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도 무서웠던 염리동길, 디자인으로 살맛난다!
서울톡톡 박혜숙
발행일 2012.10.18. 00:00
[서울톡톡] 서민보호치안강화구역으로 지정돼 있는 서울 마포구 염리동. 그러나 좁은 골목길엔 CCTV 하나 보이지 않고 조명은 어둠침침하다. 과거엔 마포나루를 거점으로 하는 소금창고가 많아 인심이 후한 동네로 유명했지만 최근 개발이 지연되면서 원주민 비율이 급격히 줄고 세입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급속하게 유입되어 주민 간 갈등 요인이 많아졌다. 그 뿐만 아니다. 여성거주자 비율이 상당히 높지만 밤이면 상점도 거의 문을 닫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이와 같이 주민들이 범죄나 안전 문제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마포구 염리동과 강서구 가양동 공진중학교를 「범죄 예방 디자인 프로젝트」 시범 사업지로 선정, 범죄예방디자인(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적용을 완료했다. 이를 통해 시는 절도, 폭력 등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범죄의 발생률을 낮추겠다고 17일(수) 밝혔다.
■ 범죄예방디자인(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이란 |
이번 「범죄 예방 디자인 프로젝트」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서울시 디자인'의 첫 번째 사업으로서, 시는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문제와 디자인을 접목한 정책을 통해 도시 시설물 등에 집중했던 기존 공공디자인 정책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서울시의 이번 시범사업은 저소득층이 밀집한 기존 시가지에 CPTED 기법을 적용한 최초의 사례로 주목된다. 그동안 은평뉴타운 등 대규모 개발·신축 아파트엔 건축설계에 CPTED 기법을 반영한 적이 있었으나, 구 시가지에 적용한 경우는 없고 기존 시가지에 적용한 해외 사례도 알려진 게 없다.
마포구 염리동, 서울 161개 서민보호치안강화구역 중 대책마련이 가장 시급해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돼 있지만 개발이 지연되고 있는 마포구 염리동 일대는 경찰청이 지정한 161개 서민보호치안강화구역 중에서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다행히 염리동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마을기업인 '솔트카페' 등 인근의 커뮤니티 자원이 풍부하고 주민자치위원회의 활동이 활발해 커뮤니티 활동을 통한 지속적인 발전성이 보여 서울시는 시범사업지로 최종 선정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시는 공청회를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목소리를 담아 염리동(鹽里洞)이란 동네 이름에 걸맞게, '소금'을 테마로 한 다양한 범죄예방 디자인 프로그램을 정했다.
주요 골자는 ▴운동 공간 '소금길' 조성 ▴'소금지킴이집' 운영 ▴사랑방 역할 및 24시간 초소기능 갖춘 '소금나루' 운영 ▴다양한 디자인으로 채워지는 '담벼락 보수' ▴지역 주민 참여 '자율방범' 운영으로 정해 진행했다.
무서웠던 좁은 골목길→1.7km '소금길'로 즐겨찾는 운동+커뮤니티 공간 변신
이 지역의 핵심 변화는 1.7km의 '소금길'이다. 운동을 할 만한 놀이터나 공원은 없고 인적까지 드물어 무섭기만 했던 좁은 골목길이 1.7km의 '소금길'로 탈바꿈하면서 지역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즐겨 찾는 운동공간과 커뮤니티공간이 되었다.
소금길은 A, B 2개 코스로 이뤄지며, 도보로 총 40분이 소요된다. 운동코스는 전문트레이너가 일일이 골목길을 걸으며 맞춤형으로 개발했다. 또한 해당 구간의 전봇대엔 1번부터 69번까지 번호를 매기고 코스안내 지도, 방범용 LED 번호표시 등, 안전대처요령 사인, 안전 벨을 설치해 안전부분도 강화했다.
또 하나의 변화는 눈에 띄는 노란색 대문을 한 6가구다. '소금지킴이집'라는 이름의 노란색 대문 집은 집 앞에 비상벨이 설치돼 있어, 위험에 처했을 때 눌러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할 수 있다. 어려움이 생겨도 편의점이나 상점 하나 없어 이웃의 도움을 받기 쉽지 않았던 점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밤에도 사인조명으로 입구를 밝히고, 처마 밑에는 IP카메라를 설치해 현장상황이 녹화 되도록 했다.
상권공동화 심각→거점 공간 '소금나루' 편의물품 판매 및 24시간 초소기능
재개발 달동네 지역의 특성상 주민들이 모일 공간이 없었던 염리동에 편의물품 판매와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 24시간 초소기능을 동시에 할 주민공동체 거점공간인 '소금나루'가 생겼다. 부지는 인근 염산교회가 교회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소금나루는 카페, 마을문고, 택배수령서비스, 비상약 등 편의물품 판매 기능과 커뮤니티아트 교육 등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 또 24시간 초소기능을 함께한다.
운영은 주민공동체가 자체적으로 하도록 해 지역의 독거노인, 장애인, 한부모 가정 등을 파악한 후 지역봉사 활동도 활발히 펼칠 예정이다.
갈라지고 바래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했던 집 담벼락도 전문디자이너의 코칭과 30가구 주민의 자발적 참여로 직접 보수하고 도색해 따뜻하고 희망적인 마을 경관으로 바뀌었다.
자율방범 운영도 이번 시범사업을 계기로 활성화 됐다. 인근 한서초등학교 학부모들의 등하교길 순찰이 강화돼 소금길 취약지구에 거주하는 아이들까지도 안내하고, 염산교회도 '소금길 산책하기' 활동을 정기화하기로 했다. 또한 마포경찰서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고지대의 골목길에 도보순찰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강서구 공진중학교, 저소득 소외계층 비율 높고 교육복지 지표 열악
전교 13학급, 전교생 268명, 학급당 인원 20명의 소규모 학교인 공진중학교는 주변에 영구임대아파트 총 4,409세대가 살고 있어 상대적으로 저소득 소외계층 학부모 비율이 높다. 하지만, 학교와 학부모, 학생들의 환경개선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의지를 반영해 시범 사업지로 선정됐다.
공진중학교는 교내 사각지대가 많은 반면, 기존 CCTV에 의존하는 감시기능으론 한계가 있다는 점을 반영해 ▴감시가 아닌 즐기는 대상으로 사각지대 8곳 카메라 설치 ▴사각지대 '꿈의 무대', '스트레스 제로 존' 조성 ▴복도와 계단에 디자이너들의 컬러테라피 등 사각지대를 학생들이 즐기고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재조성했다.
감시·사후 기능 CCTV 아닌 동영상 카메라 설치해 학생들 움직임 재미있게 표출
우선 CCTV가 없는 사각지대 8곳에 CCTV가 아닌 동영상 카메라를 설치, 학생들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변환해 통행이 많은 현관입구의 '소통의 벽'에 송출하도록 했다.
이는 CCTV가 사후조치에 주로 활용되고, 감시기능을 갖고 있어 학생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던 점에 착안한 'CCTV의 역발상'. 예컨대 소통의 벽엔 스티커 사진 촬영을 할 때처럼 다양한 포토샵들이 처리돼 재미있게 표출돼 감시가 아닌 자연스런 관찰을 유도했다.
회색 페인트칠이 벗겨진 학교 내 사각지대엔 끼가 충만한 중학생들의 표현 욕구를 충족시키는 '꿈의 무대'와 샌드백, 암벽 등반 등의 운동시설을 설치한 '스트레스 제로 존'으로 밝게 꾸몄다.
'꿈의 무대'엔 음향 플러그인이 가능한 스피커와 작은 무대가 마련돼 조명아래 춤이나 노래 공연 등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이 모습역시 '소통의 벽'으로 송출돼 친구들이 관심을 갖도록 했다.
'스트레스 존'은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 타입의 아이들도 다수 있어 회색의 페인트칠이 벗겨진 외부 사각지대에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샌드백과 알록달록한 암벽 등반 등의 운동시설을 설치했다.
밋밋하던 복도와 계단도 한국 대표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컬러테라피 디자인
생기 없던 학교 복도와 계단 공간엔 윤호섭(그린디자인), 김현선(색채), 이성표(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일러스트레이터), 한명수(시각디자인), 박광수(웹툰), 권형표(건축), 이진오(건축) 등 총 8인의 한국대표 디자이너들이 중학생의 정서를 고려한 컬러테라피를 통해 재미있고 즐거운 디자인을 그려 넣었다. 여기엔 54명의 자원봉사자들과 공진중학교 학생들도 동참했다.
밝아진 공간과 함께 여름방학엔 드라마, 독서, 미술 치료 등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병행해 학생들의 심리상태를 분석했다. 심리치료는 백석대학교 상담대학원의 재능기부로 진행됐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학생들의 심리상태를 체크할 계획이다.
서울시 기획+마을 주민들 자발적 참여+기업의 사회공헌 어우러져 가시화
서울시의 범죄예방디자인 사업은 서울시의 기획 및 진행,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 기업의 사회공헌이 어우러진 가운데 가시화됐다.
마을 주민의 경우 경찰서, 지구대, 정책연구소, 사회복지협의회, 각종 직능단체, 통반장 모임, 마을기업, 학부모회, 주민자치위원회 등 다양한 지역 공동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는데, '언젠가는 각자 흩어질 이웃'이라고 체념하며 살아왔던 동네 이웃들이 이번 사업을 통해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학부모와 교회청년부는 소금길과 거점공간을 활용해 자율적으로 순찰을 기획했으며, 소금나루의 택배서비스 운영을 맡을 지역 사회적기업에선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가정엔 직접 배달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한 '집에 가도 할 게 없다'며 방과 후에도 학교 안을 무의미하게 배회하던 학생들이 '꿈의 무대'를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공연순서를 스스로 정하고 운동 공간 앞에서 줄을 서는 과정에서도 서로를 즐겁게 지켜보는 모습이 눈에 띄고 있다.
서울시는 사후조치 위주였던 범죄대책에서 탈피, 디자인을 통해 환경적 문제점을 사전에 해결하는 예방책으로 전환함으로써 현재 대부분 취약한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고 있는 각종 범죄에 대한 발생률을 낮추고, 이로 인한 연간 20조원의 사회적비용을 대폭 절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민 참여로 공동체를 회복함으로써 이웃 간 무관심 역시 해소해 나갈 수 있다.
시는 내년에는 올해 시범사업지 두 곳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주관으로 평가, 보완하고, 염리동 시범사업 현장의 경우 마을공동체 프로그램과 연계해 운영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또, 지역 1곳과 공원 3곳에 대한 시범사업을 추가로 실시하는 한편, 학교는 1개소를 추가 선정해 컨설팅 할 예정이다.
문의: 디자인정책과 02)6361-3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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