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창덕궁 인정전' 내부 전격 공개

시민기자 김진흥

발행일 2019.03.13. 15:45

수정일 2019.03.13. 16:50

조회 5,761

황금색 전등과 커튼으로 장식된 인정전 내부

황금색 전등과 커튼으로 장식된 인정전 내부

지난 6일, '창덕궁 인정전 내부관람' 프로그램이 올해 첫 실시됐다. 인정전에 들어가는 것은 늘 있는 기회가 아니므로 특별할 수밖에 없다.

정전은 궁궐에서 으뜸가는 집으로 왕의 즉위식이나 결혼식, 외국의 사신을 맞이했던 핵심공간이다. 또한, 이곳에서 왕이 중신들과 함께 주요한 나랏일을 논하기도 했다.

인정전은 조선 왕궁 5개 정전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창덕궁의 정전이다. 현재 국보 제225호로 지정돼 있다.

창덕궁 인정전

창덕궁 인정전

1405년 창덕궁과 함께 지어진 인정전(仁政殿)은 이름처럼 ‘어진 정치’를 펼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됐던 인정전은 1608년 중건됐다. 이후 경복궁이 중건될 때(1868년)까지 250년 넘게 궁궐의 상징적 기능을 맡았다. 광해군부터 철종 때까지 인정전은 조선 궁궐의 핵심이었던 셈이다.

창덕궁의 정전은 1803년에 또 한 번 불탔지만 1805년에 지어져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0년 넘게 현존하는 창덕궁 인정전. 겉모습과 달리 인정전 안은 여러 비밀들이 숨어 있다. 인정전 내부관람 프로그램이 특별한 이유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인정전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

인정전 천장의 봉황 목조각

인정전 천장의 봉황 목조각

우선, 인정전 내부 중앙 천장에는 봉황 목조각이 있다. 약 15m 정도 높이에 있는 봉황은 서로 바라보고 있는 형상을 띤다. 봉황은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설문> 책에는 ‘‘봉황은 신조다’’라면서 ‘‘동방에 공자국에서 살고 있고 봉황이 나타나면 바로 태평성대’’라고 적혀 있다. 봉황을 통해 백성을 잘 다스리고 싶어 했던 조선시대 왕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봉황은 인정전 내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왕이 앉는 자리인 용상 바로 위에도 봉황 목조각이 있고, 커튼 위로도 봉황들이 진열돼 있다. 태평성대를 바라는 왕의 마음이 인정전 여기저기에 깃들어져 있다.

그렇다면 용상이 중앙에 위치해 인정전 천장의 봉황 바로 아래에 있다면 더 근사하지 않았을까? 왜 굳이 더 깊숙한 곳에 용상을 배치했을까?

창덕궁 해설사는 “왕이 안쪽에 있는 이유는 더 신비롭게 보이기 위함이다. 인정전은 행사 때 문을 걷어 올리거나 문짝을 드러냈다. 그러면 안에서 밖이 다 보이는데 밖에서는 안쪽을 보기 어렵다. 이는 왕이 확실히 지배하면서 더 신비로운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용상 뒤 4폭의 그림들

용상 뒤 4폭의 그림들

또한 오직 창덕궁 인정전에서만 볼 수 있는 그림들도 있다. 용상 뒤 ‘일월오악도’ 아래쪽에 있는 4폭의 그림들이 그렇다.

용상 오른쪽 2폭에는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용과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상상 속 동물 기린이 그려져 있다. 용상 왼쪽 2폭 그림에는 봉황과 거북이가 존재한다. 봉황은 앞서 말했듯 태평성대를 뜻하고, 거북은 장수를 상징한다.

이 그림 4폭은 다른 정전들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림들이다. 그리고 외부에서는 시야로 인해 보기 어려워 내부관람 프로그램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용상, 임금을 보호하기 위한 귀신 얼굴 등 인정전 내부 장식들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대한제국'의 흔적들을 엿보다

황금색 전등과 커튼으로 장식된 인정전 내부

황금색 전등과 커튼으로 장식된 인정전 내부

앞서 말했듯 현재 인정전은 200년이 넘은 건물이다. 그러나 화려한 황금색으로 꾸며진 내부는 1907년 정도의 모습을 띤다.

창덕궁 인정전은 덕수궁 중화전과 같이 조선의 정전이자 대한제국의 정전이었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나서, 1907년 순종이 대한제국 황제에 취임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인정전 내부를 서양식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전등과 유리창 등이 그 흔적들이다.

인정전 마룻마닥(헤링본 양식)

인정전 마룻마닥(헤링본 양식)

이즈음 마룻바닥도 서양식으로 개조했다. 원래 인정전 바닥은 인정전 주변 바닥에 있는 전돌과 같았다. 내외부 구분이 따로 없이 하나로 된 바닥이었다. 인정전을 출입할 때 신발을 벗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는 조선 전통 방식이었는데 순종 때 헤링본 양식의 서양식 마루로 바뀐 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설사는 “당시 사람들은 서양식이 좋아 보였고, 서양식이 유행했다. 그 흐름이 인정전에도 왔고 마룻바닥을 비롯한 여러 서양 것들은 그 흔적들이다. 인정전은 조선 전통과 근대 문화가 함께 있는 곳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하나 놀라운 것은 커튼이었다. 서양식 문물로 보여졌던 인정전 커튼이 우리나라 식이라는 대목에서였다. 해설사는 “현재 인정전 커튼은 서양식이 가미가 된 건 맞지만 우리나라 식으로 보는 게 맞다. 우리나라도 원래 방한용으로 커튼이 있었다. 권위를 나타내는 용도로도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인정전에 걸린 커튼은 2012년 제작한 것으로 옛 커튼은 너무 낡아서 고궁박물관에 영구 보존 중이다.

일월오악도의 숨겨진 뜻

일월오악도

일월오악도

지난해 9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창덕궁에서 맞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시행했다. 인정전이 과거 조선시대 때 외빈들이 왔을 때 공식 환영식을 했던 곳이었던 만큼 행사를 진행하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창덕궁 인정전 안에 있는 일월오악도를 소개했다. 일월오악도는 해와 달, 5개 산들이 그려진 그림이다. 이는 왕과 왕비, 조선의 모습을 빗댄 것으로 왕이 조선 땅을 다스린다는 권위를 상징한다. 여기서 5개의 산들은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지리산, 삼각산(북한산)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월오악도에 있는 산들 중 3개는 북한에 있고 2개는 남한에 있다고 얘기하면서 현 한반도 상황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조선시대 장소와 그림을 통해 우리나라 옛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 상황을 슬기롭게 전하는 모습이었다.

인정전 내부에서 남산타워를 봐야 하는 이유

인정전 내부에서 바라본 풍경 (이날은 미세먼지가 매우 심해 남산타워가 보이지 않았다)

인정전 내부에서 바라본 풍경 (이날은 미세먼지가 매우 심해 남산타워가 보이지 않았다)

<정아조회지도>에 따르면 창덕궁 인정전 내부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왕을 포함해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과 왕의 비서인 승지뿐이었다. 인정전 내부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조선시대 극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 인정전 내부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 광경을 맛볼 수 있다.

인정전 해설사는 내부관람을 오는 사람들에게 항상 보여주는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남산타워다.

해설사는 “남산은 서울의 상징이고 남산타워는 서울의 랜드마크다. 인정전은 조선시대에 가장 권위가 있었던 건물들 중 하나다. 여기서 현대 랜드마크를 본다는 것 자체가 조선과 현대가 시간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중간에 일제강점기로 인해 잠깐 끊기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면서 이어온 역사를 여기서 볼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면서 인정전 내부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에 대해 설명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관람객들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관람객들

창덕궁 인정전 내부 관람을 한 시민은 “겉으로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안에서 확인하니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 해설사의 깊은 설명과 함께 관람하니 특별했다. 이런 독특한 풍경의 정전은 이곳밖에 없을 듯하다”라고 전했다.

창덕궁 인정전 내부관람은 전문 해설사의 인솔 아래 이뤄진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3월과 11월에만 운영한다. 4~10월에 입장 가능했던 작년에 비해 기회가 크게 줄어들었다. 창덕궁 관계자는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내부 관람 일수를 축소했다”고 언급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일 4회(오전 10시 30분, 11시, 오후 2시, 2시 30분)로 회차마다 선착순 30명만 입장 가능하다. 그러니 시간에 맞게 오기보다 미리 와서 기다리는 걸 권장한다. 1회차(10시 30분)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10시 15분부터 시작되는 창덕궁 전각 영어 해설과 연계해 진행한다. 그래서 한국어 해설은 2회차(오전 11시)부터 실시하는 셈이다. 회차당 약 20~30분간 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창덕궁 인정전은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을 연결하는 장소다. 한 곳에서 우리나라의 여러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아마 이런 장소는 흔치 않을 듯하다. 창덕궁의 숨은 매력, 인정전의 속내를 직접 보고 밟고 느껴보길 바란다.

■ 창덕궁 인정전 내부관람

○ 일정 : 3월 6일 ~ 3월 30일 매주 수,토요일
○ 관람시간 : 10:30(영어), 11:00(한국어), 14:00(한국어), 14:30(한국어)
※ 10:30분 관람은 10:15분 전각 영어 관람과 연계하여 진행
○ 대상 : 일반인(회차당 선착순 30명)
○ 접수 : 인정전 좌측(당일 관람 20분 전 부터 현장접수)
○ 소요시간 : 20분 내외
○ 해설 : 창덕궁관리소 해설사 인솔하에 제한관람
○ 참가비 : 무료(창덕궁 입장료 별도)
○ 문의 : 02-3668-2300 홈페이지 : http://www.cdg.go.kr/default.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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