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에서 울려퍼진 노랫소리

시민기자 김수정

발행일 2022.06.28. 09:52

수정일 2022.06.28. 17:56

조회 1,101

심우장에서 공연된 창작뮤지컬 '심우' 관람기
창작뮤지컬 '심우' 공연 모습
창작뮤지컬 '심우' 공연 모습 Ⓒ김수정

성북동의 작은 한옥 앞마당에서 공연이 펼쳐졌다. 배우들의 노랫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담벼락 너머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들여다본다. 작은 공간은 어느새 1937년 봄이 되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의 고뇌로 가득 찬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짓고 거처한 ‘심우장’이 그의 삶과 정신을 기념하기 위한 창작뮤지컬 ‘심우’의 무대로 변신했다. 
한용운의 집 '심우장'이 무대가 되었다.
한용운의 집 '심우장'이 무대가 되었다. Ⓒ김수정

만해 한용운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고 시인이다. 1879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1905년 백담사에서 출가하였다. 1910년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하였고 1918년 불교잡지 ‘유심’을 창간하여 불교의 개혁과 혁신을 주장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이 사건으로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옥중에서 ‘조선독립의 서’를 써서 신문에 발표했다. 
심우장
심우장 Ⓒ김수정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이 1933년 유숙원과 결혼 후 성북동에 직접 짓고 거처한 집이다. 이곳에서 딸 영숙을 낳아 길렀고 1944년 생을 마무리할 때까지 조국에 대한 지조를 지키며 살았다. 남향을 선호하는 한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집인데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게 된다며 이를 거부하고 반대편으로 지었다는 이야기는 심우장에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일화다. 

그가 심우장에 머무르는 동안 일본인은 한 발짝도 집에 들어 올 수 없었다고 하니 끝까지 일본에 빼앗기지 않은 우리의 마지막 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심우장이란 이름은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닫는 10단계의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해서 그린 심우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심우는 10단계 중 가장 첫 번째 단계로, 낮은 자세로 사람을 대하며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독립운동가 일송 김동삼. 한용운은 옥사한 김동삼의 시신을 수습하고 심우장에서 오일장을 치렀다.
독립운동가 일송 김동삼. 한용운은 옥사한 김동삼의 시신을 수습하고 심우장에서 오일장을 치렀다. Ⓒ김수정

창작뮤지컬 ‘심우’의 배경이 된 사건은 만해 한용운이 심우장에서 기거하던 1937년 봄에 일어났다. 신흥강습소 설립에 참여하였고 서로군정서의 대표를 역임하기도 한 독립운동가 일송 김동삼 선생이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도 그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았다. 이에 한용운은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심우장에서 오일장을 치른다. 그동안 찾아온 이는 겨우 20여 명뿐, 만해의 고뇌에 찬 절규가 심우장에 울려 퍼진다. 
한용운의 딸 한영숙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관객 사이를 지나고 있다.
한용운의 딸 한영숙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관객 사이를 지나고 있다. Ⓒ김수정

40분이라는 짧은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몰입도가 대단하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어느새 눈물이 뚝떨어진다. 여기저기 관객들이 눈물을 훔친다. 그렇다고 해서 내내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도 아니다. 전체적인 사건은 실제 있었던 일이지만, 사실과 다른 점은 딸 한영숙의 나이다. 실제로는 1937년 딸 한영숙은 어린아이였으나, 극에서는 10대 소녀로 나온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로 나오는데, 재미난 대사와 경쾌한 노래로 극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준다. 
라이브 연주
라이브 연주 Ⓒ김수정

극의 무게가 진지하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 어색하지도 않게 강약 조절을 잘하여 억지스러운 눈물이 아닌, 자연스럽게 울컥함을 끌어냈다. 배우의 연기와 노래, 스토리와 연출, 그리고 라이브로 연주되는 곡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심지어 무대가 된 심우장에서 퍼져나가는 소리는 그 어떤 대형극장 못지않다. 아니,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은 지금까지 본 공연장 중에서 가장 운치 있고 멋졌다. 
만해 한용운의 글씨
만해 한용운의 글씨 Ⓒ김수정

심우장 앞마당에는 커다란 향나무와 소나무가 있다. 만해 한용운이 집을 지으면서 직접 심은 나무란다. 심우장의 나이만큼 세월을 보낸 나무들이다. 만해가 죽은 뒤에도 외동딸 한영숙이 심우장에 거주했는데 일본 대사관저가 이곳 건너편에 자리 잡자 명륜동으로 이사를 하고 심우장은 만해의 사상연구소로 사용되고 있다. 한용운이 사용하던 방에는 그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보존되어 있다. 1985년 7월 5일 서울특별시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4월 8일 사적으로 승격되었다. 
심우장 가는 길
심우장 가는 길 Ⓒ김수정

창작 뮤지컬 ‘심우’는 내년 6월에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심우장만 둘러보아도 충분히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더불어 1944년 6월 29일은 만해 한용운이 성북동 심우장에서 입적한 날이다. 입적 78주기를 맞아 오전 11시, 성북동 심우장에서 추모 다례재를 개최한다. 한용운 선생의 뜻을 느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심우장

○ 위치: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29길 24

시민기자 김수정

가볍게 여행 온 듯 서울의 아름다운 모습과 즐걸거리 등을 찾아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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