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속 백제, 얼마나 알고 계세요? 놀라운 흔적들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1.12.30. 10:40

수정일 2022.02.03. 13:22

조회 3,349

외국인들이 가장 기대하는 ‘서울비전 2030’ 정책 1위에 뽑혀

외국인 대상 ‘서울비전 2030’ 주요 사업 온라인 투표에서 ‘서울 백제역사유적지구 조성’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서울은 고대 백제의 수도인 한성이 터를 잡은 이후 조선의 수도 한양에 이르기까지 2,000년 넘게 우리나라의 중심 역할을 해온 도시다. ‘2,000년 역사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그 역사의 한 축이었던 ‘서울 백제역사유적지구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민대학 동남권 캠퍼스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백제문화의 이해 과정’을 수강했다. ⓒ이선미
서울시민대학 동남권 캠퍼스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백제문화의 이해 과정’을 수강했다. ⓒ이선미

필자는 강동구 상일동에 지난 4월 개관한 서울시민대학 동남권 캠퍼스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백제문화의 이해 과정’을 수강하면서 한성백제 시절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만날 수 있었다. 시민대학 내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소속 ‘전통문화교육원 서울학습관’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교육 수요에 맞춰 일반인을 대상으로 개설한 강의였다.
서울시민대학 동남권 캠퍼스 안에 있는 전통문화연구원 ⓒ이선미
서울시민대학 동남권 캠퍼스 안에 있는 전통문화연구원 ⓒ이선미

기원전 18년경부터 475년까지 백제는 지금의 서울에 자리했다. 그로부터 538년까지 웅진(공주) 시대에 이어 660년 사비(부여)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성 시절의 백제는 거의 500년에 가까운 흥망성쇠를 겪었는데 당시 5만 명이 살았던 백제의 위례성은 근대를 지나 최근까지도 정확하게 어딘지 규명이 되지 않고 있다. 짧은 강의였지만 잃어버린 왕국 백제를 개괄하기에는 충분했다. 

한성백제 500년을 지켜본 풍납토성

강의에서 ‘풍납’이라는 이름이 ‘바람드리’에서 왔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름에 맞게 바람이 정말 마구 불어댔다. 단풍이 막바지인 풍납토성 둘레길을 걸었다. 
토성 너머로 사선으로 건축된 아파트가 보인다. 도로 너머에도 앙각 때문에 사선 형태로 지은 건물이 있다. ⓒ이선미
토성 너머로 사선으로 건축된 아파트가 보인다. 도로 너머에도 앙각 때문에 사선 형태로 지은 건물이 있다. ⓒ이선미

최근 김포 장릉 주변의 아파트 건축 문제가 불거지면서 비교 사례로 뉴스에 오르내린 씨티극동아파트가 눈길을 끌었다. 문화재 보호구역 내에 있는 건축물은 경관 보호를 위해 경계 지표면에서 문화재 높이를 기준으로 앙각(올려다 보는 각) 27도 이내로 한정돼 있는데, 이 조건을 맞추느라 사선 모양으로 지어진 아파트다.
풍납토성 경관 보호를 위해 사선 모양으로 지어진 씨티극동아파트 ⓒ이선미
풍납토성 경관 보호를 위해 사선 모양으로 지어진 씨티극동아파트 ⓒ이선미

풍납동은 2019년 서울형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 후보지로 선정돼 주민들과 더불어 ‘지붕없는 박물관’을 만드는 중이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흔적은 없지만 골목 여기저기에 토성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양 옆 길이 내리막인 지점 역시 성의 윗부분이었음을 유추하게 했다.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와당 무늬 블럭을 깐 인도가 멋있다. ⓒ이선미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와당 무늬 블럭을 깐 인도가 멋있다. ⓒ이선미

경당지구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대홍수로 토성 일부가 무너지면서 중요 유물이 발견된 곳이다. 1998년에도 경당연립 재건축 부지에서 신전으로 추정되는 중요한 유구가 발견됐다. 
한 참여자가 풍납토성 경당지구 안내문을 살펴보고 있다. ⓒ이선미
한 참여자가 풍납토성 경당지구 안내문을 살펴보고 있다. ⓒ이선미

한성백제 시절 동서남북으로 나있던 도로와 건물지 등이 발굴된 ‘풍납 백제문화공원’에는 아담한 ‘백제살림집’도 들어서 있다. 아파트들 사이에 조성한 작은 공원에 유적과 풍납토성에 대한 여러 안내들이 배치돼 있었다.
풍납 백제문화공원에는 당시 동서로 낸 도로와 건물지 등이 발굴됐다. ⓒ이선미
풍납 백제문화공원에는 당시 동서로 낸 도로와 건물지 등이 발굴됐다. ⓒ이선미

풍납토성 서성벽 구간은 현재 유적 보존 정비를 위한 학술조사연구가 진행중이다. 풍납토성 발굴 초기부터 참여한 교수와 동행해 현장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발굴이 이어지고 있는 토성의 내부 현장은 놀라웠다. 
자칫 땅속에 묻혀 있었을 풍납토성 서성벽 구간이 드러나고 있다. ⓒ이선미
자칫 땅속에 묻혀 있었을 풍납토성 서성벽 구간이 드러나고 있다. ⓒ이선미

풍납토성은 판축구조물이라고 부르는 사각형 틀에 일정한 두께의 흙을 교대로 쌓아 올려 다지는 판축기법으로 조성했다. 그렇게 켜켜이 다져진 성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이런 성벽이 거의 3.5km길이의 타원형으로 축조돼 한성백제를 지켜온 것이다.
풍납토성 발굴에 처음부터 기여한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가 서성벽 발굴에 대해 안내하고 있다. ⓒ이선미
풍납토성 발굴에 기여한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가 서성벽 발굴에 대해 안내하고 있다. ⓒ이선미
남성벽 전망대에 올라가면 주변을 환히 조망할 수 있다. ⓒ이선미
남성벽 전망대에 올라가면 주변을 환히 조망할 수 있다. ⓒ이선미

한성백제 시절 별궁으로 추정되는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 안에 있다. 자연 구릉 끝자락이어서 산성이라고도 불린다. 워낙 세월이 많이 지난데다 제대로 발굴되지도 못한 까닭에 여전히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풍납토성이 정궁이자 왕성이었고, 몽촌토성은 유사시를 위한 것이었다는 추정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몽촌토성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백제 임금이 일본에 준 칠지도가 그려져 있다. ⓒ이선미
몽촌토성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백제 임금이 일본에 준 칠지도가 그려져 있다. ⓒ이선미

도심 한복판에 이런 무덤이…석촌동 고분군

일제강점기 기록에 보면 석촌동 일대에 300기 가까운 무덤이 산재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무덤은 8기뿐이다. 

석촌동 고분군에서 가장 장엄한 3호 무덤은 안팎을 모두 돌로 쌓은 돌무지무덤이다. 2호와 4호는 내부를 흙으로 채워 백제식으로 구분된다. 이곳에선 크고 놀라운 무덤 말고도 땅을 파서 만든 움무덤도 발굴됐다. 사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돌무덤을 처음 보았다. 페르시아 옛 무덤은 알고 있었으면서 고구려식 돌무지무덤이 서울에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부끄러웠다.
높이 550m 롯데월드타워와 고대 왕국 백제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돌무덤이 함께하는 석촌동 고분군 ⓒ이선미
높이 550m 롯데월드타워와 고대 왕국 백제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돌무덤이 함께하는 석촌동 고분군 ⓒ이선미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조성되면 수십만 점의 유물이 출토된 ‘지붕 없는 살아있는 백제 박물관’인 이 지역에 문화재와 주민들이 함께 발전하는 시설들이 새롭게 들어서게 될 것이다. 더불어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충북·전남 일대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확장 등재도 추진하고 있다. 
석촌동 고분군에서 다양한 무덤이 발굴됐다. ⓒ이선미
석촌동 고분군에서 다양한 무덤이 발굴됐다. ⓒ이선미

외국인들도 관심을 갖고 기대하는 풍납토성 일대 ‘서울 백제역사유적지구 조성’인데, 서울시민으로서 아는 게 너무 없어 부끄러웠다.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정궁이었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알았다. 덕분에 ‘글로벌 도시’ 서울시민으로서 우리 땅의 역사와 찬란한 백제 역사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됐다.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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