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인문학을 만나고 나를 응원할 수 있게 되었어요”
발행일 2023.11.24. 14:25
빈틈없는 절망이 느껴지는 사연은 ‘희망의 인문학 체험수기’ 속 문명진 씨의 이야기다. 죽음을 생각하던 명진 씨를 다시 일으킨 건, 긴급복지 지원이었다. 이후 자활센터에서 일하며 서울시 ‘희망의 인문학’을 듣게 됐고, 인문학 강의를 통해 사이버대학교 교양과목을 이수했다.
명진 씨는 수기를 통해 “이제 울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이 미소 지을 것이고, 더 밝은 곳으로 내디딜 것이다. 목표를 정한 나의 앞날이 몹시 기대되고 기다려진다.”라고 전했다.
'희망의 인문학'은 노숙인과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가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자기성찰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립 의지를 북돋아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오세훈 시장 재임 당시인 2008년에 시작해 5년 동안 4,400명 이상이 수료했다. 많은 분이 사회복지사로, 작가 및 강사로 자립의 길을 찾았다.
그로부터 10년 만인 지난해, 희망의 인문학이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돌아왔다. 다시 시작된 희망의 인문학은 수강생들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강의를 추가했다. 기존 철학·문학·역사 등 강의 위주의 프로그램에서 운전면허, 바리스타, 조리사 등의 일자리 관련 강의 및 심리 상담, 음악, 서예 등의 분야 등으로 확대했다.
시설에서 주관하는 ▴희망과정 외에 대학에서 주관하는 ▴행복과정에는 서울시립대와 건국대가 참여해 양질의 인문학 강의를 진행했다. 대상 역시 확대해 노숙인·쪽방주민 외에도 자활사업 참여자까지 인문학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 [관련 기사] "삶에 큰 변화" 약자 재기 돕는 '희망의 인문학' 592명 수료
1층엔 학사모를 쓴 수료생들이, 2층엔 꽃다발을 손에 든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모두가 기대할 것이 있는 표정이었다. 수료식은 '희망과정'과 '행복과정'의 프로그램 수강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영상 속에서 수료생들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산길을 걷거나 뭔가를 만들고, 신체를 움직이거나 강의를 들었다. 천천히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서울시장, 서울시립대학교 총장, 건국대학교 총장의 축사 후, 수료생들의 답사가 있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나가는 목소리에서 벅찬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 수강생들의 수료식이 진행되었고 서울시장상, 서울시립대 총장상, 건국대 총장상이 각각 수여됐다. '2023 희망의 인문학'에는 노숙인과 저소득 시민 739명이 참여했으며, 그 중 592명이 수료증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함께한다는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놀라운 결과였다.
마지막 순서는 서울시립대학교 수료생으로 이루어진 희망의 합창단 공연이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란 곡이 이토록 감동적으로 들린적이 있나 싶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된 인생과 새로운 출발이 느껴지는 듯했다. 2층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누군가는 합창하는 모습을 영상통화로 전하며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마저 찡한 울림이 되었다.
‘내 인생의 기억들’이란 글쓰기 실습부터, 그림 에세이 체험 영상과 미술 작품과 서사 작품, 캘리그라피와 석고상 등 작품마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의 서사가 담겨 있는 글과 그림 작품들 속에서 각자의 인생을 떠올릴 수 있었다. 좀 더 오랜 기간 전시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 아쉬웠다.
"희망의 인문학을 통해 큰 위안을 받았어요"
Q. 희망의 인문학을 처음 어떻게 알고 신청하시게 됐나요?
A. 제가 원래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었는데, 가족들도 없고 갈 데가 없어서 직원분이 열린여성센터를 소개해 주셔서 시설로 가게 됐습니다. 지금 1년 넘게 생활하고 있어요.
희망의 인문학을 듣게 된 계기는 열린여성센터에서 추천해 주었고, 저 역시 저에 대해 좀더 이해하게 되면서 시야를 넓히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Q. 희망의 인문학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셨고, 수료 이후 어떠셨나요?
A. 희망과정 심리·건강 지원사업으로 ‘심리치유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현실치료’ 집단상담을 통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나 스스로를 더 이상 질책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게 된 것 같아요. 이전에는 남에게만 맞추려고 늘 사과하고 저의 욕구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거든요.
집단상담이 빨리 끝나서 아쉬웠는데 이후 개인상담을 시작하면서 '난 혼자가 아니구나' 느꼈습니다. '선생님들은 내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구나' 느껴져 큰 위로를 받았고,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느낌이 들었습니다.
A. 열린여성센터에서 제공하는 서울시 반일제 일자리였는데, 주민센터에서 안내하는 일을 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쉼을 갖고 제 인생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담을 받게 되면서, 여전히 겁이 많고 불안 걱정이 따라다니긴 하지만 저 스스로는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Q. 희망의 인문학을 수료하시고,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A. 예전에는 작은 일 하나도 저를 비난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크든 작든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나를 비난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됐구나. 다음에 잘해야지.’ 이런 식으로 바뀌었어요.
자주 우울해도 할 일은 빼 먹지 않고 할 수 있어.
스스로에게 작은 응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A. 일단 상담 기간이 좀 길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협업 병원이 한 곳으로 돼 있는 것 같은데, 여러 병원과 연결된다면 저랑 좀 더 맞는 곳에서 계속 상담 받고 싶고, 그렇게 사회로 나갈 용기가 더 날 것 같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A. 일단 지금은 간호조무사랑 일반 회사원 생각하고 있는데요, 좀 더 제가 용기를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을 하고 있어요.
Q. 지금도 어딘가에는 힘든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 그런 분들에게 희망의 인문학을 소개한다면?
A. 마음이 계속 우울한 쪽에 있으면 자신도 힘들고 주변 사람들하고도 못 어울리고 그러니까 더 외로워집니다. '너는 원래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더 좋은 사람인 걸 스스로 느끼고 자신감도 생기게 하고, 그러려면 희망의 인문학을 들어 보는 게 좋겠다'고 그렇게 말할 것 같아요.
"희망의 인문학, 이렇게 자활의 희망을 쓰고 있습니다"
Q. 희망의 인문학은 노숙인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제공된다고 들었는데요, 대상자를 어떻게 찾으시는 건가요?
A. 보통은 시설에 입소하신 분들이 거기서 안내를 받으시게 됩니다. 또 자치구에 있는 점검반이 주기적으로 노숙인을 찾아서 시설로 안내해 드리거나, 한파나 폭염이 발생하면 시청과에서도 거리로 나가 이 분들을 시설로 입소할 수 있게끔 안내해 드립니다.
Q. 인문학 수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모든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 건가요?
A. 크게 '희망과정'과 '행복과정'으로 나뉘는데, 두 개 다 들으실 수도 있어요. 노숙인 시설, 쪽방상담소 등에서 진행하는 '희망과정'을 시설에서 듣기도 하고, 서울시립대, 건국대에서 진행하는 '행복과정'을 동시에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Q. 수강생들에게 특히 인기 많은 수업은 무엇인가요?
A. 인문학 중 철학이나 한국사가 은근히 인기가 많아요. 한국사 같은 경우는 듣고 탐방을 하거든요. 유적지나 현장 체험학습 위주로 하는 프로그램을 많이들 좋아하세요. 이 외에 복싱, 생활체육, 일자리 자격증, 심리 상담 등 프로그램이 아주 많고 종류도 다양해요.
그런데 노숙인 분 중에서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분도 많으세요. 대학 졸업하고 어쩌다 생활의 어려움으로 노숙인이 된 경우도 많아서 그런 분들은 학교도 다니고 싶어하시고, 강의도 더 들으려고 하시기도 하십니다. 이론 공부, 체험학습이나 현장학습 등 듣고 싶어 하는 수업도 다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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