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역사를 한눈에 '서울 여담재' 개관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1.04.07. 15:00

수정일 2021.05.12. 10:24

조회 9,484

종로구 창신동 옛 원각사 자리에 여성역사 서가, 배움공간, 전시공간 조성

단종비 정순왕후의 고단한 삶이 이어졌던 동망봉 근처에 '서울여담재(女談齋)'가 새롭게 개관했다. 종로구 창신동 옛 원각사 부지에 들어선 여성역사문화공간이다. 
창신숭인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원각사를 리모델링해 여성역사 문화공간 '여담재'가 문을 열었다. ⓒ이선미
창신숭인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원각사를 리모델링해 여성역사 문화공간 '여담재'가 문을 열었다. ⓒ이선미

낙산공원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있어서 금방 눈에 띄었다. 단정해 보이는 건물 안쪽은 아직 인적이 드물었다. 4월 정식 개방을 앞두고 지난 3월 특별전 ‘여담재, 매화로 열다’가 시작됐지만 코로나19 방역 조치 때문에 관람하려면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길에서 바로 이어지는 여담재 별관에서는 7월까지 특별전 ‘여담재, 매화로 열다’가 이어진다.ⓒ이선미
길에서 바로 이어지는 여담재 별관에서는 7월까지 특별전 ‘여담재, 매화로 열다’가 이어진다.ⓒ이선미

원래 이곳에는 불교 태고종 '단종대왕 천도 도량' 원각사가 있었다. 말 그대로 단종을 위해 기도하던 사찰을 서울시가 리모델링하고 새로운 건물을 신축해 '서울 여담재'로 꾸몄다. 
단종을 위해 기도하던 사찰 원각사 자리에 여성들의 역사를 조명하는 공간이 들어섰다.ⓒ이선미
단종을 위해 기도하던 사찰 원각사 자리에 여성들의 역사를 조명하는 공간이 들어섰다.ⓒ이선미

신축한 별관은 여성역사 배움공간으로 사용되고, 기존의 원각사를 리모델링한 본관에는 여성사 전시공간과 여성역사 서가, 미디어자료관 등이 자리한다. 
여성역사 서가에는 여성 역사인물, 생활사 자료, 구술자료 등을 통해 지역별, 시대별 여성사 자료를 비치한다. 
아직 시민들의 발길이 뜸하지만 상황이 안정적으로 접어들면 여성역사 특강, 여성 주제 영화 상영 등 시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진행될 예정이다.
전시실  아래 지하 3층 서가에는  여성사 관련 도서 1만여 권을 비치할 예정이다.ⓒ이선미
전시실 아래 지하 3층 서가에는 여성사 관련 도서 1만여 권을 비치할 예정이다.ⓒ이선미

'서울여담재'의 개관 기념으로 이동원 작가의 '여담재, 매화로 열다'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작가 이동원은 오랫동안 매화를 그려온 여성으로, 매화의 생장과정과 그 특성이 자신의 삶, 또는 우리가 겪는 고난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뼛속 깊이 시린 추위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는 의지와 정신, 이것이 매화로 말하고자 하는 그것이다.”라고 밝혔다. 
특별전 ‘여담재, 매화로 열다’와 관련한 교육 동영상을 볼 수 있다.ⓒ이선미
특별전 ‘여담재, 매화로 열다’와 관련한 교육 동영상을 볼 수 있다.ⓒ이선미

작가는 전시에서 여러 형태의 매화를 선보인다. 수묵으로 매화를 그린 전통적인 '묵매'부터 '청매', 묵매를 모시에 표현한 ‘탐매’, 중국 송나라 때 매화 그리는 법을 엮은 ‘매화희신보’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한 ‘매화희신보’ 등이 때론 소박하게 때론 거침없이 매화를 그려낸다.
모시에 매화를 표현한 ‘탐매’는 프레임을 벗어나 자유로운 매화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이선미
모시에 매화를 표현한 ‘탐매’는 프레임을 벗어나 자유로운 매화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이선미

'탐매'는 선비들이 즐기던 고매한 취향으로 여겨졌다. 특히 퇴계 이황은 자신이 키우던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매화를 사랑했다. 여성 이동원의 탐매전은 그런 의미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어가겠다는 여담재의 지향과 맞물려 있다.  
6미터에 달하는 ‘설매’다. ⓒ이선미
6미터에 달하는 ‘설매’ 작품. ⓒ이선미

전시공간에서 나오니 눈앞에 초가집 한 채가 보였다. 조선 실학자 이수광이 살았던 집터인, '비우당(庇雨堂)'이다. ‘겨우 비를 피할 수 있는 집’이라는 의미의 이 집에서 그는 ‘지봉유설’을 썼다.
지봉 이수광이 살았다는 비우당 집터를 복원했다.ⓒ이선미
지봉 이수광이 살았다는 비우당 집터를 복원했다.ⓒ이선미

사실 여담재를 찾아가면서 보고 싶은 곳이 따로 있었다. 늘 가보고 싶던 '여인들의 우물'이었다. 단종비 송씨가 비단을 빨던 샘이 있던 곳이라는 '자주동샘'이다. 자주동샘과 비우당이 같이 그려진 약도를 봤는데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산책에 나선 주민이 있어서 우물이 어디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비우당 뒤쪽을 가리켰다. 찬찬히 보니 초가집 뒤로 바위와 우물 터 같은 곳이 보였다. 코로나19 때문에 출입금지여서 가까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뭔가 다소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곳의 또 다른 주인공 정순왕후와 자주동샘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정순왕후가 자주동샘에서 빤 옷감을 널었다는 바위와 우물이 보인다.ⓒ이선미
정순왕후가 자주동샘에서 빤 옷감을 널었다는 바위와 우물이 보인다.ⓒ이선미

단종이 영월로 유배된 후 정순왕후는 지금의 숭인동 정업원에서 명주로 댕기나 저고리깃, 옷고름 등을 만들어 생계를 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정업원 가까운 한 바위 밑에 물이 흘러 명주를 빨았는데 자주색 물이 들어 '자주동샘'으로 불렸다. 그는 단종이 세상을 떠나고도 60여 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비우당 처마 뒤 바위에 자주동샘(紫芝洞泉)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이선미
비우당 처마 뒤 바위에 자주동샘(紫芝洞泉)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이선미

단종은 너무나 애통한 역사로 회자돼 왔지만 폐서인으로 신산한 삶을 이어간 정순왕후는 오랫동안 잊혀졌다. 그렇게 잊히고 배제된 삶은 지난 세대 여성들의 삶이기도 했다. 그런 역사가 배어있는 곳에 들어선 여성들의 역사문화공간이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자못 기대가 커진다. 

홍보 영상을 통해 여담재 이혜경 관장은 “여성 역사에 대해 새롭게 발굴하고 전기와 자서전, 구술사, 유물 등을 수집해 재구성함으로써 여성 역사공간으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이렇게 발견된 것들을 문화적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서울 시민들, 특히 지역 주민과 나누는 일”이 여담재의 나아갈 방향이라고 밝혔다. 
여성들의 역사문화공간 여담재는 단종을 기리던 원각사를 리모델링한 공간이다.ⓒ이선미
여성들의 역사문화공간 여담재는 단종을 기리던 원각사를 리모델링한 공간이다.ⓒ이선미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불평등과 차별 등을 없애 남녀노소 모두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새로 문을 연 이 공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여성상을 확산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

■ 서울여담재 안내

○ 위치: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7-26
○ 이용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까지 하루 12회, 회당 30분 관람 가능
○ 문의전화 : 070-5228-3076
○문의메일 : saerom20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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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을 위해 전화나 이메일 통해 사전예약 필요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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