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에도 봄이 왔어요!

시민기자 양인억

발행일 2021.04.13. 11:30

수정일 2021.04.13. 17:52

조회 3,141

서울은 오랜 역사를 품은 궁궐의 도시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이렇게 5개의 궁궐을 갖고 있는 수도는 오직 우리나라뿐이다. 지금은 궁궐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서 당연한 듯 여기지만 5대 궁궐이 모두 함께 존재했던 기간은 19세기 말부터 약 100년이 조금 넘는다. 조선시대는 기본적으로 법궁(정궁)과 이궁의 양궐 체제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제3대 임금인 태종은 개경에서 한양으로 환도하면서 법궁인 경복궁 대신 이궁으로 창덕궁을 지으며 양궐 체제를 시작한다. 제1차 왕자의 난으로 개국공신 정도전을 제거한 태종은 정도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경복궁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1405년 창건되어 6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창덕궁은 임진왜란으로 다른 궁궐과 함께 전소되어 광해군 때인 1607년 중건된다. 따라서 현재 창덕궁의 가장 오래된 전각은 광해군 때 중건된 전각으로 대표적인 것이 돈화문이다. 중건 후 조선 후기 많은 임금들이 창덕궁에 거주하며 필요에 따라 건물을 추가하고, 화재로 소실 된 건물은 복구해 오다가 결정적으로 그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린 것은 일제강점기다. 다행히 1980년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시작된 복원으로 서울의 5대 궁궐은 하나씩 그 원형을 찾아가고 있다.

창덕궁은 법궁인 경복궁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임진왜란으로 270년간 단절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경복궁과 달리 가장 오랜 시간 왕실의 사랑을 받으며 사용된 곳이다. 유교의 궁궐 조형 원칙에 따라 남북의 종축선을 기준으로 정해진 틀에 맞춰 지어진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은 응봉 아래 경사진 지형에 어울리게 조성되었다. 때문에 경복궁보다 훨씬 편안하고 아늑하며 인간적인 궁궐 창덕궁은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 평가받는다. 이는 창덕궁 이후 지어진 3개의 궁궐(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모두가 창덕궁을 따라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건설된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필자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던 올 겨울 겨울왕국으로 소개한 창덕궁의 아름다운 봄 풍경도 소개하고자 한다. 예년보다 빠른 봄꽃 개화시기로 창덕궁의 많은 봄꽃은 이미 져 버렸다. 그렇지만 연초록의 신록이 기지개를 켜고, 고궁의 찬란한 봄을 장식하고 있다.
건물의 격을 높여주는 월대가 제대로 복원된 돈화문.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앞 월대는 공식적인 행사의 장이자 왕과 신하가 백성들과 소통하는 마당이다. ⓒ양인억
건물의 격을 높여주는 월대가 제대로 복원된 돈화문.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앞 월대는 공식적인 행사의 장이자 왕과 신하가 백성들과 소통하는 마당이다. ⓒ양인억
창덕궁의 포토존은 창덕궁 밖에도 있다. 궁장 너머 우뚝 솟은 창덕궁 정전, 인정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창덕궁1길이다 ⓒ양인억
창덕궁의 포토존은 창덕궁 밖에도 있다. 궁장 너머 우뚝 솟은 창덕궁 정전, 인정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창덕궁1길이다 ⓒ양인억
창덕궁 정전 인정전에 이르는 2번째 문, 진선문은 금천교를 건너야 만날 수 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관람객이 진선문 앞 금천교를 건너고 있다 ⓒ양인억
창덕궁 정전 인정전에 이르는 2번째 문, 진선문은 금천교를 건너야 만날 수 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관람객이 진선문 앞 금천교를 건너고 있다 ⓒ양인억
진선문에 들어서면 정면에 숙장문이 있고 인정전에 이르는 인정문은 좌측에 있다. 인정문 앞은 아랫조정으로 불리며 왕의 즉위식이 열리는 곳이다. 조선시대 왕의 승계는 대부분 임금이 승하한 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상 중에 치르게 된다. 기쁜 날이지만 슬픈 즉위식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즉위식을 마친 후 새로운 임금은 인정전에 올랐다가 다시 상복으로 갈아입고 상주로 되돌아간다 ⓒ양인억
진선문에 들어서면 정면에 숙장문이 있고 인정전에 이르는 인정문은 좌측에 있다. 인정문 앞은 아랫조정으로 불리며 왕의 즉위식이 열리는 곳이다. 조선시대 왕의 승계는 대부분 임금이 승하한 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상 중에 치르게 된다. 기쁜 날이지만 슬픈 즉위식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즉위식을 마친 후 새로운 임금은 인정전에 올랐다가 다시 상복으로 갈아입고 상주로 되돌아간다 ⓒ양인억
2단의 월대 위에 장중하게 자리하고 있는 인정전은 신하가 임금에게 하례를 올리는 조하, 세자 책봉식, 외국 사신 접견 등의 공식 행사 장소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제국이 된 이유로 경복궁과 달리 인정전은 황색을 사용했다. 또한 대한제국 상징문장인 오얏꽃 문장이 인정전 용마루에 장식되어 있다 ⓒ양인억
2단의 월대 위에 장중하게 자리하고 있는 인정전은 신하가 임금에게 하례를 올리는 조하, 세자 책봉식, 외국 사신 접견 등의 공식 행사 장소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제국이 된 이유로 경복궁과 달리 인정전은 황색을 사용했다. 또한 대한제국 상징문장인 오얏꽃 문장이 인정전 용마루에 장식되어 있다 ⓒ양인억
인정전 월대 위에 왕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정의 모습. 좌・우측에 각각 12개씩 설치된 품계석은 좌측에 문신, 우측에 무신이 품계에 따라 자리하는 위치를 표시한다. 이는 정조 임금이 조정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처음 설치한 것이다 ⓒ양인억
인정전 월대 위에 왕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정의 모습. 좌・우측에 각각 12개씩 설치된 품계석은 좌측에 문신, 우측에 무신이 품계에 따라 자리하는 위치를 표시한다. 이는 정조 임금이 조정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처음 설치한 것이다 ⓒ양인억
왕의 업무 공간(편전)인 선정전은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청기와가 설치된 건물이다. 조선시대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를 보면 선정전 앞에는 다양한 업무를 보는 궐내각사 건물로 가득했다. 즉, 조선시대는 지금과 달리 왕에 이르는 길이 결코 쉽지 않았다 ⓒ양인억
왕의 업무 공간(편전)인 선정전은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청기와가 설치된 건물이다. 조선시대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를 보면 선정전 앞에는 다양한 업무를 보는 궐내각사 건물로 가득했다. 즉, 조선시대는 지금과 달리 왕에 이르는 길이 결코 쉽지 않았다 ⓒ양인억
왕과 신하가 국정을 논하는 선정전은 때로 왕이나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혼전으로도 사용되었다. 선정전 앞의 천랑은 선정전이 혼전으로 사용된 흔적이다 ⓒ양인억
왕과 신하가 국정을 논하는 선정전은 때로 왕이나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혼전으로도 사용되었다. 선정전 앞의 천랑은 선정전이 혼전으로 사용된 흔적이다 ⓒ양인억
왕의 침전인 희정당은 선정전이 혼전으로 종서 편전으로 바뀌어 사용된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창덕궁 대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 복구하면서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옮겨지었다. 지붕의 서쪽 합각면에 “녕”자는 강녕전의 흔적이다 ⓒ양인억
왕의 침전인 희정당은 선정전이 혼전으로 종서 편전으로 바뀌어 사용된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창덕궁 대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 복구하면서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옮겨지었다. 지붕의 서쪽 합각면에 “녕”자는 강녕전의 흔적이다 ⓒ양인억
화려한 단청과 황제를 상징하는 용 문양이 장식되어 있는 희정당 내부. 1917년 화재 후 복구하면서 전등, 유리 등 근대문물을 적절히 사용하였다 ⓒ양인억
화려한 단청과 황제를 상징하는 용 문양이 장식되어 있는 희정당 내부. 1917년 화재 후 복구하면서 전등, 유리 등 근대문물을 적절히 사용하였다 ⓒ양인억
창덕궁의 정식 침전인 대조전에 이르는 선평문. 왕비의 생활공간인 대조전의 정문답게 여자들이 열고 닫기 편한 접이문이 달려있다 ⓒ양인억
창덕궁의 정식 침전인 대조전에 이르는 선평문. 왕비의 생활공간인 대조전의 정문답게 여자들이 열고 닫기 편한 접이문이 달려있다 ⓒ양인억
희정당과 마찬가지로 1917년 화재로 소실된 대조전은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지었다. ⓒ양인억
희정당과 마찬가지로 1917년 화재로 소실된 대조전은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지었다. ⓒ양인억
환기를 위해 문을 열어 둔 대조전 행랑 밖으로 희정당의 화려한 단청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양인억
환기를 위해 문을 열어 둔 대조전 행랑 밖으로 희정당의 화려한 단청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양인억
세자의 공부방인 관물헌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관람객 ⓒ양인억
세자의 공부방인 관물헌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관람객 ⓒ양인억
낙선재 소나무 화계와 매년 봄이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능수벚꽃이 아름답다 ⓒ양인억
낙선재 소나무 화계와 매년 봄이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능수벚꽃이 아름답다 ⓒ양인억
봄꽃이 화려한 낙선재 화계 위 상량정은 육모 정자로 경복궁 향원정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정자다. 원래 이름은 평원루로 일제강점기 상량정으로 바뀌었다. 상량정 뒤로 보이는 단청없는 긴 건물은 헌종이 서화를 보관했던 건물이다 ⓒ양인억
봄꽃이 화려한 낙선재 화계 위 상량정은 육모 정자로 경복궁 향원정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정자다. 원래 이름은 평원루로 일제강점기 상량정으로 바뀌었다. 상량정 뒤로 보이는 단청없는 긴 건물은 헌종이 서화를 보관했던 건물이다 ⓒ양인억
헌종이 후궁으로 맞이한 경빈 김씨를 위해 별궁으로 지은 낙선재. 영조의 검소함을 칭송한 헌종은 낙선재에 화려한 단청을 하지 않았다 ⓒ양인억
헌종이 후궁으로 맞이한 경빈 김씨를 위해 별궁으로 지은 낙선재. 영조의 검소함을 칭송한 헌종은 낙선재에 화려한 단청을 하지 않았다 ⓒ양인억
임금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 앞에서 바라본 인정전. 보춘문을 지나 좌측에 있는 건물은 양지당으로 임금이 선원전에 재를 올리기 전에 머물던 어재실이다 ⓒ양인억
임금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 앞에서 바라본 인정전. 보춘문을 지나 좌측에 있는 건물은 양지당으로 임금이 선원전에 재를 올리기 전에 머물던 어재실이다 ⓒ양인억
왕조시대 모든 일은 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왕이 머무는 궁궐에는 주요 관청의 출장소가 모여서 궐내각사를 이루고 있다. 비록 2005년 복원된 궐내각사지만 겹겹이 쌓여있는 지붕선이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양인억
왕조시대 모든 일은 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왕이 머무는 궁궐에는 주요 관청의 출장소가 모여서 궐내각사를 이루고 있다. 비록 2005년 복원된 궐내각사지만 겹겹이 쌓여있는 지붕선이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양인억

■ 창덕궁

○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번지
○ 운영시간
- 2~5월 & 9~10월: 09:00-18:00(입장마감은 17:00)
- 6~8월: 09:00-18:00(입장마감은 17:30)
- 11~1월: 09:00-17:30(입장마감은 16:30)
○ 입장료: 3,000원 (대인기준)
○ 휴무일: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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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양인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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