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꽃 들판에 열린 조각전 '열린송현녹지광장'에 가야 할 이유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3.10.13. 11:09

수정일 2023.10.13. 17:35

조회 1,785

“여기 언제부터 이렇게 멋있었지?”
한 시민이 반가운 목소리로 일행에게 물었다. 골목을 빠져나와 열린송현녹지광장으로 들어서던 얼굴이 환해졌다. 광장이 열린 후로 이곳을 찾은 이들은 정말 백이면 백 모두 반색을 한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환히 열린 광장이라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더욱이 지금 송현광장에는 무수한 가을꽃들이 식재돼 꽃들의 들판을 걷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현장 프로젝트 조형물들과 아름다운 꽃들, 거기에 서울아트위크를 시작하며 설치한 조각 작품들까지, 송현광장에는 볼거리, 느낄 거리가 꽃만큼이나 많다.
금단의 땅이었던 송현동 부지가 지난해 열린송현녹지광장으로 시민들에게 임시 개방되었다. ⓒ이선미
금단의 땅이었던 송현동 부지가 지난해 열린송현녹지광장으로 시민들에게 임시 개방되었다. ⓒ이선미
광장에는 여덟 곳의 출입구가 있는데 어디로 들어오든 가을꽃들이 풍성해 시선을 끈다. ⓒ이선미
광장에는 여덟 곳의 출입구가 있는데 어디로 들어오든 가을꽃들이 풍성해 시선을 끈다. ⓒ이선미

“이 꽃은 이름이 뭐지? 이름표가 있으면 더 좋았겠다!”
시민들은 꽃을 검색하려고 스마트폰을 켰다. 하지만 꽃 검색이 언제나 정확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기왕이면 이름표도 예쁘게 붙여 줬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외래종 꽃들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꽃도 이름을 모르는 게 많다 보니 좀 아쉬웠다. 

그래도 낯익은 식물들도 있었다. 몇 해 전부터 핑크뮬리와 함께 독특한 풍경을 선사해 주는 댑싸리(코키아)도 앙증맞은 자태로 자리하고 있었다. 연녹색으로 자라다가 가을이 깊어갈수록 붉게 물들어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식물이다.

화려하고 따뜻해 보이는 많은 꽃들 사이에 ‘송현’, 소나무 고개의 주인공인 소나무도 멋지게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광장을 개장하면서 심은 25년 수령의 남산 소나무 후계목이다.
댑싸리와 코스모스 너머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페어 파빌리온’이 보인다. ⓒ이선미
댑싸리와 코스모스 너머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페어 파빌리온’이 보인다. ⓒ이선미
버들마편초와 황화코스모스 등이 만발한 꽃밭에서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선미
버들마편초와 황화코스모스 등이 만발한 꽃밭에서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선미
‘송현’ 소나무 언덕의 주인공인 소나무도 풍경의 멋진 일부로 자라고 있다. ⓒ이선미
‘송현’ 소나무 언덕의 주인공인 소나무도 풍경의 멋진 일부로 자라고 있다. ⓒ이선미

지난 9월 열린 서울아트위크는 끝났지만 야외조각 특별전 ‘땅을 딛고(Step on the Ground)’12월 31일까지 계속 이어진다. 감고당길에서 올라오는 길목에 안내 표지가 있었다. 열린송현녹지광장에 대한 소개도 함께 있었다.

“…도심 속 푸른 광장 열린송현은 서울 도심의 북적이는 풍경과 더불어 인왕산과 북악산 자락, 그리고 탁 트인 하늘을 담고 있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조선의 왕족과 명문 세도가들의 주 거주지였던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수탈 기관 역할을 하는 조선식산은행의 소유가 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주한 미국대사관의 외교 부지로 사용되었고,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다시금 대한민국의 땅이 되었습니다….”

특별전 표지판에 광장의 내력도 쓰여 있어서 처음 광장을 찾은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특별전 ‘땅을 딛고(Step on the Ground)’ 안내에 열린송현녹지광장의 내력도 담겨 있다. ⓒ이선미
특별전 ‘땅을 딛고(Step on the Ground)’ 안내에 열린송현녹지광장의 내력도 담겨 있다. ⓒ이선미

‘땅을 딛고’중진 작가와 유망 신진 작가 10인의 10여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종친부길로 가는 길까지 쭉 이어져 있다. 작품들은 오래 전부터 언제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작품 주변으로 꽃들도 피어나 더더욱 편안한 느낌이었다.

정정주 작가의 ‘형이상학적 별 21-3(Metaphysical Star 21-3)’은 백일홍 꽃밭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여름에는 아직 종자였던 백일홍이 이제 활짝 피어서 말 그대로 꽃 속에 핀 별이 되었다. ‘백일홍 종자를 파종한 곳입니다’ 라는 표지판까지도 작품의 일부로 보였다.
작품들은 오래 전부터 언제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설치돼 있다. ⓒ이선미
작품들은 오래 전부터 언제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설치돼 있다. ⓒ이선미
백일홍이 피어나 꽃 속의 별이 된 ‘형이상학적 별 21-3’ ⓒ이선미
백일홍이 피어나 꽃 속의 별이 된 ‘형이상학적 별 21-3’ ⓒ이선미
꽃밭을 배경으로 엄마 사진을 찍어 주는 딸. 모녀의 모습이 닮았다. ⓒ이선미
꽃밭을 배경으로 엄마 사진을 찍어 주는 딸. 모녀의 모습이 닮았다. ⓒ이선미

양순열 작가의 ‘마더 오똑이’는 색감만으로도 시민들의 주목을 끌었다. 당연히 인증샷 포인트가 되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에 ‘마더’를 대입한 작가는 모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모성을 회복하고 확장해 지금 우리 시대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세상 모든 생명과 사물이 평화롭게 공생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겼다고 한다.
어디서 찍어도 일단 멋있는 ‘마더 오똑이’ ⓒ이선미
어디서 찍어도 일단 멋있는 ‘마더 오똑이’ ⓒ이선미

서울아트위크 특별전 ‘땅을 딛고’는 “질문하며 살아간다면 훗날 그 답을 살게 될 것”이라고 한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을 언급하며 ‘굴곡진 역사를 딛고 살아온 우리네 삶에 대한 질문들을 담고자 했다’고 한다. 조각 작품이 설치된 구역에는 거친 줄기 끝에 장미꽃이 화사하게 피었는데,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생각났다.

우리 모두의 삶도 그렇고 우리 각자의 삶에도 질문이 있다. 질문이 필요하다. 좋은 질문을 해야만 좋은 답을 얻는다. 작품들 사이를 걸으며 그 안에 담았다는 어떤 질문들을 찾아가고 싶었다. 
‘땅을 딛고’ 전시 작품이 설치된 곳에는 키 큰 장미꽃들이 작품의 일부처럼 피었다. ⓒ이선미
‘땅을 딛고’ 전시 작품이 설치된 곳에는 키 큰 장미꽃들이 작품의 일부처럼 피었다. ⓒ이선미
서해영 작가의 ‘공존의 땅’도 분명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선미
서해영 작가의 ‘공존의 땅’도 분명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선미

의미를 잘 몰라도 작품들이 예쁘고 재미있어서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가자고 채근하는 아빠에게 한 아이가 말한다. “아빠, 아직 볼 게 많아요!”

해가 지고도 광장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해가 지고 있는 송현광장에서 시민들이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선미
해가 지고 있는 송현광장에서 시민들이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선미
송현광장 둔덕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뛰어놀고 싶은 뒷동산이 되었다. ⓒ이선미
송현광장 둔덕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뛰어놀고 싶은 뒷동산이 되었다. ⓒ이선미

꽃이 피고 예술 작품이 있고 편안한 일상이 허락된 열린송현녹지광장. 지금 광장은 놀이터이자 휴식 장소이고 꽃 만발한 정원에서 인증샷을 찍는 포인트이자 아름다운 전시 공간이다. 

‘땅을 딛고’의 한 작품인 ‘유한한 숲’처럼 열린송현녹지광장 역시 2년 동안 임시 개장 중이다. 언제 또 어떤 모습이 될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멋진 가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송현공원 야외조각 특별전: 땅을 딛고(Step on the Ground)

○ 기간 : 2023. 9. 1. ~ 12. 31.
○ 장소 :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48-3 열린송현녹지광장
○ 교통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29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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