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 비밀스러운 숲속 '시민 벗집'으로 재탄생한 이회영기념관

시민기자 심재혁

발행일 2024.07.29. 11:00

수정일 2024.07.29. 16:53

조회 483

프랑스 혁명 당시 등장한 단어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프랑스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후 귀족이나 상류층의 덕목으로 꼽힌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높은 사회적 신분에 맞는 도덕적 의무를 행한 자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며 평가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 수많은 지식인과 상류층이 친일파로 변절했음에도,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이 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 중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할 때 떠오르는 이들, 바로 우당 이회영 가문이다. 우당 이회영 가문은 조선시대 때 정승과 판서 등 명문이자 명동 일대의 땅을 가졌던 당대 최고의 부잣집이었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조선이 무너지자 전 재산을 처분해 만주로 망명, 삼원보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양성했다. 우당 이회영의 여섯 형제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다섯째 이시영만이 조국의 광복을 맞았고, 초대 부통령 자리에 올랐다.
사직동 묵은집으로 거처를 옮긴 이회영기념관 ©심재혁
사직동 묵은집으로 거처를 옮긴 이회영기념관 ©심재혁

암울했던 시기, 충분한 자리를 보장받았을 수 있음에도 독립운동을 선택해 머나먼 타국에서 옥사할 때까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싸웠던 우당 이회영. 이에 서울시는 지난 2021년 6월, 남산 예장공원에 이회영기념관을 건립해 시민들에게 우당 이회영 선생을 알렸다.

3년 동안 남산에서 많은 시민과 만났던 우당 이회영. 예장동에서의 생활을 마감한 이회영기념관은 ‘사직동 묵은집’으로 옮겼고, 지난 7월 17일부터 ‘임시 개방’을 통해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는데 인왕산 아래 ‘벗집’, 이회영기념관을 찾았다.
이회영기념관 앞 우당 이회영 동상 ©심재혁
이회영기념관 앞 우당 이회영 동상 ©심재혁

사직터널 위 사직동 묵은집은 20세기 초에 사직동 언덕에 들어선 서양식 주택으로, 미국 남감리회가 조선 땅에 파송한 선교사들이 살던 곳이다. 이후 근대 건축물 고유의 미감과 가치를 지녀, 2019년 서울시 ‘우수건축자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선교사들의 공간이 이회영기념관으로 탈바꿈하면서, ‘시민 벗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벗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은 우당 이회영의 호 ‘우당’을 한글로 풀면 벗집이기 때문이다. ‘전통과 근대성’, ‘독립운동과 현재’가 함께하는 ‘시민 벗집’으로 재탄생했다.

이회영기념관 주변은 도심 속 숨겨진 숲처럼 보인다. 이회영기념관에는 백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느티나무와 함께 어우러진 녹음이 서양식 건물과 잘 어울렸다. 마치 빌딩 숲 사이에 반짝이는 ‘비밀 공간’과도 같았다.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이회영기념관 ©심재혁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이회영기념관 ©심재혁

이회영기념관 안으로 들어왔다. 이회영기념관은 3개 층으로 구성됐다. 지하의 전시실은 남산예장공원에 있던 기념관에서 봤던 영상들을 전시하며,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꾸렸고, 1층은 벗집 마루와 함께 작은 전시 공간을 놓았다. 대부분 전시는 2층에서 볼 수 있다.

1층 벗집 마루는 옛스러움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옛 의자와 소파가 있고, 넓은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배려했다. 이회영기념관에 전시된 사료와 이야기를 모두 보고난 다음, 여기서 우당 이회영에 대해 생각을 곱씹어봐도 좋을 것 같았다.

창문 맞은편에는 우당 이회영과 여섯 형제의 간단한 약력이 소개되어 있다. 우당 이회영 가문은 넷째 이회영을 포함한 이건영, 이석영, 이철영, 이시영, 이호영 형제가 있다. 모든 형제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모두 건국훈장을 받았다. 여기서 우당 이회영 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볼 수 있었다.
  • 1층 벗집 마루. 쉬는 공간과 전시 공간이 혼용돼 있다. ©심재혁
    1층 벗집 마루. 쉬는 공간과 전시 공간이 혼용돼 있다. ©심재혁
  • 이회영과 여섯 형제의 간단한 약력이 소개되어 있다. ©심재혁
    이회영과 여섯 형제의 간단한 약력이 소개되어 있다. ©심재혁
  • 1층 벗집 마루. 쉬는 공간과 전시 공간이 혼용돼 있다. ©심재혁
  • 이회영과 여섯 형제의 간단한 약력이 소개되어 있다. ©심재혁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수많은 사진을 만나게 된다. 넓은 공간인 남산예장공원과 달리 2층 벽돌집으로 구성돼 공간이 협소한 편이라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이 전시 공간은 ‘이회영 층계’로, 한 칸씩 올라가보며 우당 이회영과 여섯 형제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계단을 밟고 오르면서, 우당 이회영의 생애를 사진으로 만날 수 있게 공간을 꾸민 셈이다.
이회영의 생애를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심재혁
이회영의 생애를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심재혁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공간을 이회영 층계로 꾸몄다. ©심재혁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공간을 이회영 층계로 꾸몄다. ©심재혁

2층에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신흥무관학교’의 설립 과정을 설명하고, 당시 독립군이 쓰던 총을 전시해 놓았다. 신흥무관학교는 현재 국군의 뿌리이기도 하다.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이고, 독립군의 뿌리가 만주 삼원보에 세워진 신흥무관학교(신흥강습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흥무관학교의 이야기는 우당 이회영의 아내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은숙 선생의 회고록 <서간도 시종기>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서간도 시종기>에는 신홍무관학교 설립 과정, 베이징, 텐진 망명 시절, 국내 잠입 활동 등 독립운동 수기가 적혀 있다.

맞은편에는 <우당 이회영 실기>의 원본이 전시되어 있다. <우당 이회영 실기>는 우당 이회영의 제자이자 동지인 이관직 선생이 쓴 육필 원고로, 이회영의 생애 전반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즉, 이회영기념관의 핵심 사료(史料)다
  • 일제강점기에 독립군이 사용했던 총들 ©심재혁
    일제강점기에 독립군이 사용했던 총들 ©심재혁
  •  이은숙 선생의 <서간도 시종기> ©심재혁
    이은숙 선생의 <서간도 시종기> ©심재혁
  • 우당 이회영의 육필 원고인 <우당 이회영 실기> ©심재혁
    우당 이회영의 육필 원고인 <우당 이회영 실기> ©심재혁
  • 일제강점기에 독립군이 사용했던 총들 ©심재혁
  •  이은숙 선생의 <서간도 시종기> ©심재혁
  • 우당 이회영의 육필 원고인 <우당 이회영 실기> ©심재혁

임시 개관한 이회영기념관. 이회영기념관은 임시정부 통합기념일인 오는 9월 11일 정식 개관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민과 소통한다. 현재는 시범 개방으로 시민 의견을 들으며 우당 이회영의 삶이기도 한 ‘시민 벗집’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어려웠던 시기, 암울했던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광복을 위해 산화했던 우당 이회영. 그의 호인 우당(右堂)처럼, 많은 시민이 방문해 시민과 함께하길 바란다.

이회영기념관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6길 15
○ 교통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에서 931m
○ 임시 개관일 : 2024. 7. 17
○ 재개관일 : 2024. 9. 11 임시정부 통합기념일
○ 운영시간 : 화~일요일 10:00~18:00
○ 휴무 : 월요일
누리집
○ 문의 : 02-75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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