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의 명소 '동대문종합시장'…서울미래유산 선정
발행일 2020.12.14. 09:35
※ 본 기사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기 이전에 방문한 후 작성된 것입니다. - 편집자주
1969년 12월, 한강의 네 번째 다리로 개통된 ‘한남대교’와 1925년 12월 발표된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된 시 ‘왕십리’, 그리고 1970년 12월 문을 연 ‘동대문종합시장’이 12월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이 중 흥인지문 바로 앞에 있는 동대문종합시장은 원단류, 의류 부자재, 액세서리, 혼수용품 등을 판매하는 패션 종합쇼핑몰이다. 동대문역, 동대문종합시장, 동대문패션타운 등의 명칭에는 '동대문'이 붙어 있지만 행정구역 상 각각 종로구와 중구에 속한다.
동대문 바로 앞으로 이달의 미래유산 '동대문종합시장'이 있다. ⓒ이선미
오랜만에 동대문종합상가를 찾아 크리스마스 소품들을 살까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일이었다. 한복과 이불 등 몇 품목 매장들만 부분영업을 하는 날이라고 했다. 문을 연 상가에 들어가 보았다. 예전과 별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다른 매장들이 휴일이어서인지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평일에도 오가는 사람들이 좀 줄었을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손님들 때문에도 방문객의 마음까지 덩달아 분주해질 정도였다. 4,300여 매장에서 5만여 명이 일하는 이곳은 하루 방문자만 15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동대문종합시장의 모습 ⓒ이선미
동대문종합시장의 영업시간은 매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원단과 의류부자재의 경우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액세서리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7시, 혼수용품과 인테리어 등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일요일은 대부분 휴장하는데 혼수용품과 인테리어만 1, 3, 5주에는 부분영업을 한다.
휴일인 일요일은 혼수용품과 홈인테리어 매장만 부분영업을 한다. ⓒ이선미
동대문종합시장은 수공예에 필요한 액세서리, 의류 부자재, 원단, 실 등도 모두 구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종합시장’이다. 그러다 보니 취미로 공예를 하는 여성들도 곧잘 찾는 시장인데, 문제는 너무나 다양한 재료들이 쌓여있어서 지갑을 자꾸 열게 된다는 점이다. 사실 필자는 오랜만에 시장에 가는 터라 충동구매를 하지 말자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동대문종합시장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이선미
C동과 N동 사이에는 동대문종합시장의 자취를 볼 수 있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1899년 동대문지역에 최초로 전차가 개통되었는데 당시에는 서울 시내에서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동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이어지던 전차가 사라지고 차고지를 철거한 자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쇼핑몰인 동대문종합시장 건설이 시작되었다. 동대문 종합시장은 의류 분야에서 생산, 판매, 유통을 동시에 해결하는 대규모 복합시장으로 성장했다.
동대문은 전차가 처음 개통된 곳으로 청량리까지 이어지는 노선이었다. ⓒ이선미
동대문종합시장 A, B, C동이 2003년 리모델링을 한 반면에 D동은 뒤늦은 2006년에야 환경개선 공사를 마쳤다. D동의 외벽에 서울미래유산 현판이 붙어 있었다.
동대문종합시장 D동에 붙은 서울미래유산 현판 ⓒ이선미
D동을 돌아서 가면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이 나온다. 종로신진시장까지 이어지는 이곳은 봉제공장이 붐비던 시절에는 노동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으로 모든 생선을 연탄불로 굽는다. 좁은 골목에 아궁이를 내놓고 생선을 굽다 보니 골목이 뿌연 연기로 가득할 때도 있다.
연탄불로 굽는 생선구이로 유명한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도 서울미래유산이다. ⓒ이선미
이 골목 역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동대문종합시장 주변에는 광장시장을 비롯해 헌책방거리, 전태일 분신장소, 보령약국 등 9개의 서울미래유산이 있다.
청계천 쪽으로 나오니 금 전태일의 반신상이 보였다. 그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지 올해로 50년이 되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그의 외침은 우리 노동 현실을 처절하게 고발했다.
전태일이 오갔을 길에 그의 반신상이 세워져 있다. ⓒ이선미
‘평화시장’은 전태일이 서울에서 산 5년 동안 비인간적인 노동 실태를 뼈저리게 목격한 곳이었다. 6·25전쟁 이후 월남한 실향민들이 모여들면서 규모가 커진 평화시장은 평화를 염원한다는 의미를 담은 곳으로 산업화 과정에서 무수한 봉제공들이 신산한 삶을 산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노동 시간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휴일조차 제대로 없었다. 일요일이어서 거의 문을 닫은 청계천을 지나며 그 변화가 다행스러웠다.
평화시장은 실향민들이 모여들어 더 확대된 곳으로 노동자들의 피땀이 얼룩진 곳이기도 하다. ⓒ이선미
종로5가 광장시장에 들어섰다. 일제강점기인 1905년 보부상 출신인 박승직이 상인들을 규합해 며칠에 한 번씩 시장이 열리던 자리에 상설시장인 광장시장을 세웠다고 한다. 일본이 남대문시장 경영권을 장악하자 또 다른 시장인 이현시장 상권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광장시장은 포목과 한복, 침구류와 원단, 의류 부자재 등을 판매하지만 빈대떡과 육회, 일명 마약김밥 등 다양한 먹거리를 찾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다양한 먹거리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광장시장 ⓒ이선미
12월의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동대문종합시장을 찾아 나섰다가 주변의 미래유산들도 둘러보았다. 우리 근현대사의 역동적인 빛과 힘겨웠던 애환이 동시에 서려 있는 장소들이다.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 : http://futureheritage.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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