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의 첫 발을 내딛다

시민기자 양인억

발행일 2021.06.02. 14:10

수정일 2021.06.02. 18:09

조회 2,114

모처럼 맑았던 지난 토요일, 서울시 중구 소공동의 환구단 유적을 찾았다. 120여 년 전 서구 열강의 위협 속에서도 '옛 것을 근본으로 새로운 것을 참조한다'라는 구본신참(舊本新參)의 정신으로 근대화를 이끌던 고종이 새로운 나라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서 천제를 지낸 곳이 ‘환구단'이다. 비록 천단인 환구단은 일제에 의해 일부만 남기고 사라졌지만, 다행히 황궁우는 사적 제157호로 남아, 슬픈 역사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환구단은 새 나라 ‘대한제국'의 시작을 국내외에 알리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원리에 따라 환구단은 원형으로 지었다. 환구단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머문 이래로 중국 사신들의 숙소나 연회장으로 사용한 ‘남별궁’ 터에 만들었다. 이는 중국 사신들을 맞이하는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운 것과 같은 취지로 더 이상 중국의 제후국이 아닌 독립국의 위상을 표명한 것이다. 환구단 북쪽에 세운 황궁우는 대한제국 선포 2년 후인 1899년 천신과 지신 그리고 태조고황제의 신위를 모시고자 지은 것이다. 

지금의 황궁우는 고층 빌딩 속에 숨겨져 있어 존재조차 잘 모른다.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은 예전에 필자가 그랬듯이 이곳을 호텔 정원으로 오해한다. 다행히도 근래에는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코로나19로 인해 비록 소수이지만, 황궁우를 찾은 이들이 해설사로부터 황궁우와 대한제국의 역사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슬픈 역사의 현장이지만, 숨겨진 역사를 배우려는 어린이와 젊은 세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서울광장 건너 고층 빌딩 숲속에서 겨우 모습을 드러낸 2개의 전통 기와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120여 년 전, 자주독립국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하늘에 고한 환구단의 흔적이다 ⓒ양인억
서울광장 건너 고층 빌딩 숲속에서 겨우 모습을 드러낸 2개의 전통 기와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120여 년 전, 자주독립국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하늘에 고한 환구단의 흔적이다 ⓒ양인억
환구단 정문은 대한제국이 국권을 빼앗긴 탓에 대한제국 최고 제단인 천단의 정문에서 북한산 우이동 자락 옛 그린파크호텔 정문 신세가 된다. 2009년 제자리는 아니지만, 다행히 환구단 권역으로 돌아왔다 ⓒ양인억
환구단 정문은 대한제국이 국권을 빼앗긴 탓에 대한제국 최고 제단인 천단의 정문에서 북한산 우이동 자락 옛 그린파크호텔 정문 신세가 된다. 2009년 제자리는 아니지만, 다행히 환구단 권역으로 돌아왔다 ⓒ양인억
환구단 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보기 드문 팔각형 전통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병풍처럼 둘러싼 조선호텔의 크기 때문에 호텔의 정원으로 오해받고있는 이곳은 황궁우 영역이다 ⓒ양인억
환구단 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보기 드문 팔각형 전통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병풍처럼 둘러싼 조선호텔의 크기 때문에 호텔의 정원으로 오해받고있는 이곳은 황궁우 영역이다 ⓒ양인억
정면(남쪽)에서 바라본 황궁우. 황궁우는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1897년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2년 후인 1899년 태조 고황제의 신위를 배향하기 위해 준공되었다 ⓒ양인억
정면(남쪽)에서 바라본 황궁우. 황궁우는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1897년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2년 후인 1899년 태조 고황제의 신위를 배향하기 위해 준공되었다 ⓒ양인억
화려한 단청으로 치장한 황궁우 ⓒ양인억
화려한 단청으로 치장한 황궁우 ⓒ양인억
황궁우는 전각뿐만 아니라 지붕, 기둥, 주춧돌은 물론 계단의 난간석도 모두 팔각 부재를 사용하였다. 전통적으로 팔각은 '하늘과 땅을 잇는 도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양인억
황궁우는 전각뿐만 아니라 지붕, 기둥, 주춧돌은 물론 계단의 난간석도 모두 팔각 부재를 사용하였다. 전통적으로 팔각은 '하늘과 땅을 잇는 도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양인억
황궁우와 환구단을 연결해 주는 삼문. 현 조선호텔 자리가 환구단이 있었던 곳으로 일제는 자주국가의 출발이었던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현 조선호텔)을 세웠다. 황궁우를 그대로 둔 것은 일본제국의 위용(철도호텔)과 조선왕조의 초라함(황궁우)을 대비시키려는 의도였다 ⓒ양인억
황궁우와 환구단을 연결해 주는 삼문. 현 조선호텔 자리가 환구단이 있었던 곳으로 일제는 자주국가의 출발이었던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현 조선호텔)을 세웠다. 황궁우를 그대로 둔 것은 일본제국의 위용(철도호텔)과 조선왕조의 초라함(황궁우)을 대비시키려는 의도였다 ⓒ양인억
목재 대신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벽돌로 만들어진 삼문 ⓒ양인억
목재 대신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벽돌로 만들어진 삼문 ⓒ양인억
삼문 앞에 설치된 답도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용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양인억
삼문 앞에 설치된 답도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용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양인억
삼문 앞 계단은 난간석주 위에 해치와 용으로 장식한 답도 등으로 아담하지만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 장면은 삼문을 지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숨겨진 정경이다 ⓒ양인억
삼문 앞 계단은 난간석주 위에 해치와 용으로 장식한 답도 등으로 아담하지만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 장면은 삼문을 지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숨겨진 정경이다 ⓒ양인억
삼문의 3개 홍예문 천장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화려한 용 그림이 그려져있다. 사진은 중앙의 어문 천장 그림이다 ⓒ양인억
삼문의 3개 홍예문 천장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화려한 용 그림이 그려져있다. 사진은 중앙의 어문 천장 그림이다 ⓒ양인억
삼문의 가운데 홍예문인 어문 사이로 보이는 황궁우. 참고로 황궁우 내부는 통층으로 천장에는 여덟 개의 발톱을 가진 팔조룡이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고 한다 ⓒ양인억
삼문의 가운데 홍예문인 어문 사이로 보이는 황궁우. 참고로 황궁우 내부는 통층으로 천장에는 여덟 개의 발톱을 가진 팔조룡이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고 한다 ⓒ양인억
화강암 기단 위에 3층 규모로 서 있는 황궁우는 북쪽을 제외한 동, 서, 남 세 방향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양인억
화강암 기단 위에 3층 규모로 서 있는 황궁우는 북쪽을 제외한 동, 서, 남 세 방향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양인억
황궁우 한쪽에 쌓여 있는 부재들은 일제에 의해 훼철된 환구단의 흔적이다. 비록 환구단을 복원할 수는 없지만 나라 잃은 슬픈 역사를 돼새겨 볼 수 있는 아쉽지만 의미 있는 전시물이다 ⓒ양인억
황궁우 한쪽에 쌓여 있는 부재들은 일제에 의해 훼철된 환구단의 흔적이다. 비록 환구단을 복원할 수는 없지만 나라 잃은 슬픈 역사를 돼새겨 볼 수 있는 아쉽지만 의미 있는 전시물이다 ⓒ양인억
황궁우 동쪽에 있는 협문도 역시 벽돌을 이용해 만들었다. 홍예문 위, 좌‧우측에는 영지를 입에 물고 있는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양인억
황궁우 동쪽에 있는 협문도 역시 벽돌을 이용해 만들었다. 홍예문 위, 좌‧우측에는 영지를 입에 물고 있는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양인억
돌 북인 석고는 1902년 고종황제 즉위 40주년 및 육순(60세)을 바라보는 51세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물이다. 원래 석고는 환구단 동쪽, ‘석고각' 건물 안에 있었으나, 지금의 석고는 석고각을 잃고 제자리가 아닌 황궁우 서쪽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양인억
돌 북인 석고는 1902년 고종황제 즉위 40주년 및 육순(60세)을 바라보는 51세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물이다. 원래 석고는 환구단 동쪽, ‘석고각' 건물 안에 있었으나, 지금의 석고는 석고각을 잃고 제자리가 아닌 황궁우 서쪽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양인억
석고 몸체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용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대한제국 시기 석공의 뛰어난 실력을 살펴볼 수 있다 ⓒ양인억
석고 몸체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용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대한제국 시기 석공의 뛰어난 실력을 살펴볼 수 있다 ⓒ양인억

■ 환구단 / 황궁우

○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로 106 (소공동 87-1)
○ 운영시간 : 상시개방
○ 입장료 : 무료
중구청 홈페이지
문화재청 홈페이지

시민기자 양인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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