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단공원 '놀면 뭐하니? 남산독립원정대' 참가기
발행일 2021.03.02. 13:11
독립원정대가 되어 장충단공원을 걸어보자!
남산을 오르기 위해 수없이 지나다녔던 곳이 장충단공원이다.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그곳에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조국선열들의 숨결을 곳곳에서 발견했다. ‘놀면 뭐하니? 남산독립원정대’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사명대사상, 이준열사 동상, 이한응열사 기념비, 유관순상 등등 보물찾기를 하듯 하나하나 찾아보고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장충단공원에서 '남산독립원정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김수정
‘놀면 뭐하니? 남산독립원정대’는 국가 독립을 위한 역사적 숨결을 찾아 장충단공원을 돌아보는 중부공원녹지사업소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가족 단위로 참여할 수 있어 일요일 오후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집결장소인 장충단비로 향했다. 명단을 확인하고 발열 체크 후에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코로나감염증 예방을 위해 최소인원으로 진행되어 A조와 B조로 나뉘어 활동이 이뤄졌다.
해설사와 함께 역사의 숨결을 찾아나섰다. ⓒ김수정
장충단비는 1895년 명성황후시해 사건 때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1900년 11월에 세워진 비석이다. 장충단공원은 원래 공원이 아니었다.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었다. 처음에는 명성황후시해 사건 때 순사한 장졸들의 영혼을 위해 제사를 지냈지만 다음 해부터는 임오군란, 갑신정변 당시에 순의, 사절한 문신들을 위해서도 함께 제를 올랐다. 그러나 몇 년 지내지도 못하고 일제에 의해 폐사되고 공원이 된다.
“'안개 낀 장충단공원'이란 노래 아시나요? 그 노래는 장충단공원의 역사적인 의미를 잘 담고 있습니다.”
“'안개 낀 장충단공원'이란 노래 아시나요? 그 노래는 장충단공원의 역사적인 의미를 잘 담고 있습니다.”
장충단비, 명성황후시해사건 때 희생된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1900년에 세워졌다. ⓒ김수정
해설사를 따라 돌다리를 건너 다리를 관찰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다. 세종대왕이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 청계천의 수위를 재는 수표를 세워 수표교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때 철거되어 홍제동으로 이전되었다가 1965년 지금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기둥의 가운데는 물의 흐름이 유연하도록 앞이 뾰족하게 나오도록 만들었다.
세종대왕이 강수량을 재는 수표를 세워 이름 지어진 '수표교' ⓒ김수정
다시 다리 위로 올라와 찾아간 곳은 사명대사상. 출가한 뒤 2년 만에 승과에 합격했을 만큼 똑똑하고 말도 잘해 살생을 금하는 승려를 설득해 임진왜란 때 함께 왜군과 싸웠다고 한다. 일본에 건너가 우리나라 사람 3,000여 명을 구하고 일본이 노략질해 가져간 많은 보물을 되찾아 오는 등 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승려인 '사명대사상' ⓒ김수정
다음부터 발견한 것들은 일본강점기 독립을 위해 애쓴 분들을 위한 비석과 동상들이다.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던 것은 파리장서비. 1919년 3.1 운동 당시 기독교, 천도교, 불교의 종교인들이 민족대표로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만세운동을 이끌었지만, 유림은 함께 하지 않았다. 이에 유림에서도 일본 침략을 폭로하기 위해 파리 세계만국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였고 이후 이러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다.
한국 유림 독립운동을 기념한 '파리장서비' ⓒ김수정
헤이그 특사로 특파되어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했던 이준 열사 동상, 제1차 한일협약이 맺어지고 대외적으로 영일동맹으로 한국 정부의 지위가 떨어지자 이를 개탄해 자결한 이한응 열사 기념비, 여성 독립운동가로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삼창을 외친 유관순 상까지 하나하나 돌아보며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헤이그 특사로서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알린 '이준 열사 동상' ⓒ김수정
“열사와 의사의 차이가 뭔지 아시나요?”
해설사의 물음에,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 선뜻 답이 떠오르질 않는다. 고래를 갸우뚱거리고 있으니 해설사분이 바로 말해준다. “안중근 의사라고 하지 안중근 열사라고 하진 않지요? 열사는 나라를 위해 맨몸으로써 저항하여 자신의 지조를 나타내는 사람이고, 의사는 무력으로 행동을 통해 공적을 세운 분들입니다.”
해설사의 물음에,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 선뜻 답이 떠오르질 않는다. 고래를 갸우뚱거리고 있으니 해설사분이 바로 말해준다. “안중근 의사라고 하지 안중근 열사라고 하진 않지요? 열사는 나라를 위해 맨몸으로써 저항하여 자신의 지조를 나타내는 사람이고, 의사는 무력으로 행동을 통해 공적을 세운 분들입니다.”
아우내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유관순상' ⓒ김수정
높게 솟아오른 뾰족한 탑은 ‘3.1운동 기념탑’이다. 서대문형무소 앞, 독립공원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장충단공원에도 3.1운동 기념탑이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잔혹한 식민통치로부터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전개된 3.1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세운 탑이다.
장충단공원에도 '3.1운동 기념탑'이 있다. ⓒ김수정
이제 국립극장을 지나 남산공원길을 걸었다. 봄이 코앞으로 다가온 듯 제법 따뜻한 날씨에 산책하기도 좋았다. 남산독립원정대로 참여했다는 것도 잠시 잊고 산책하듯 가볍게 걷다가 활을 쏘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국궁의 요람인 석호정이다.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국궁 도장으로 원래의 위치는 남산터널 위라고 한다. 옛 석호정은 이순신 장군도 이용했다 하고, 백범 김구가 그곳에서 찍은 사진도 남아 있단다.
국궁의 요람인 '석호정' ⓒ김수정
남산독립원정대의 마지막 코스는 최현배비다. 도착 전 석호정 옛터를 표시한 비석도 볼 수 있었다. 최현배비는 지금까지 본 비석과는 차이가 있다. 글자가 한글로 새겨져 있다. 최현배는 국어 연구에 크게 이바지한 국어학자였던 까닭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도 어문을 지키고자 노력하였고,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을 옥고를 겪었다.
국어학자로서 일제강점기에 어문을 지켰던 '최현배비' ⓒ김수정
“그냥 지나치고 가면 이런 것들이 있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길을 걷다가 안내문 같은 것이 있으면 잠시 멈춰서 읽어보셔요. 그곳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해설을 들으며 장충단공원을 한 바퀴 빙둘러 조국선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해설사와 인사를 나누며 프로그램은 마무리되었다.
장충단공원의 프로그램은 조금씩 바뀌면서 계속해서 운영된다고 한다. 해설사분은 한번 참여했어도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오면 또 들을 수 있다며 다시 또 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장충단공원의 프로그램은 조금씩 바뀌면서 계속해서 운영된다고 한다. 해설사분은 한번 참여했어도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오면 또 들을 수 있다며 다시 또 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남산독립원정대의 해설사 ⓒ김수정
■ 장충단공원
○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57-10
○ 가는법: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 도보 1분
○ 프로그램 예약사이트에서 '남산독립원정대' 검색해서 참여 예약
○ 문의: 중부공원녹지사업소 02-3783-5995
○ 가는법: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 도보 1분
○ 프로그램 예약사이트에서 '남산독립원정대' 검색해서 참여 예약
○ 문의: 중부공원녹지사업소 02-3783-5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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