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나 삶을 닮았는지 새삼스레 경탄한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8.29. 14:13
인간의 마음이 애정의 산꼭대기를 오르면서 휴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와 반대로 증오의 급경사지에선 거의 발을 멈추지 않는 법이다. --발자크 《고리오 영감》 중에서 |
[서울톡톡] '산이 싫다(정확히 말하면 '등산이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더 이상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가빠오는 호흡과 터질 듯한 심장의 고통이다. 그것은 주로 가파른 오르막길을 헐떡거리며 오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산꼭대기를 목표로 두고 지나는 오르막은 고난과 고행의 길에 다름 아니다. 등산 교본에서는 오르막을 지날 때는 발 앞부분에 체중을 싣고, 상체는 살짝 앞으로 굽히되 목과 허리는 똑바로 세우고, 눈은 5-6미터 앞을 바라보며 걷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천근만근인 다리를 끌고 낑낑거리며 오르다보면 몸은 거의 기어가다시피 기울어지고 눈길은 한 치 앞도 못 내다보고 발끝에 머무르기 십상이다.
그런데 산행에 조금 익숙해지다 보면 재미있는(그리고 뜻밖의) 두 가지 이치가 발견된다. 하나는 산행 시간이 길수록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의 부담이 더 커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은 오르막길을 더 힘들어하는 반면 어른들은 내리막길을 더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내리막이 힘든 이유는 몸과 짐의 무게 때문에 무릎에 충격이 가해져 무리가 오고, 미끄러지거나 넘어지거나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해 너무 빨리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몸이 가벼운 아이들이 날아가듯 내리막길을 달려가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주춤주춤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산이 어찌나 삶을 닮았는지 새삼스레 경탄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삶의 정상을 향해 오르는 중이고 어른들은 이제 정상을 넘어 하산을 준비하는 길이니, 다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짐을 짊어지고 오롯이 자기만의 산행을 하는 것이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오르막길은 더디다. 고지가 저만치 앞에 놓여있을 때에는 힘겨운 만큼 자주 쉬어야 한다. 갈 길은 바쁘지만 휴식은 달콤하다. 흐른 땀을 닦으며 지나온 길과 가야할 길을 확인한다. 타는 목을 축이며 기어이 산꼭대기에 올라 '야호!' 통쾌하게 소리 지를 일을 상상한다. 그런데 마침내 정상을 '정복'한 후 내려갈 때에는 홀가분한 발걸음만큼 위험이 더한다. 같은 거리라도 내리막길은 오르막길보다 절반 정도의 시간 밖에 소요되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고는 하산 길에 발생한다.
사랑하기보다 미워하기가 쉽다. 이미 얻은 사랑조차 지키기보다 잃기가 쉽다. 일단 미움이 싹트기 시작하면 장마 끝의 잡초처럼 억세게 번진다. "너 없으면 못 산다"며 사랑과 생존을 하나로 여기던 연인이, "너 때문에 못 산다"며 악다구니 쓰는 원수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가 연루된 범죄의 원인은 돈이 아니라면 치정(癡情)이다. 사랑했기에 미워하는 것이다. 사랑했던 만큼 미움의 가속이 붙어 더욱 가열하게 내리달리는 것이다.
다시 등산 교본을 들춰보면, 근육 세포를 다치기 쉬운 내리막에서는 체중을 발끝에 고루 싣고 몸의 균형을 잡으며 걸어야 한다고 한다. 나의 증오에 내가 다치지 않게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정도 병이다'는 조상들의 말씀이 아무래도 참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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