒ이선미
묘한 형태의 바위들 사이로 이어진 시멘트 계단은 군사시설 일부로 보인다. ⓒ이선미
살아서는 어머니로 인한 여러 고통을 겪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경종은 죽어서도 무덤이 수난을 겪었다. 다시 되찾은 의릉은,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무덤(懿陵)’으로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초록의 숲에서 어르신들이 망중한을 즐기고 홍살문 안 정자각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뛰놀았다.
시민들에게 개방된 의릉은 편안한 쉼터가 되고 있다. ⓒ이선미
좀 씁쓸했지만 우리 현대사까지 돌아본 의릉에서의 산책. 초록의 숲길에서 현대사의 한 자락을 밟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의릉 천장산 숲길은 6월 30일까지 개방한다.
■ 의릉
○ 위치 : 서울시 성북구 화랑로 32길 146-20 (석관동 409)
○ 가는법 : 6호선 상월곡역 3번 출구에서 335m
○ 개장시간 : 매일 9:00~18:30(6~8월), 월요일 휴무
○ 입장료 : 개인 1,000원, 단체 800원(10인 이상)
○ 홈페이지 바로가기(클릭)
○ 문의 : 02-964-0579
■ 서울 의릉 숲길 개방
○ 기간 : 2021. 5. 16.(일)~ 6. 30.(수), 월요일 휴관
○ 개방시간 : 9:00~17:00
○ 개방지역 : 의릉 내 천장산 숲길 약 970m
○ 문화재청 홈페이지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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