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 확장이 삶의 질 향상? 도시에서 꿈꾸는 '발코니 로망'

박혜리 도시건축가

발행일 2022.01.21. 16:05

수정일 2023.06.07. 14:28

조회 16,885

박혜리의 별별 도시 이야기
서울주택도시공사가 곧 선보일 증산 공공주택 복합시설
서울주택도시공사가 곧 선보일 증산 공공주택 복합시설

박혜리의 별별 도시 이야기 (4) 우리는 언제부터 발코니를 잊었나?

얼마 전 빌라에서 아파트로 이사 가는 한 친구의 하소연을 들었다. 요즘엔 아파트에 발코니가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방송작가인 그 친구는 저층 빌라의 앞뒤로 있던 발코니를 별채 또는 후정 삼아 다용도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새로 이사 갈 요즘 아파트에는 친구의 요구를 담아 줄 공간이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발코니를 잃어 버렸을까? 
추워도 발코니를 버릴 수 없다! 추운 북유럽 지방 아파트의 다양한 돌출 발코니(덴마크 코펜하겐)
추워도 발코니를 버릴 수 없다! 추운 북유럽 지방 아파트의 다양한 돌출 발코니(덴마크 코펜하겐)

나는 2000년대 건축설계 실무를 하다 한국을 떠나 유럽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최근 한국에 다시 돌아와 보니 여러 건축법규가 달라져 있었는데 몇 가지 아쉬운 변경사항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아파트 발코니 확장의 합법화다. 2005년에 거실 및 침실로 확장해 쓸 수 있도록 건축법이 바뀌었는데, 이제 더 이상 불법이 아니니 대놓고 확장을 해 실내공간이 더 넓어진 ‘아파트 상품’을 내놓고 있었다. 그렇게 발코니는 잊혀 갔다.

발코니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겨울이 너무 춥기 때문에 또는 황사나 미세먼지 등 외부환경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발코니를 만들어 봐야 쓰지 않는다는 ‘효용성’에 대한 의문이다. 아주 추운 북유럽이나 아주 더운 싱가포르, 홍콩 등의 주거건축에서 발코니가 당당하게 살아 숨 쉬는 것을 보니 기후는 주요 여건이 아닌 것 같다. 미세먼지 등 외부 공기질의 유입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꼭 맞는 핑계는 아닌 것 같다. 

내가 10여년을 살았던 네덜란드에서는 왜 그렇게 발코니가 잘 살아있을까 궁금했다. 항상 비가 내리고 바람도 엄청 세게 불어서 고층 주거에서는 발코니에 나갈 수 있는 날은 일 년에 며칠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북유럽 지방 아파트의 다양한 돌출 발코니(왼쪽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덴마크 오르후스)
북유럽 지방 아파트의 다양한 돌출 발코니(왼쪽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덴마크 오르후스)

네덜란드 건축법에 집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환경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외부공간(야외공간)을 두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 외부공간은 신선한 외부 공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으로, 정원, 테라스, 발코니, 로지아, 옥상정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 이는 각 주호(한 세대)에서 직접 도달할 수 있는 실외공간이어야 한다. 모든 가정에 최소 4㎡의 바닥면적과 최소 폭 1.5m의 너비를 가진, 다른 세대와 공용으로 쓸 수 없는 각 주호만의 독립된 ‘비공동 야외공간(niet-gemeenschappelijke buitenuimte)’이 제공돼야 한다. 다른 세대와 인접해 있을 경우 펜스 등으로 물리적 분리를 해주어야 한다. 공용공간이 중요하고 개별 야외공간이 굳이 필요하지 않는 학생주거 또는 요양원 등은 예외로 한다. 일반적으로 40㎡ 이하 소형 주거는 공용공간으로 대체할 수 있으며 각 주호당 1㎡의 면적만 있으면 된다.   

원칙적으로 발코니에는 창을 설치할 수 없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교통소음 63dB 또는 산업소음 55dB이상의 소음이 심한 지역이나 초고층의 경우 유리로 감쌀 수 있긴 하다. 그러나 이때도 유리 사이사이 기밀하지 않아 꼭 ‘신선한 공기’가 드나들 수 있도록 틈이 있어야 한다. 네덜란드에 이주한 한 한국 가정에서 발코니가 유리로 막혀 있는데 왜 공기가 술술 스며들게 공사했는지 모를 일이라며 불평을 하신 분이 있었다. 그 이유가 법규에서 완벽하게 막으면 안 되게 규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드렸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부실공사 같기도 하고, 기껏 유리로 막아놨으면서 왜 완벽하게 막지 않아 공기가 새어 들어오는지. 그건 ‘외부공간’임을 지키기 위함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블락(Blaak)광장 앞 아파트는 일상 소음 때문에 유리로 막았다. 그러나 공기가 살살 스며드는 유리마감. 결국 외부여야 하니까!
네덜란드 로테르담 블락(Blaak)광장 앞 아파트는 일상 소음 때문에 유리로 막았다. 그러나 공기가 살살 스며드는 유리마감. 결국 외부여야 하니까!

그래, 발코니는 외부공간이라 치자, 근데 왜 외부공간을 꼭 각 주호에 두어야 하나? 잘 쓰지도 않는데, 왜 불필요하게, 또는 왜 공간을 낭비하면서 굳이 안 쓰는 공간을 지어야 하나? 

네덜란드 법규에는(사실 보통 서구 국가의 법이 다 이렇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집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환경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외부공간을 두어야 한다고 한다. 지층이 아닌 상층부에 지면에서 떠서 적층해 살게 되는 고층 공동주택에서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지층과의 접함, 즉 외부공간의 경험이다. 

건강한 주거기능을 충족하기 위해, 거주민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 집을 벗어나지 않고도 주거공간에서 바로 외기로 면하는 옥외공간을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필요성은 이번 코로나를 겪으며 여실히 드러났다. 발코니에 앉아 연주회를 여는 모습이나, 주호 간 사회적 거리를 두며 ‘안전하게’ 이웃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모습 등 발코니의 사용이 전 세계적으로 극대화됐다. 우리 대한민국만 빼고. 

윈스턴 처칠은 ‘사람이 건물을 만들고, 그 건물이 다시 사람을 만든다.’라고 했다. 발코니의 쓸모가 없기에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닌, 자주 쓰지 않더라도 공중에 떠 있는 주거공간이라면 꼭 있어야 하는 필요조건인 것이다.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서.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에서는 “우리들이 태어난 집은 단순한 집채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꿈들의 집적체인 것이다. 옛날 그것의 구석진 곳들은 모두 하나하나 몽상의 장소였다.”라고 했다. 집은 우리의 육체를 담는 물리적 공간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 이상의 공간이다. 

서울시는 최근 성인 6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야외 발코니를 설치할 수 있도록 제도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면적 84㎡인 경우 5m×2.5m규모의 외부 발코니를 갖도록 건축물심의기준 개정안을 마련한다고 한다. 현재 건축법 상 폭 1.5m 내만 발코니 면적으로 계산할 수 있어, 면적기준을 놓고 국토교통부와 법령조정을 논의 중이다. 그나마 불법을 합법화한 그 뒤틀어진 왜곡에서 한 발짝 고쳐나가는 모습일 수 있다. 

이에 우선해 건축법에 개별 주호의 ‘외부공간’의 정의와 인간의 기본권을 위해 세대 당 적정규모의 외부공간을 마련할 것을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한 건축의 기본원칙으로 명시하면 좋겠다. 그리고 담배 표지에 담배가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를 알리는 광고를 붙이듯, 적정규모의 외부공간을 마련하지 않은 집은 거주자의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알리는 문구를 명시해야만 발코니 확장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건 어떨까. 

이런 기본 요건을 갖춘 주택공급을 공공이 먼저 모범을 보여 실행해야 한다. 마침 최근 설계를 마치고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곧 선보일 증산 공공주택 복합시설은 빗물펌프장 위 도시의 유휴공간에 세워지는 복합주거건축으로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증산 공공주택 복합시설 조감도
증산 공공주택 복합시설 조감도

이 ‘아파트’에서 도드라진 점은 독특한 저층과의 관계뿐만이 아닌 상부층으로 올라갈수록 점차 줄어드는 매스에서 형성되는 베란다 공간과 입면에 다양한 표정으로 읽히는 발코니다. 불광천 옆 건강한 건축이 멋진 경관을 형성하며 들어설 것이다.
 
주거의 입면, 도시의 경관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나간다. 건강한 주거공간과 멋진 도시경관을 지금부터라도 거주자들의 선택에 의해 순리에 맞게 바꾸어 나간다면 어떨까. 앞서 말했던 발코니를 찾다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확장형 아파트에 못마땅하게 이사 간 내 친구도 선택의 자유를 느낄 수 있게, 이러한 사람들이 소수가 아닌 다수가 되어 도시를 되돌려 놓을 수 있게. 그렇게 되면 코로나뿐만이 아닌 이후 다른 어려움이 올지라도 원칙에 맞게 떳떳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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