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마침표, 어떻게 아름답게 준비할까? (ft. 웰다잉 특강)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4.10.22. 16:16

수정일 2024.10.22. 16:41

조회 2,300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해 생각해 보자. ⓒGetty Images Bank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해 생각해 보자. ⓒGetty Images Bank
한때 우리 사회에 ‘웰빙’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웰빙(Well-Being)'은 잘 살아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정신적, 육체적인 건강과 행복, 복지와 안녕을 의미하고, 사회적 의미는 물질적 부가 아니라 진정한 삶의 질을 강조하는 생활 방식을 가리킨다.

‘웰빙’이 있다면 ‘웰다잉’도 있다. '웰다잉(Well-Dying)'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삶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길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을 스스로 미리 준비하는 것은 자신의 생을 뜻깊게 보낼 뿐 아니라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생로병사를 겪으면서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주어진 인생을 잘 살아가기를 원하듯 생의 마지막에선 잘 죽기를 원한다. 그런 점에서 서울 시내 자치구에서 열리는 ‘웰다잉’ 관련 프로그램에 주목해 보자. 서대문구강남구웰다잉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대문구 보건소에서 웰다잉 인식 확산을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윤혜숙
서대문구 보건소에서 웰다잉 인식 확산을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윤혜숙

‘웰다잉 영화’ 보며 오늘의 삶을 생각해 봐요~

먼저, 서대문구의 ‘웰다잉 영화 인문학’ 프로그램을 알아 보았다. 서대문구 보건소에서 웰다잉 인식 확산을 위해 해당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0월 15일, 22일, 29일 총 3주 차에 걸쳐 김혜준 강사(오늘교육원 부대표)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10월 15일 첫 프로그램에 수강생으로 참여했다. 영화를 보면서 웰다잉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김혜준 강사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웰다잉’의 의미를 알려줬다. “웰다잉은 행복한 죽음,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해 현재의 나를 재해석해 보며,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함”이라고 했다. 웰다잉은 결국 '잘 사는 삶'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얼마나 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사느냐가 중요하다.
영화 <장수상회>를 보면서 웰다잉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윤혜숙
영화 <장수상회>를 보면서 웰다잉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윤혜숙
1차시 강의에서 함께 본 영화는 <장수상회>였다. <장수상회>는 노인의 삶과 가족 그리고 노년에 마주하는 현실을 그려낸다. 그리고 치매에 걸린 노인과 함께하는 가족의 관계를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다. 치매에 걸린 성칠이 깨어나 과거 앨범을 들여다보면서 잊었던 지난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에 이르자, 수강생들 모두가 숙연해졌다. 앞자리에 앉은 어르신이 연신 눈물을 닦아낸다.

김혜준 강사는 <장수상회>를 세 부분으로 나눠서 영화를 보여주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알려줬다. 영화는 자존감과 삶의 의미, 가족 관계의 어려움과 갈등 해소의 핵심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 인간이 가장 마지막까지 기억하는 감정은 사랑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김혜준 강사는 <장수상회> 외에 비슷한 주제의 영화 <러블리, 스틸>,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아무르> 등도 추천해 줬다.

마지막으로 김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사랑 가득한 하루 보내기’를 약속했다. 강의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강생들 대다수가 머리가 희끗해진 노년층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짧은 그분들에게 웰다잉을 생각해보게 하는 오늘의 강의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올 것 같았다.
비슷한 주제로 영화 <러블리, 스틸>,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아무르> 등을 추천했다. ⓒ윤혜숙
비슷한 주제로 영화 <러블리, 스틸>,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아무르> 등을 추천했다. ⓒ윤혜숙
강의가 끝난 뒤 김혜준 강사에게 궁금한 점을 더 물어 보았다.

Q. 웰다잉을 주제로 영화 인문학 강의를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웰다잉을 주제로 한 영화 인문학 강의를 시작한 지는 3~4년 정도 되었어요. 제가 다루고 싶었던 주제입니다. 평소 죽음과 노인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는데요. 아마도 제 성장 과정과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웰다잉’이라는 개념이 부각되면서, 웰다잉을 일상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공부와 강연으로 이어졌어요.

Q. '웰다잉'이라는 키워드가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A. 제 강의는 죽음에 대한 실질적인 준비, 즉 연명 치료, 장례 준비, 유언장 작성 등과 같은 주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저는 강의에서 결국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나에 대한 고찰, 일상의 소소한 행복, 그리고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과의 관계를 더욱 에너지를 내어 지속해 나가는 삶을 포함합니다.
서대문구 보건소 1층에 사전연명상담실이 있어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윤혜숙
서대문구 보건소 1층에 사전연명상담실이 있어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윤혜숙
나머지 2, 3차시에 다룰 영화도 궁금했다. 김혜준 강사로부터 미리 영화를 소개 받고, 그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알아봤다. <비밥바룰라>는 우정, 죽음, 그리고 삶의 마무리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정해진 죽음을 앞두고 오랜 친구들과 하루하루를 정말 소중하고 행복하게 보내는 ‘선택’을 한다. 정해진 죽음 앞에서 우리는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오늘을 소중하게 사는 것이다.

<소풍>은 삶의 의미와 자아의 존중, 사회적 문제를 통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노년 세대가 겪는 감정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예전과는 다른 신체적 한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소풍>이라는 제목은 중의적 표현인 것 같다. 죽음을 소풍이라고 표현한 것 같기도 하고, 노년의 삶이 끝이 아닌 새로운 여정임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강남구청에서 ‘나의 해피엔딩 노트’ 웰다잉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강남구청
강남구청에서 ‘나의 해피엔딩 노트’ 웰다잉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강남구청

‘나만의 해피엔딩 노트’ 적어 볼까?

웰다잉을 위해서 죽기 전까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강남구의 웰다잉 프로그램도 주목해 보자.

강남구청에서는 ‘나만의 해피엔딩 노트’ 웰다잉 특강을 진행한다. 올해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2회 계획되어 있다. 1차는 10월 25일부터 11월 1일, 8일 오후 2시부터 강남힐링센터(코엑스)에서, 2차는 11월 15일부터 22일, 29일 오후 2시부터 강남힐링센터(개포)에서 열린다.

3주 차에 걸쳐 강원남 소장(행복한죽음웰다잉 연구소)이 총 3차시로 나눠 진행한다. 1차시는 ‘행복한 삶 행복한 마무리’를 주제로, 죽음에 대한 정의, 나의 웰다잉 체크리스트를 작성해본다. 2차시는 ‘인간답게 죽을 수 없을까요?’를 주제로, 인간다운 죽음을 위한 준비, 사전의료의향서 의사를 작성해본다. 3차시는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를 주제로, 건강한 노년을 위한 실천법, 엔딩노트 유언장 작성을 연습해 본다.
강남구청에서 10~11월, 웰다잉 특강을 마련했으니 관심 있는 이들은 신청해 보자. ⓒ강남구청
강남구청에서 10~11월, 웰다잉 특강을 마련했으니 관심 있는 이들은 신청해 보자. ⓒ강남구청
강원남 강사는 ‘나이 들어감을 스스로 인정하라’고 말했다. 자신의 현재를 받아들이고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을 찾자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지난 삶을 긍정하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죽음에 대한 불안을 낮출 수 있다”라고 했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를 꼽았다. 자존감을 높이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여덟 글자를 꼭 기억한다. 지난 시절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잘 살아왔다고 자신을 다독여 주는 것이다. “애썼다”, “고생했다”, “수고 많았다”라고 나 자신에게 말해준다. 또 ‘봉사’‘감사’의 말도 해주자. 자신의 자산이나 노력을 타인과 기꺼이 나누는 태도,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원망하는 대신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에 행복이 깃든다.
서대문구 보건소에서 제공한 '나의 엔딩노트', '연명의료결정제도' 안내물 ⓒ윤혜숙
서대문구 보건소에서 제공한 '나의 엔딩노트', '연명의료결정제도' 안내물 ⓒ윤혜숙
누구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사전의료의향서나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두는 것도 좋다. 이 두 가지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내 주변에 남겨진 사람을 위해서 유용하다.

사전의료의향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줄인 말이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19세 이상의 사람이 향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연명의료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향을 문서로 작성해 밝혀두는 것을 말한다. 연명의료에 관한 본인의 의향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및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남겨놓을 수 있다.

연명의료는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이 있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의학적 판단을 받았다면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다.
닥쳐올 겨울의 추위에 대비하듯 끝내 맞이할 죽음도 잘 준비해야 한다. ⓒ윤혜숙
닥쳐올 겨울의 추위에 대비하듯 끝내 맞이할 죽음도 잘 준비해야 한다. ⓒ윤혜숙
서울시는 지난 2022년 호스피스·완화의료 활성화 및 웰다잉 문화조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여기서 '웰다잉(Well-Dying) 문화조성'도 정의하고 있다. 죽음을 스스로 미리 준비하며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조례가 제정된 만큼 추후에 웰다잉 문화조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죽음에 관한 명언이 있다. 톨스토이가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이제는 웰다잉이 대세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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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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