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노숙인 다시 설 수 있도록 (feat. 우리옷방, 아리수 자판기)

시민기자 정지영

발행일 2023.12.12. 14:09

수정일 2023.12.12. 14:55

조회 2,581

서울역 광장 앞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정지영
서울역 광장 앞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정지영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서울역 광장 앞, 각자의 목적지로 빠르게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드문드문 멈춰 있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어딘가로 가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남들이 스쳐 지나가는 거리를 머묾의 장소로 택한 노숙인들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점점 거세지는 추위는 그분들에게 좀 더 가혹할 것이다.

서울역 2번 출구, 서울역 파출소 건너편으로 시선을 돌아보면 은빛 건물이 하나 우뚝 서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을 노숙인·취약계층을 위해 도움을 주는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다. 이곳은 노숙자이거나 노숙 위기에 처한 시민들에게 상담과 임시 주거·일자리·의료 지원 등을 통해, 이름처럼 '다시 서기'를 지원하고 있다.
역사 주변에 노숙인들의 텐트나 커다란 종이 상자가 줄지어 보인다. ⓒ정지영
역사 주변에 노숙인들의 텐트나 커다란 종이 상자가 줄지어 보인다. ⓒ정지영

입구 앞에 다다르자, 각기 청소나 짐 옮기기에 열중하고 있는 분들이 보였다.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 이름이 적힌 노란 조끼를 입고 있었다.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 첫 방문인 기자가 문 앞에서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던 찰나, 긴장을 깬 상냥한 목소리가 노란 조끼 사이에서 들려왔다.

“어떤 일로 찾아오셨어요?”
“우리옷방에 외투를 방문 기부하기로 사전에 전화 드렸는데요, 이곳이 입구가 맞나요?”
“아, 들어가셔서 저 분께 말씀 주시면 됩니다.”
집 앞에서 만난 이웃 아저씨와 다를 바 없는 친절함이었다. 오기 전,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누리집에서 둘러본 '조직 안내' 맨 위에는 흔히 보이는 센터장이 아니라, ‘거리 선생님(노숙인)’이 위치해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서울역 광장에 위치한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 입구 ⓒ정지영
서울역 광장에 위치한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 입구 ⓒ정지영
입구에 위치한 게시판.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전달한다. ⓒ정지영
입구에 위치한 게시판.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전달한다. ⓒ정지영

이 친절한 거리 선생님의 즉석 주선으로 사회복지사분께 우리옷방에 대한 간략하게 소개도 들을 수 있었다. 우리옷방노숙으로 샤워·세탁·의류 교환 등이 어려운 분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2021년에는 무려 1만 8,065명의 거리 선생님께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고 한다.

과연 사이즈별로 상·하의를 나눠 정갈하게 정리된 옷들이 옷장에 빼곡히 걸려 있었다. 여성 의복도 따로 분류되어 있었다. 입던 옷을 세탁하고 샤워를 한 후, 새로운 옷을 받아 입고 나올 수 있는 공간 덕분일까.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 근처에서는 ‘때가 탄 손, 떡진 머리, 풍기는 냄새’를 가진 노숙인 분들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우리옷방 내에 지원받을 수 있는 옷이 사이즈별로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정지영
우리옷방 내에 지원받을 수 있는 옷이 사이즈별로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정지영
남성뿐 아니라 여성 노숙인을 위한 의복도 비치돼 있다. ⓒ정지영
남성뿐 아니라 여성 노숙인을 위한 의복도 비치돼 있다. ⓒ정지영

이날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를 찾은 이유는 집에서 잘 입지 않은 옷을 우리옷방에 기부하기 위해서였다. 잘 입지 않는 옷, 버리거나 중고 판매하려던 깨끗한 옷이 있다면 택배 발송 및 내방 기부, 또는 현장 방문 수거 등의 방법으로 이곳에 기부할 수 있다. 이렇게 기부된 옷은 상의와 하의의 경우 주 1회, 잠바의 경우 월 1회 지급되는 식으로 거리 선생님께 전달된다고 한다. 이번에 기부한 카키색 외투가 잘 맞는 분이 있길 기원해 보았다.

“혹시 조금 더 기부가 들어왔으면 하는 품목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양말과 신발이 부족하죠.”

사이즈가 사람마다 다른 신발의 경우, 후원이 수요에 비해 부족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훼손된 의류, 사용하던 속옷·양말은 받지 않는다. 물품 기부 외 후원금 기부도 가능하다. 후원금은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매하는 데 쓰인다.
샤워실과 세탁기를 이용해 노숙인들의 위생 향상을 돕고 있다. ⓒ정지영
샤워실과 세탁기를 이용해 노숙인들의 위생 향상을 돕고 있다. ⓒ정지영
필자가 기부한 남성용 외투 ⓒ정지영
필자가 기부한 남성용 외투 ⓒ정지영

이뿐만 아니라,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에서는 11월 17일부터 아리수 무료 자판기를 입구에 설치했다. 다른 시설에 들어가 불편한 시선을 감내하며 물을 마실 필요 없이, 350ml의 휴대 가능한 병물 아리수를 구할 수 있다. 누구나 삶에 꼭 필요한 물 정도는 눈치 보지 않고 마실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다만 페트병에 담겨 있다 보니 일회용품이 너무 많이 나오지 않나 걱정이 되었는데, 막상 실물을 자세히 보니 자판기 속 아리수가 담긴 페트병은 모두 라벨이 없었다. 이 페트병은 중량이 14그램으로 경량화되어 있고, 라벨이 없어 분리배출을 쉽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아예 올해는 재생원료 30% 용기를 도입했다고 하니 환경 걱정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겠다.
24시간 이용 가능한 아리수 무료 자판기 ⓒ정지영
24시간 이용 가능한 아리수 무료 자판기 ⓒ정지영
무료 병물 아리수는 라벨이 없는 투명한 용기를 사용하고 있다. ⓒ정지영
무료 병물 아리수는 라벨이 없는 투명한 용기를 사용하고 있다. ⓒ정지영

만약 도움이 노숙인이라면, 신분증(초기 상담 시)을 준비해 평일 아침 9시~저녁 6시까지 다시서기희망센터에 방문하면 상담을 받아볼 수 있다. 센터 바로 앞에 다시서기 부속의원이 있어 건강 관리도 받아볼 수 있다. 다시서기 부속의원 진료 대상은 거리 선생님뿐만 아니라 염가주거시설(쪽방/고시원/여인숙 등), 비주거시설(만화방/사우나/PC방 등) 주거자들도 포함한다고 하니, 도움이 필요하다면 문을 두드려 보았으면 한다.

숙대입구역 1번 출구 근처에 위치한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도 거리 선생님들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야간 진료의 경우, 다시서기 부속의원만이 아니라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도 일부 진행하고 있는데, 이 두 곳에서 지원이 어려운 경우엔 서울시에서 지정한 의료시설로 연계 받을 수도 있다.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 바로 옆에 위치한 다시서기 부속의원의 모습 ⓒ정지영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 바로 옆에 위치한 다시서기 부속의원의 모습 ⓒ정지영
숙대입구역 1번 출구에 위치한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정지영
숙대입구역 1번 출구에 위치한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정지영

기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역사 안에서 노숙 행위 금지 안내판을 보았다. 밖에 있기에는 점점 추워지는 겨울,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아직 많다. 올겨울엔 몸과 마음이 추운 이 없는 '동행·매력 특별시 서울'이 되길 기원해 본다.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

○ 위치 : 서울시 중구 봉래동2가 124
○ 교통 : 1호선, 4호선, 공항선, 경의중앙선 서울역 1번 출구에서 117m
○ 문의 : 02-777-0564

우리옷방 기부방법

○ 택배 발송 및 내방 기부 : 박스 포장하여 선불 택배 발송
○ 현장 방문 수거(사전 전화 예약 필수) : 방문 가능 기준, 우체국 박스 5호 기준
 - 용산구 및 중구 3박스 이상, 서울권 5박스 이상, 경기권 7박스 이상
○ 후원 안내 : 누리집

다시서기 부속의원

○ 위치 : 서울시 중구 통일로 21 서울역전우체국 2,3층
○ 교통 : 1호선, 4호선, 공항선, 경의중앙선 서울역 1번 출구에서 162m
누리집
○ 문의 : 02-777-1145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 위치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92길 6 갈월동빌딩
○ 교통 : 숙대입구역 1번 출구 앞(우태하피부과 옆 골목으로 30m)
누리집
○ 문의 : 02-777-5217

시민기자 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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