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시 한 수에 고문을 중지한 일본 형사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승철

발행일 2012.08.24. 00:00

수정일 2012.08.24. 00:00

조회 4,187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나는 대한 사람으로 일본 법률을 부인한다. 일본 법률론자에게 변호를 위탁한다면 대의에 모순되는 일이다. 나는 포로다. 포로로서 구차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치욕이다. 결코 내 지조를 바꾸어 남에게 변호를 위탁하여 살기를 구하지 않는다.' -1928년 대구형무소 옥중 투쟁 중-

일제치하와 해방정국에서 우리나라 유림을 대표하는 학자요 항일투쟁을 했던 심산 김창숙 선생은 지조를 굽힐 줄 모르는 선비였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 변호사 선임을 권하는 사람들에게 단호하게 거부하며 한 말이다. 선생이 훗날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일컬음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북한산 둘레길 중 수유동 '순례길 구간'에서 양일동 선생과 서상일 선생 묘역 이정표를 따라 100미터 쯤 올라 오른편 길가 언덕 위에서 꼿꼿했던 선비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김창숙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의 묘역은 오른편 언덕을 올라 다시 왼편으로 20여 미터, 또 다시 오른편으로 10미터 오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묘역의 풍경은 다른 독립선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김창숙이라는 조금은 여성스런 이름을 가진 심산 선생은 1879년 경북 성주의 유서 깊은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한 가풍에서 자라났다. 본관은 의성이고 호는 심산이다. 선생은 당시 명망이 높던 유학자 이종기와 곽종석의 문하에서 한학을 공부하여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아버지 김호림은 일찍이 개화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때도 이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서당에서 공부하고 있던 김창숙과 학동들을 불러내 농부들의 노고를 알아야 한다며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농사일을 돕도록 했다.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스승인 이승희와 함께 상경하여 을사5적의 처형을 요구하는 '청참오적소'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그 후 친일단체인 일진회를 성토하는 건의서를 냈다가 다시 체포되었다.

일본인 형사까지 감동시킨 학문과 인격

선생은 나이 31세이던 1910년 한일합방으로 국권이 상실되자 몇날며칠을 통곡하면서 울부짖었다고 한다. 낙담한 선생은 날마다 술에 취해 한동안 방랑하다가 홀연히 중국으로 건너갔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악랄한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

어느 날 일본경찰에 체포된 선생은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부산으로 압송되었다. 부산을 떠나 연고지인 대구로 다시 압송된 선생은 일제 경찰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이 때 선생은 경찰의 취조를 거절하며 한시 한수를 지었다. 그러나 한시를 이해하지 못한 일본인 담당형사는 다른 조선인에게 한시를 해석해줄 것을 부탁했다.

조선인을 통해 한시의 뜻을 이해한 일본인 형사는 피의자인 선생에게 '선생'이라 부르며 고문을 중지했다고 하는데 그 한시가 전해지지 않아 아쉽다. 재판이 시작되자 담당 일본인 판사도 선생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변호사 선임을 끝까지 거절했고, 결국 징역 14년형을 선고받고 대구에서 복역했다. 그러나 일경의 혹독한 고문으로 두 다리가 마비되자 형집행정지로 출옥했다.

불편한 몸으로 출옥한 선생은 일제의 창씨개명에 반대하는 등 항일 자세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1940년 모친상을 당하여 21년 만에 다시 고향땅을 밟았고 고향에 머물던 선생이 아들 김찬기를 상하이 임시정부에 비밀리에 보냈으나 곧 병으로 사망했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일컬어지는 심산 김창숙 선생은 대쪽 같은 꼿꼿한 성품으로 일제와 맞서 독립투쟁을 전개했으며, 불의와 독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1962년 3월 1일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고 그 해 5월 10일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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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독립운동가 #심산김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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