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인생에 한 개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면

발행일 2010.09.01. 00:00

수정일 2010.09.01. 00:00

디딤돌. ‘디디고 다닐 수 있게 드문드문 놓은 평평한 돌’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바탕이 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이 디딤돌만큼 요긴하고 고마운 것은 없다. 인생이 마냥 평탄한 길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현듯 앞길을 '턱~' 막는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빛나는 것이 디딤돌이다.

최근 서울시복지재단이 펼치고 있는 저소득 주민들의 든든한 디딤돌 사업이 각광받고 있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푸는 특별한 나눔 문화가 서서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8월 처음 시작할 때는 디딤돌 서비스 이용자가 2300명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4만명이 넘었다. 그만큼 어려운 이웃을 돕는 고마운 이들이 많이 늘었다는 얘기다. 그런 착한 사마리아인 같은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하는 주인공을 찾아가 보았다.

강서구 화곡동 대우 푸르지오 아파트 136동 앞에 있는 제플린 영어보습학원의 서인화(45) 원장. “아이가 지난해 여름방학 때부터 우리 학원에서 공부하는데 점차 성장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우리 학원 학습과정을 꾸준히 따라오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데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 학원에서 디딤돌 혜택을 받고 있는 여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생인 박영주(가명)로 어머니가 시각장애인이다. 비록 어머니가 앞을 못 보지만 이 학생은 낳아 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열심히 학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미래에는 어머니의 눈이 되어, 또 다른 디딤돌이 되어 자신이 받은 것 이상 갚겠다는 마음으로.

“저도 처음 복지관으로부터 소개받을 때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베푸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학생이 받아들이는 마음도 부담스러우므로 서로 상처받을 수 있지요. 그런데 이 학생은 그런 걱정 없이 명랑하고 밝은 모습으로 잘 다니고 있습니다.” 스스로 베푸는 것을 겸허하게 생각하는 서원장은 따스한 마음만큼 얼굴도 후덕한 모습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이.

서인화 원장이 이곳에 영어보습학원을 차린 지는 6년 되었다. 학원 이름을 제플린으로 정한 것은 젊은 시절 좋아했던 영국의 록밴드인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에서 따온 것. 레드 제플린은 대중매체에 노출을 많이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앨범 판매량과 콘서트 관객 동원 수로 세계적인 기록을 세운 밴드이다. 서원장 역시 자신의 선행을 주위에 자랑하지 않고 묵묵히 갈 길만 가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디딤돌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는 식당과 패스트푸드점 등 외식업체가 다수였지만 최근에는 제플린영어보습학원 같은 교육업체가 급증하고 있다. 이처럼 교육 서비스의 후원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 전반에 걸쳐 기부에 대한 인식이 향상됨과 함께 디딤돌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저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주변의 여러 사람이 받쳐주는 수많은 디딤돌을 딛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뭔가 불우한 이웃에게 미력하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사실 베푸는 즐거움도 없진 않지만 제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면서 오는 편안함이 더 크지요.” 서원장은 '디딤돌'에 참여하는 것을 기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행복한 나눔 문화가 적절하다고 귀띔한다.

서원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강서구보습학원연합회의 박재주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과 함께 틈틈이 봉사활동을 나간다. 그런데 장애인과 불우이웃을 돕는 봉사를 하다 자신이 가르치는 여학생과 가끔 만난다고 한다. “사실 처음 그 아이를 봤을 때 속으로 놀랐어요. 장애를 스스로 아는 아이가 누군가에게 진짜 돕는 방법을 아는 것임을 그때 느꼈지요. 나눔을 받은 아이가 베푸는 모습에 감동받았지요. 그 다음부터 저도 변하더군요.” 진정한 봉사 활동의 의미를 어느 순간 제자인 여학생에게서 배운 셈이다.

저녁 8시 늦은 시간임에도 또렷한 눈으로 수업을 듣는 여학생은 얼굴이 밝았다. 해맑은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눔 문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인지했다. 서인화 원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봉사 활동을 다니다 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선행을 하는 데 놀랐다고 했다. 그만큼 나눔 문화가 알게 모르게 정착하고 있다는 반가운 얘기다.

한편 강서구 등촌1동에서 신제일학원을 운영하는 이지은 원장도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막상 받아들이고 보니 새로운 정이 생기더군요”라며 디딤돌 역할에 뿌듯해 했다. 저소득 주민들을 위한 든든한 디딤돌 사업에 참여를 희망하는 업체는 서울시복지재단(2011-0437)에 문의하거나 ‘아름다운 이웃, 서울디딤돌’ 홈페이지(http://didimdol.welfare.seoul.kr)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