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고고학자'가 되어보는 시간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1.12.17. 09:00

수정일 2021.12.17. 14:07

조회 337

감정서가의 ‘프로젝트 사서함-감정의 고고학’ 참여기

감정서가에 들어서니 ‘문장의 수도원’ 혹은 ‘산사의 선방’ 같았다. 확실히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는 고요해져야 할 것만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던가. 그만큼 어렵지만 또 중요한 것이 마음을 만나는 일이다. 쉽지 않은 이 작업을 함께 해보고자 문을 연 곳이 서울예술교육센터 1층의 감정서가다.
용산구 서울예술교육센터 1층에 자리한 감정서가 ⓒ이선미
용산구 서울예술교육센터 1층에 자리한 감정서가 ⓒ이선미
고요한 수도원 같은 인상을 준 감정서가 내부 ⓒ이선미
고요한 수도원 같은 인상을 준 감정서가 내부 ⓒ이선미

감정서가는 ‘감정’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내면을 돌아보고 타인의 감정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문장’과 ‘책장’이 있다. 문장(文張)에는 누군가의 마음을 손글씨로 쓴 감정카드가 있어 원탁에 앉아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한 자 한 자 새겨보거나, 준비된 감정카드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볼 수도 있다.
누군가의 문장들이 기다리는 공간 ‘문장’ ⓒ이선미
누군가의 문장들이 기다리는 공간 ‘문장’ ⓒ이선미
원탁에 앉아 누군가의 문장을 필사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카드에 옮겨볼 수 있다. ⓒ이선미
원탁에 앉아 누군가의 문장을 필사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카드에 옮겨볼 수 있다. ⓒ이선미

무엇보다 감정서가에서는 지켜야 할 자세가 있다. ‘고요, 몰입, 정돈하다, 소중하다’라는 단어로 표기된 ‘지켜주세요’에는 그 단어들이 가리키는 의미들이 펼쳐져 있다. 내 감정을 들여다보기와 타인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기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감정서가의 ‘지켜주세요’ 안내문 ⓒ이선미
감정서가의 ‘지켜주세요’ 안내문 ⓒ이선미

'책장(冊欌)' 코너는 감정서가의 워크숍을 통해 세상에 태어난 누군가의 책들을 만나는 공간이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다른 형태로 세상에 태어나 독자를 기다린다. 인근 직장에 다니는 시민들이 책을 펼쳐보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런 결과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세상에 하나뿐인 책들이 모여 있는 감정서가의 ‘책장’ ⓒ이선미
세상에 하나뿐인 책들이 모여 있는 감정서가의 ‘책장’ ⓒ이선미

“마음을 써본다는 거, 독특하고 좋네요.”
천천히 대답이 돌아왔다.
“혹시 기회가 되면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세요?”
기자의 질문에 뜻밖의 반응이 터졌다.
“아무나 다 해주는 게 아니에요?”
무척 실망한 표정이었다. 필자 역시 감정서가 인스타그램에서 ‘감정출판 워크숍’을 보고 신청해봤지만 선택되지 못했다. 김소연 시인의 팬이어서 더 아쉬웠던 마음을 덩달아 털어놨다. “그러게요. 신청자가 많아서 소수만 선정하는 걸로 알아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이선미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이선미

감정서가의 2층은 ‘작업의 감(感)’을 비롯한 워크숍이 진행되는 공간이다. 감정출판을 위한 제책 작업을 하는 편집실도 있다. 공동의 공간도 있고 호젓하게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자리도 있다. 고요하게, 가장 깊이 침잠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감정서가 2층의 공간들, 워크숍 등이 진행된다. ⓒ이선미
감정서가 2층에서는 워크숍 등이 진행된다. ⓒ이선미

‘사서함-감정의 고고학’…자신의 내면과 감정의 콜라주

필자는 1,500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예술 프로젝트 ‘사서함-감정의 고고학’을 신청했다. 한참을 기다려 작업을 위한 키트를 받았다. 콜라주 노트와 수십 장의 흑백 이미지들, 감정 낱말카드, 가위, 풀 등으로 구성된 키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고학이었다. 처음엔 정말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영상을 보고 매뉴얼을 정독하고야 겨우 준비물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마음의 고고학은 준비부터 고난이도였다. 
‘사서함-감정의 고고학’ 키트는 콜라주 노트와 수십 장의 흑백 이미지들, 감정 낱말카드, 가위, 풀 등으로 구성됐다. ⓒ이선미
‘사서함-감정의 고고학’ 키트는 콜라주 노트와 수십 장의 흑백 이미지들, 감정 낱말카드, 가위, 풀 등으로 구성됐다. ⓒ이선미

매뉴얼에는 총 소요 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라고 써있지만, 필자는 준비하는 데만 그 정도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고고학은 <감정의 고고학>, <이미지의 고고학>, <이야기의 고고학> 순으로 진행되는데 순서를 바꿔도 무방하다. 

<감정의 고고학>은 ‘나를 구성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찾는 과정이다. 100개의 칸에 갈망, 공감, 두려움, 사랑, 슬픔, 고요 등의 감정을 채워 넣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를 구성하는, 내 안에 있는, 나를 표현하는 감정들을 찾아가는 미로와 같았다. 다음엔 마음에 담겨있는 문장을 찾아보고 그 단어와 문장을 조합해 콜라주 시를 완성한다.
'감정의 고고학'은 나를 구성하는 ‘감정’들을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선미
'감정의 고고학'은 나를 구성하는 ‘감정’들을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선미

<이미지의 고고학>은 제시된 흑백사진 가운데 마음을 이끄는 사진을 고르고 원하는 이미지를 오려 종이에 붙여 콜라주한다. 이 과정을 통해 감정의 고고학에서 채집한 문장이나 콜라주 시를 필사하거나 이미지의 고고학 콜라주 그림에서 연상하는 이야기들을 채우고, 다시 새롭게 조합해보게 된다. 
많은 흑백그림 가운데 마음을 끄는 이미지를 오려 콜라주하며 '이미지의 고고학'을 진행한다. ⓒ이선미
많은 흑백그림 가운데 마음을 끄는 이미지를 오려 콜라주하며 '이미지의 고고학'을 진행한다. ⓒ이선미
'이야기의 고고학'을 돕기 위해 제시된 자료들 ⓒ이선미
'이야기의 고고학'을 돕기 위해 제시된 자료들 ⓒ이선미

‘나’를 연구하는 고고학의 시간은 일상의 작은 자극이 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감정서가는 회수한 참여자들의 고고학 결과물을 ‘2021 감정백과사전(가칭)’으로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콜라주 시작 워크숍에 참여한 시민들의 작품 ⓒ이선미
콜라주 시작 워크숍에 참여한 시민들의 작품 ⓒ이선미
감정서가에서는 여러 색의 잉크로 감정카드를 쓸 수 있도록 만년필을 대여해준다. ⓒ이선미
감정서가에서는 여러 색의 잉크로 감정카드를 쓸 수 있도록 만년필을 대여해준다. ⓒ이선미

감정서가에서는 시민들이 감정과 내면을 탐색해볼 수 있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숨가쁘게 생활하다가 어느 날 문득,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감정서가에 들러 방법을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 

감정서가

○ 주소: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7, 센트럴파크타워 1층
○ 운영시간 : 매주 화~토요일 11:00~19:00 (일·월·공휴일 휴관)
○ 감정서가 방문 예약하기(네이버 예약) : https://bit.ly/2YvoM3o
○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gamjungseoga
○ 문의 : 02-3785-3199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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