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놀이터 그만! 이야기가 있는 '놀이풍경'으로

지정우 건축가

발행일 2023.01.27. 15:26

수정일 2023.03.10. 15:53

조회 3,153

지정우 건축가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공간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공간을 만듭니다. 창의적인 공간에서 좀 더 유연한 생각이 펼쳐집니다. 앞으로 둘째, 넷째 금요일에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연재를 맡은 지정우 건축가는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청소년 도서관 공간인 ‘우주로 1216’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다양한 국내외 건축상을 받았습니다. 칼럼을 통해 지난 25년간 한국과 미국에서 건축설계와 건축교육, 특히 어린이 건축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세대의 건축과 공간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1) 지역 맛집과 놀이풍경

얼마 전 가족들과 미국 필라델피아에 갈 일이 있었다. 점심 무렵 무엇을 먹을까 아이에게 물어보니 이곳에 왔으니 정통 ‘필리치즈스테이크’를 먹고 싶다는 것이다. 제일 처음 우리가 한 일은 핸드폰에서 구글맵을 켰다. 그리고는 인근에서 필리치즈스테이크를 파는 곳을 검색했다.

그러다 ‘Pat’s King of Steak’라는 곳이 가장 유명하고 원조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도 큼지막한 대로변이나 상가가 즐비한 거리도 아니고 주택가 뒷골목을 지나더니 평일 낮시간에 긴 줄이 서 있는 그 레스토랑은 치즈스테이크를 바로바로 구워 서브를 만들어 내어주는 주방의 긴 창문과 창구 하나를 가진 작은 건물과 비를 맞지 않게 보도를 덮고 있는 캐노피, 그리고 야외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소박한 구성이었다.

그러나 그곳을 찾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대에 찬 모습들이고 주변에 서서, 걸터 앉아서 먹으며 저마다 이야기가 가득했다.
필라델피아의 1930년부터 영업해온 유명한 필리치즈스테이크집 간판과 역사가의 안내판.
필라델피아의 1930년부터 영업해온 유명한 필리치즈스테이크집 간판과 역사가의 안내판.

우리의 일상에서 스마트폰을 쓰면서 가장 많이 찾아보는 것이 아마 ‘지도’ 관련 앱일 것이다. 여러 생활의 장소와 그곳까지의 경로 뿐 아니라 그 장소를 경험한 사람들의 평가를 보게 된다.

사람마다 찾는 종류에 따라서 달라지긴 하겠지만 국내의 지도 앱에서도 보통은 ‘음식점’과 ‘카페’가 가장 먼저 뜬다. 미국의 구글맵에서도 ‘home(집)’과 ‘work(직장)’ 다음에 ‘restaurant’가 가장 앞에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장소를 선호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도 앱에서도 ‘어디에서나 흔한’ 프랜차이즈 장소를 찾기 보다 그 지역에만 있는 맛집, 로컬 역사나 이야기를 간직한 카페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 지역에만 있는 맛집이나 카페는 다른 장소에선 흉내내기 어려운 맛, 분위기가 있다. 지역에만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곳을 찾을 수 있는 식당과 카페들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정도로 우리 취향은 성숙되어 있다. 그리고 그곳을 찾는 각자는 자신만의 기억과 이야기를 그 장소 안팎의 분위기와 함께 간직하게 된다.
국내 지도 앱인 네이버지도와 미국의 구글맵 초기 화면에 ‘음식점’, ‘카페’ 등이 가장 먼저 위치한다. 사진 캡쳐 지정우
국내 지도 앱인 네이버지도와 미국의 구글맵 초기 화면에 ‘음식점’, ‘카페’ 등이 가장 먼저 위치한다.
기억 속의 놀이풍경은 어땠을까? 
몇 가지 놀이기구 보다 그네에 앉아서 이야기 나누던 사람, 
친구와 놀이하던 상황의 냄새, 촉감
아이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 등이 떠오르지 않을까

같이 나이 들어가는 놀이풍경은 없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어린이 놀이풍경에 대한 취향은, 문화는 어떨까. 이 대목에서 그다지 생각해보지 않은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이미 그 장소에서 즐길 나이가 훌쩍 넘은 분들이 이 글을 읽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놀이풍경에서 몇가지 놀이기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놀이풍경 너머의 노을 지던 빛, 그네에 앉아서 이야기 나누던 사람, 친구들과 놀이하던 상황의 냄새, 촉감, 아이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 등이 총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기억보다 더 못한 현실 속 놀이터에 아이들이 있다. 기성세대들의 어린시절 그것보다 더 정형화 되어있고 더 재미없으며 무엇보다 그나마 그곳에서 놀 시간이 없다. 즉, 프랜차이즈 식당처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고만고만한 놀이기구가 놓여있고, 그 주변의 골목부터 남다른 지역 맛집과 달리 서울인지 제주인지 모를 삭막한 아파트단지 안, 똑같은 빌라촌 사이에 놓여있는 놀이터가 허다하다. 
어느 단지나, 어느 학교나 똑 같은 재료와 놀이기구의 기존 놀이터들. 이곳이 서울인지, 경기인지, 강원도인지 누구도 알기 어렵다. 이곳에서 놀았던 사람도 잘 모를 것이다.
어느 단지나, 어느 학교나 똑 같은 재료와 놀이기구의 기존 놀이터들. 이곳이 서울인지, 경기인지, 강원도인지 누구도 알기 어렵다. 이곳에서 놀았던 사람도 잘 모를 것이다.

오래된 손때가 묻어 있고 그 동네 추억과 함께하던 놀이풍경은 이미 우리 환경에서 사라졌다. 반면 할머니가 놀던 놀이터에서 그 딸이 놀고, 그 손녀가 놀면서 대를 이어 추억을 공유하고 주민들과 같이 나이 들어가며 아플 때 사람이 치료받는 것처럼 조금씩 고쳐 쓰며 동네 속 분위기를 간직한 놀이풍경을 갖고 있는 나라들도 많이 있다. 
미국 아이오와 주의 한 학교 놀이터 사진과 아직도 남아있는 도면. 1990년에 꽤 사려깊게 디자인되어 만들어졌고 동네 주민들과 같이 나이들어가는 놀이풍경. 우리는 이런 것이 불가능할까?
미국 아이오와 주의 한 학교 놀이터 사진과 아직도 남아있는 도면. 1990년에 꽤 사려깊게 디자인되어 만들어졌고 동네 주민들과 같이 나이들어가는 놀이풍경. 우리는 이런 것이 불가능할까?
로컬의 맛집을 찾는 수준만도 못하고 
프랜차이즈 수준도 기준 미달인 놀이 환경 속에서 
우리 어린이들은 성장하고 있다 

로컬의 맛집을 찾는 수준만도 못하고 프랜차이즈 수준도 기준 미달인 놀이 환경 속에서 우리 어린이들은 성장하고 있다. 예전엔 4S라고, ‘그네 (Swing), 시소 (Seesaw), 미끄럼 (Slide), 모래 (Sand)’만 최소한으로 넣어준 그것도 관리하기 편하자고 스테인레스, 플라스틱 일색의 놀이터만 마지못해 존재했다. 최근엔 키즈 카페의 영향으로 ‘방방이’와 ‘짚라인’까지 비슷비슷하게 갖추고 있고 알록달록 캐릭터와 컬러가 더해진 조합놀이대가 끼었지만 여전히 각각 놀이기구만 가득한 똑같은 놀이터에서 다음세대들이 성장해야 할까.

자신만의 서사가 중요한 놀이풍경

이러한 기존 놀이터의 문제를 인식한 것은 우리 뿐만 아니다. 전세계의 의식 있는 부모들이, 어른들이, 젊은이들이, 전문가들이, 마을 구성원들이 똑같은 놀이기구만 채워진 놀이터에서 진정으로 그 동네 어린이들이 잘 놀며 성장할 ‘놀이풍경’을 고민하고 만들어 가고 있다. 
적어도 놀이풍경 만큼은 지역마다 다르고 
동네마다 다른 분위기를 담기를
그곳에서 어린이들이 
각각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를 꿈꿔본다 

학교와 학원과 주거 환경이 다양하지 못하고 열악하더라도 적어도 놀이풍경 만큼은 지역마다 다르고, 동네마다 다른 분위기를 담고, 무엇보다 그 곳에서 노는 어린이들이 각각의 이야기와 관계를 지어갈 수 있는 그런 놀이풍경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고 만들어져 왔는지 차차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필자가 공동운영하는EUS+가 디자인한 한 초등학교의 놀이풍경. 배경의 아파트 단지는 전국 어디나 똑같지만 이 놀이풍경은 전세계에서 유일한 장소다.)
필자가 공동운영하는EUS+가 디자인한 한 초등학교의 놀이풍경. 배경의 아파트 단지는 전국 어디나 똑같지만 이 놀이풍경은 전세계에서 유일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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