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서의 삶은 어떨까? 오픈하우스에서 엿본 고즈넉한 한옥의 운치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3.09.27. 11:51

수정일 2023.09.27. 15:01

조회 1,014

은평한옥마을 골목길 ©이선미
은평한옥마을 골목길 ©이선미

이젠 제법 정취가 그윽해지는 은평한옥마을

9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북촌·서촌·은평한옥마을 일대에서 '서울한옥위크'를 처음으로 개최한다.서울한옥위크의 일요일 은평한옥마을을 찾았다. 평소에는 방문할 수 없는 한옥들도 개방한다고 해서 찾아가 보고 싶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골목을 걸었다. 한옥마을이 조성되고 한동안은 썰렁했는데 어느 틈에 제법 사람 사는 냄새가 배어들었다. 집집마다 대문 앞에 소소한 꽃들이 피고, 어느 집 앞에는 가을 햇살에 고추를 내어 말리는 모습이 정겨웠다.
고추를 내어 말리는 골목 풍경 ©이선미
고추를 내어 말리는 골목 풍경 ©이선미

한옥 오픈하우스는 북촌과 은평 두 곳에서 9곳의 한옥을 개방한다고 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개방이 시작되는 오전 11시쯤 ‘서희재’에 발걸음이 닿았다. 외출을 서두르던 집주인이 이른 손님을 맞아주었다. 이 한옥은 2021년 독일 건축가가 설계한 집인데 그해에 서울시 우수한옥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대문에 ‘올해의 우수한옥’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2021년에 지어진 ‘서희재’는 독일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졌다. ©이선미
2021년에 지어진 ‘서희재’는 독일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졌다. ©이선미

무엇보다 네모 반듯한 마당이 시선을 먼저 끌었다. 햇살이 가득 쏟아져 눈이 부셨다. 넓지 않지만 벤치에 앉아 햇살을 누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집 안은 아주 효율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지하와 1, 2층으로 이어진 내부는 어느 한 곳 허투루 쓰이는 곳이 없어 보였다. 꼭 있어야 할 것들이 꼭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드는 집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나무 냄새가 스쳤다. 집주인이 지금은 냄새가 많이 빠진 것이라며 좋은 나무는 향도 오래 간다고 전해주었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나무창살. 창호 등이 한옥의 소박한 멋을 풍긴다. ©이선미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나무창살. 창호 등이 한옥의 소박한 멋을 풍긴다. ©이선미

집주인이 아직 계신 집을 구경하는 게 어색해 서둘러 둘러봤지만 구석구석 정성스러운 손길이 가득했다. 특히 주방은 여러모로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골목으로 난 창 너머로는 저 건너 한옥의 기와지붕이 보이고 마당으로 향한 문을 열면 그대로 자연과 경계가 없어질 것 같았다.
마당에서 본 누마루가 멋스럽다. ©이선미
마당에서 본 누마루가 멋스럽다. ©이선미

“‘정다운집’에도 꼭 가보세요. 집이 참 예뻐요.” ‘서희재’ 주인장이 귀띔했다.

서둘러 ‘정다운집’으로 향했다. 이 집 역시 ‘서희재’와 같은 설계자가 지었다고 한다. 외국인 건축가가 지은 한옥이 2년 연속 서울시 최고 한옥으로 뽑혀서 더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고 하는데, 사실 건축가 텐들러 다니엘은 어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한옥을 무척 사랑하는 그는 "한옥의 가장 특별한 매력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지속 가능한 공간이라는 점"이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서희재’는 건축가가 사랑으로 지은 한옥이었다.
‘정다운집’의 한자는 ‘情多雲集’이다. 재미있는 작명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이선미
‘정다운집’의 한자는 ‘情多雲集’이다. 재미있는 작명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이선미

은퇴한 부부가 사는 ‘정다운집’은 입구의 별채를 지나 아무 꾸밈없는 흙마당 너머로 2층 규모 본채가 ‘ㄱ’자로 앉아 있었다. 본채에는 들어가 볼 수 없어서 마당에서 살짝 들여다보기만 했는데 햇빛이 환히 드는 마루에 빛이 그림자를 드리워 ‘적요(寂寥)’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별다른 꾸밈 없는 흙마당이 편안해 보이는 ‘정다운집’ ©이선미
별다른 꾸밈 없는 흙마당이 편안해 보이는 ‘정다운집’ ©이선미

‘서울 우수한옥 인증제’는 2016년부터 시행하고 있는데 현재 89개소가 선정됐다. 은평한옥마을에도 20곳이 넘는 우수한옥이 있어 곳곳의 멋진 한옥들이 시선을 끌었다.
북한산 아래 은평한옥마을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선미
북한산 아래 은평한옥마을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선미

진관습지를 가로질러 ‘한문화체험관’ 쪽으로 갔다. 한옥마을 한복판에 자리한 습지에는 아직 푸르른 여름이 남아 있었다. 데크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녹음이 상쾌했다.
진관습지 입구에 가을을 알리듯 코스모스가 피었다. ©이선미
진관습지 입구에 가을을 알리듯 코스모스가 피었다. ©이선미
북한산이 보이는 데크 길 옆으로 한옥들이 들어서 있다. ©이선미
북한산이 보이는 데크 길 옆으로 한옥들이 들어서 있다. ©이선미

진관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한문화체험관’은 우리 전통문화 전시와 다도, 명상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 건물 아래층은 서양식으로 짓고 위쪽은 전통 양식으로 지어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흙다움, 물다움, 빛다움, 아름다움'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명상 공간으로 쓰이는 3층은 투명한 지붕을 통해 그대로 햇빛이 들어왔다. 북한산이 건너편으로 보이는 곳에 앉으면 절로 명상이 가능할 것 같다.
진관사 입구에 지어진 한문화체험관은 우리 전통문화를 전시하고 체험하는 공간이다. ©이선미
진관사 입구에 지어진 한문화체험관은 우리 전통문화를 전시하고 체험하는 공간이다. ©이선미
우리 전통 양식을 적용해 지은 명상 공간 ©이선미
우리 전통 양식을 적용해 지은 명상 공간 ©이선미

‘한옥 파빌리온; 짓다’에서 음악회도 열려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열린송현녹지광장 ‘한옥 파빌리온 짓다’에서는 한옥위크를 맞아 ‘한옥, 한 음(音)’ 음악회도 열렸다. 사전 예약을 받았지만 현장에서도 입장이 가능했다. 파빌리온 안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 풀밭에 놓인 큰 돌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음악을 즐기는 시민들도 많았다. 그 자체가 자연스럽게 아름다웠다.
대나무 길을 접어들면 한옥 파빌리온이 비밀의 동굴처럼 드러난다. ©이선미
대나무 길을 접어들면 한옥 파빌리온이 비밀의 동굴처럼 드러난다. ©이선미
한옥 파빌리온은 자연 속에 둥글게 자리하고 있다. ©이선미
한옥 파빌리온은 자연 속에 둥글게 자리하고 있다. ©이선미

한옥 이전의 집, 우리 의식 깊이에 자리한 집의 원형을 일깨워 소환하는 공간이라는 이 장치는 몽골의 게르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 달라 보였다. 게르가 외부를 완전히 차단하는 데 반해 한옥 파빌리온은 무척 성글었다. 햇빛과 바람이 성근 산자 사이로 쏟아져 들어와 집이라기보다는 숲속의 동굴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연과 그대로 이어져 있는 한옥 파빌리온 ©이선미
자연과 그대로 이어져 있는 한옥 파빌리온 ©이선미

둥근 지붕 아래로 오후의 햇빛이 쏟아져 내리는 시간, 현악4중주와 우리 국악인의 소리가 파빌리온을 넘어 광장을 부드럽게 감쌌다. 아주 편안했다. 공간이 주는 아늑함 덕분인지, 음악 덕분인지 시민들의 표정 역시 무척 편안해 보였다. 우리가 ‘집’에서, 마을에서, 공동체에서 주고받고 누려야 할 위로와 평화가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음악회를 찾은 시민들의 표정이 참 편안해 보였다. ©이선미
음악회를 찾은 시민들의 표정이 참 편안해 보였다. ©이선미

그런 느낌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는 열린녹지송현광장 곳곳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땅소'를 감싸 안은 둔덕들은 그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뒷동산’ 같았다. 둔덕에 놓인 의자에 앉거나 드러누워 하늘을 보며 시민들은 자연 속에 머무는 것 같았다.
시민들이 가장 편안한 자세로 광장을 누리고 있다. ©이선미
시민들이 가장 편안한 자세로 광장을 누리고 있다. ©이선미

한옥은 자연과 무척 어울리는 건축물 같다. 파빌리온도 그런 의미를 담은 것 같았다. 한옥위크에 찾은 은평한옥마을에서도 그런 느낌이 조금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자연을 닮아가며 어우러지는 풍경이 거기 있었다. 한옥마을에서는 날렵하고 정확한 직선들이 아니라 이리로 저리로 이어지고 맞닿아지는 곡선들이 세상을 그렇게 굽이굽이 둥글게 닿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사람이 집을 이고 사는 게 아니라 집을 통해 휴식을 취하고 힘을 얻으며 살아간다. 한옥위크에 만난 한옥과 ‘한옥 파빌리온’은 집의 본래 이유를 생각해 보게 했다.

서울한옥위크

○ 기간 : 2023. 9. 18.~27.
○ 장소 : 북촌·서촌·은평한옥마을, 열린송현녹지광장 일대
서울한옥위크 누리집
서울한옥포털 누리집
○ 문의 : 한옥정책과 02-2133-5580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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