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예지동 시계골목에서 다시 태엽을 감다!

박혜리 도시건축가

발행일 2022.03.18. 16:20

수정일 2022.11.28. 10:04

조회 8,392

박혜리 도시건축가
‘잠자는 시계를 깨워드립니다’ 앙코르 전시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빈티지 시계들의 모습
‘잠자는 시계를 깨워드립니다’ 앙코르 전시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빈티지 시계들의 모습

박혜리의 별별 도시 이야기 (6) 앙코르~ 예지동 시계골목

몇 년 전, 한국으로 출장을 오는데 스페인 회사친구가 고장 난 시계의 수리를 부탁했다.  우리 회사 프로젝트 대상지(세운4구역 도시재정비 사업)였던 예지동의 시계골목이 유명하다고 현황분석을 통해 알게 된 연유였다. 스위스에서 산 시계인데 그렇게 고가는 아니지만 현재의 아내와 연애시절 커플로 맞춘 추억의 시계인데 고장이 나 꽤 오랫동안 못쓰고 있다며, 혹시 예지동에서 고칠 수 있는지 알아봐달라며 내게 부탁했다.  

유럽에서 알아보니 스위스로 돌려보내 맡겨야 하기에 너무나 고가의 수리비를 요구하더라며, 한국에서 가능할지 한번 가져가봐 달라고 했다. 한국에 와 예지동 시계골목 초입에 있던 시계명장수리가게에 가져가 물어보고 만원에 금방 고칠 수 있었다. ‘습기차지 않게 조심하며 차라’는 따뜻한 처방전과 함께. 꼭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는 의사의 처방전과 비슷한 다정한 걱정이 묻어 있었다. 유럽에서는 몇 박 며칠 걸리는 것이 예지동에서는 단 몇 분 만에 해결됐다. 예지동 시계골목 장인들의 수리기술은 세계 최고임을 몸소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현재 예지동 시계골목은 재개발을 앞두고 모두 폐업하거나 이전을 한 상태다. 그러나 도심 산업의 미세한 생태계 네트워크는 그들을 여전히 근처에 머물게 했다. 

스타트업 청년기업인 (주)앵커랩은 재개발을 위한 공사가림막이 설치되기 전 마지막까지 예지동에 남아있던 가게들의 이전 주소를 기록화 하였고, 이를 근거로 이주 추적맵을 함께 만들어 분석해 보았다. 
세운4구역 재개발지역 내 상가 이주를 추적한 위치 지도, 주황색은 시계, 분홍색은 귀금속, 초록색은 전자전기 관련 산업이다.
세운4구역 재개발지역 내 상가 이주를 추적한 위치 지도, 주황색은 시계, 분홍색은 귀금속, 초록색은 전자전기 관련 산업이다.

대부분 세운스퀘어, 세운상가, 종로4가 지하혼수상가, 종로3가 등 예지동에서 약 600미터 이내의 인근지역으로 이전하였다. 당장 멀리 못 떠나는 이유는, 모든 도심산업이 그러하듯 산업생태계가 근거리에 밀접해 있기 때문이다.   

쥬얼리는 이미 보석상이 밀접한 종로3가 또는 쥬얼리 종합판매장에 이주했다. 시계는 35% 가량은 임시대체사업장인 세운스퀘어로 이주하거나 배오개길 지하에 있는 지하 혼수상가로 떠났다. 전자 및 전기상은 유사 품목이 있는 세운상가로 가거나 바로 옆 블록인 장사동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대로변에 있는 가게들은 수평이동해서 대로변에 다시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예 멀리 이주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대부분 개인적인 사유가 큰 경우다.  

예지동 재개발을 다 마치고 난 후 이들은 다시 ‘예지동 시계골목’을 형성할 수 있을까? 이전부터 예지동 시계산업에 대한 추적 연구를 한 앵커랩은 얼마 전 세운상가 보행데크 동측 메이커스큐브에 ‘앙코르’라는 시계 작업장을 차렸다. 시계기술 큐레이션 플랫폼으로서 시계복원 빈티지샵 뿐만이 아닌 세운상가 일대 시계산업의 기술력을 보존, 계승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앙코르’ 시계 작업장 모습
‘앙코르’ 시계 작업장 모습
마침 고장 난 빈티지시계가 있어 이곳에 복원수리를 맡겼다. 금방 수리가 완료됐는데, 시계장인은 며칠 상태를 지켜 본 후 가져가라고 조언했다.
마침 고장 난 빈티지시계가 있어 이곳에 복원수리를 맡겼다. 금방 수리가 완료됐는데, 시계장인은 며칠 상태를 지켜 본 후 가져가라고 조언했다.

오프라인으로는 시계 팝업스토어 및 시계 네트워크 작업장을, 온라인으로는 빈티지시계를 복원하고 판매한다. ☞ 앙코르 시계 복원 서비스 홈페이지

앙코르 작업장은 단순히 시계작업장에 머물지 않고 공간과 시간의 매개자 역할을 하는 몇 가지 장치가 있다. 도시학박사이자 건축가인 이훈길 소장의 ‘예지동 전경’ 스케치가 창문에 그려져 있다. 낮엔 예지동 철거현장이 오버랩되어 보이고, 밤이면 주변이 어두워져 스케치의 모습이 온전히 보인다. 이 스케치로 인해 예지동 재개발 현장을 관망하고 미래를 고민하는 공간이 된다.
이훈길 소장의 예지동 전경 스케치. 낮과 밤의 차이. 예지동의 과거, 현재가 겹쳐져 보인다.
이훈길 소장의 예지동 전경 스케치. 낮과 밤의 차이. 예지동의 과거, 현재가 겹쳐져 보인다.
이훈길 소장의 예지동 전경 스케치.
이훈길 소장의 예지동 전경 스케치.

데크 쪽에서 바라보는 측면에는 ‘시계다방’ 간판을 모사한 스케치가 걸려있다. 시계기술자들이 쉬어갔던 시계다방처럼 앵커지점이 되길 바라고 있다. 
왼쪽은 예지동 시계다방 실제 간판, 오른쪽은 이훈길 소장의 스케치.
왼쪽은 예지동 시계다방 실제 간판, 오른쪽은 이훈길 소장의 스케치.

또한 앙코르는 어댑티브스와 공동으로 메이커스큐브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예지동 미니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예지동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엮는 작지만 힘 있는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예지동 미니갤러리에서 이주위치지도 관련 전시가 진행 중이다. “예지동의 마지막 가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3월 15일부터 4월 30일까지 메이커스큐브 세운상가 동측에서 오전 10시~오후 6시 평일 관람가능 하다.
예지동 미니갤러리에서 이주위치지도 관련 전시가 진행 중이다. “예지동의 마지막 가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3월 15일부터 4월 30일까지 메이커스큐브 세운상가 동측에서 오전 10시~오후 6시 평일 관람가능 하다.

앙코르 작업장은 예지동 시계골목과 시계기술자들을 엮고 기억하며 미래를 꿈꾸는 공간이다. 세운4구역(예지동) 재개발이 마무리 되고 다시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기까지, 그 시간 동안 앙코르는 재개발의 이전과 이후를 엮는 중개자이자, 시간을 잇는 ‘공간적 시계’로 역할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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