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매헌시민의숲'으로 불러주세요~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22.10.28. 10:00

수정일 2022.10.28. 10:32

조회 4,388

오색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한 매헌시민의숲 풍경
오색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한 매헌시민의숲 풍경 ©박분

솔향기 짙은 소나무숲이 이어지는가 하면 모과향을 가득 실은 모과나무가 저만치 앞에 보인다. ‘후두득’ 열매가 떨어지는 가을 소리도 들려온다. 오색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한 숲길에서 가을 풍경과 하나가 되는 이곳은 ‘매헌시민의숲’이다. 
매헌시민의숲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즐기는 시민들
매헌시민의숲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즐기는 시민들 ©박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양재시민의숲’이 ‘매헌시민의숲’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매헌(梅軒)’은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호다. 숲이름이 변경된 데는 윤봉길 의사의 호와 관련이 있다. 시민의숲에는 매헌 윤봉길의사기념관과 동상, 숭모비 등이 자리해 있다. 또한 숲 주변에 위치한 도로(매헌로)와 다리(매헌교), 학교(매헌초등학교) 이름에도 윤봉길 의사의 호 ‘매헌’이 들어가 있다. 서울시는 이점을 고려해 주요 시설의 이름과 일관성을 주고자 최근에 시민의숲 이름을 변경했다.

새 이름을 얻은 매헌시민의숲은 어떤 모습일까? 양재동 매헌로 도로변에 ‘시민의숲’을 알리는 입간판이 보였다. 숲이름이 변경됐음을 경축하는 현수막이 축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숲속에 나들이 나온 유치원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숲속에 나들이 나온 유치원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박분
매헌시민의숲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고 있다.
매헌시민의숲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고 있다. ©박분

매헌시민의숲은 작은 도로(매헌로)를 사이에 두고 북측 구역과 남측 구역으로 나뉜다. 북측 숲에는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유물과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을 비롯해 야외 예식장체육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남측 숲은 백마부대 충혼탑과 북한의 테러로 폭파된 대한항공 858편의 위령탑, 삼풍백화점 붕괴 희생자 위령탑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추모비 등이 들어서 있다.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자리한 북측 숲으로 먼저 향했다. 긴 숲을 따라 양재천이 흐르고 있었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바로 숲과 마주하게 된다. 밖에서 바라볼 땐 푸르게 비치던 숲이 안쪽으로 들어오니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다. 노랗게 물든 느티나무 잎이 선선한 바람에 하늘하늘 떨어진다.

숲속에서는 아이들이 떼 지어 즐거운 놀이를 하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단체 놀이를 나온 듯 줄줄이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있다. 숲속이 놀이터나 다름없어 보였다. 놀이 프로그램에 열중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엄마 아빠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오른다.
숲속에 운동시설을 갖춘 넓은 운동장이 있어 건강을 다지기에 안성맞춤이다.
숲속에 운동시설을 갖춘 넓은 운동장이 있어 건강을 다지기에 안성맞춤이다. ©박분
 요가를 즐기는 시민들
요가를 즐기는 시민들 ©박분
발바닥 모양의 조형물이 보이는 맨발 공원
발바닥 모양의 조형물이 보이는 맨발 공원 ©박분

매헌시민의숲은 1986년 문을 열었다. 1986년의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의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의 관문이었던 양재 톨케이트 주변에 조성됐다. 우리나라 최초로 숲 형태로 만든 공원으로 알려진 만큼 숲에 들어서면 느티나무와 소나무를 비롯해 메타세쿼이아, 단풍나무, 잣나무 등 다양한 수목들이 울창하다. 

운동시설을 갖춘 넓은 운동장을 품고 있어 건강을 다지기에 안성맞춤이다. 주변에 고층빌딩이 없어 확 트인 하늘을 보며 배구와 족구, 농구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에 활력이 넘친다. 시민을 위해 항시 무료 개방하고 있어 누구든 예약 이용이 가능하다. 요가를 즐기는 모습도 눈에 띤다. 반려견 동반도 가능해 운동장에서 조련사에게 반려견 훈련을 받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발바닥 모양의 조형물이 보이는 맨발 공원도 가까이에 있다. 맨발공원에는 발바닥 지압을 위해 돌을 깔아놓은 지압보도가 숲 양편으로 쫙 펼쳐져 있다. 
매헌시민의숲 야외예식장
매헌시민의숲 야외 예식장 ©박분
 책을 읽으며 쉬어갈 수 있는 북카페 모습
책을 읽으며 쉬어갈 수 있는 북카페 모습 ©박분
숲 속 오두막 정자엔 국화꽃이 만발했다.
숲 속 오두막 정자엔 국화꽃이 만발했다. ©박분

매헌시민의숲은 야외예식장으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마침 이날 예식이 있는 듯 테이블 세팅과 꽃장식이 한창이었다. 가을 숲속에서의 결혼식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한다. 숲 속 오두막 정자엔 국화꽃이 만발했다. 작은 북카페도 있어 책을 읽으며 쉬어가도 좋겠다. 너른 잔디밭과 숲속 뜰이 곳곳에 있어 가족 단위의 소풍지로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1988년 개관한 매헌 윤봉길의사기념관
1988년 개관한 매헌 윤봉길의사기념관 ©박분
매헌시민의숲에 자리한 윤봉길 의사 동상
매헌시민의숲에 자리한 윤봉길 의사 동상 ©박분

윤봉길의사기념관은 숲 속 깊숙이 자리했다. 1988년 개관한 기념관은 3층 규모로 윤봉길 의사의 생애와 업적을 다양한 전시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기념관 1층 중앙홀에 들어서면 윤봉길 의사 동상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2층의 1,2전시실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출생과 성장, 상하이 의거를 계획하고 단행해 순국하기까지의 전 과정이 기록문서와 유물로 전시돼 있다. 

독립운동에 가담하기 전 윤봉길 의사는 농촌계몽운동을 추진했다. 문맹퇴치를 위해 부흥원을 세워 글을 가르치며 교육에 뜻을 두는 등 뜨거운 삶을 살았던 그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2018년 전시실 현대화 개선공사로 AR, VR, 크로마키 등 최신 영상체험도 가능하다. 윤봉길의사기념관 주위에는 윤봉길 의사 동상, 윤봉길 의사 숭모비도 있다.
1987년 미얀마 안다만해협 상공에서 북한의 테러로 폭파된 대한항공 858편의 위령탑
1987년 미얀마 안다만해협 상공에서 북한의 테러로 폭파된 대한항공 858편의 위령탑 ©박분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추모비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추모비 ©박분

발길을 돌려 숲 남측 구역으로 향했다. 입구에 세워진 충혼탑 위령탑 등을 가리키는 안내 팻말이 마음을 착잡히 가라앉힌다. 이 구역은 ‘추모공간’이라는 특별한 느낌 때문인지 북측 숲에 비해 더 고요하게 느껴진다. 유격백마부대 충혼탑과 1987년 미얀마 안다만해협 상공에서 북한의 테러로 폭파된 대한항공 858편의 위령탑,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사망한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위령탑,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추모비 등을 차례로 마주했다. 지나간 역사의 아픔을 위로하듯 숲으로 가을볕이 쏟아진다. 매헌시민의숲 한자락에서 한국 현대사의 아픈 흔적들을 잊지 않고 다시금 새길 수 있음이 다행스럽다. 
매헌시민의숲에서 만난 청설모
매헌시민의숲에서 만난 청설모 ©박분

키 큰 나뭇가지 끝이 소란스럽더니 풀밭에 뭔가 떨어졌다. 나뭇가지 위에 청설모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고 금세 숲속으로 줄행랑을 쳤다. 도심 한복판 어느 곳에서 청솔모를 만날 수 있을까? 

매헌시민의숲은 신분당선 매헌역 1번 출구에서 약 200미터 거리에 있다. 최근에 명칭이 변경되었기 때문에 매헌시민의숲 곳곳에서 산책로를 재정비하고 초화류를 식재하는 등 부산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울 시민들이 즐겨 찾는 시민의숲에 뒤늦게라도 고귀한 독립운동가의 호를 이름에 새길 수 있게 되어 가슴 가득 뿌듯함이 차오른다. 조국 광복을 위해 25세의 나이에 피 끓는 젊음을 바친 매헌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시민의숲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매헌시민의숲

○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매헌로 99
○ 운영일시 : 연중무휴, 24시간 운영
○ 문의 : 02-575-3895

시민기자 박분

현장감 있는 생생한 기사를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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