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이면 문이 열린다 ‘제헌회관’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19.07.17. 15:33

수정일 2019.07.17. 17:58

조회 3,832

철제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헌회관이 나온다

철제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헌회관이 나온다

경복궁 서촌을 지나가다 보면 검은 철제문을 하나 만날 수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담한 기와집이 있다.

굳게 닫혀 있던 이 집의 철제문은 매주 금요일마다 열린다. 이 집은 ‘제헌회관’이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제헌동지회’라고 쓰인 한옥 대문을 만난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치하로부터 벗어나 해방을 맞이했건만 그 기쁨은 잠시였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되었다.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치렀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참여한 최초의 민주적 선거였다. 여기서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1950년까지 2년 간 대한민국을 운영하기 위한 헌법을 비롯한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마당에서 바라본 제헌회관 전시실 입구

마당에서 바라본 제헌회관 전시실 입구

제헌회관은 제헌국회의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역사적 공간이다. 두 개의 방을 네 부분으로 나눠서 전시실로 구성했다. 왼쪽부터 벽면을 따라가면 제헌국회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제헌국회 소개와 5.10 총선거’, ‘제헌국회 개원식’, ‘제헌국회 입법활동’, ‘제헌국회의원 유품’을 주제로 하고 있다.

입구로 들어가는 중앙의 뒷면에 제헌헌법 전문이 있다.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는 문장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위상을 드러내고 있다.

제헌국회 주요일지가 연도별로 잘 정리돼 있다

제헌국회 주요일지가 연도별로 잘 정리돼 있다

먼저 제헌국회 주요일지가 연도별로 간략히 제시되어 있다.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의원 선거부터 1950년 6월 2일 제헌국회 폐회식까지 굵직한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다. 1948년 7월 17일이 대한민국 헌법을 공표한 날이다. 국가에서 7월 17일을 ‘제헌절’로 기념하고 있다. 제헌회관 직원은 제헌국회 주요일지만 보면 전시실을 다 둘러본 것과 같다고 했다.

5.10 총선거에서 투표하는 청년

5.10 총선거에서 투표하는 청년

5.10 총선거에서 투표하는 한복 차림을 한 청년의 얼굴 표정이 진지하다. 주권을 행사하면서 비로소 독립된 국가의 국민으로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5.10 총선거에서 최초의 여성의원으로 임영신이 당선되었다. 이때만 해도 남녀차별이 심했다. 상공부장관으로 발탁된 그녀를 두고 상공부 간부들의 반발이 있자 “나는 조국 독립과 건국을 위해 남자들 이상으로 노력했다”라고 당당히 맞섰다고 한다.

제헌헌법의 기본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실

제헌헌법의 기본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실

제헌헌법의 기본정신에서 보면 헌법 제1조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표기했다. 우리나라의 국호와 정치체제를 정의한 문구다. 당시 국회의원들 사이에 국호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한국’, ‘고려공화국’, ‘조선’ 등 다양한 국호가 제시되었다. 결과는 ‘대한민국’으로 귀결되었다. 또한 헌법 제51조를 “대통령은 행정권의 수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라고 했다. 제헌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의 독재가능성을 우려해서 내각책임제 요소를 도입했다. 대통령의 권한사항을 의결하는 국무원과 국무총리의 존재,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이 대표적이다.

제헌국회 주요 입법활동을 살펴보면 반민족행위처벌법, 농지개혁법, 국회법, 한글전용에 관한 법이 있다. 8.15 해방 이전 반민족행위 즉 친일행위를 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했다. 당시 이 법이 제대로 시행되었더라면 7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친일파 청산 문제가 대두되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 당시 남한 농가의 86%가 소작농이었는데 농지개혁법의 시행으로 소작제도를 폐지하고 자작농 제도를 정착시키는데 기여했다.

정면에 제헌국회의워들의 단체사진이 보인다

정면에 제헌국회의워들의 단체사진이 보인다

1948년 당시 서울 시내에 마차버스와 전차가 다녔다. 제헌국회의원들이 출퇴근하면서 자주 이용했던 교통수단이다. 물론 지금은 둘 다 자취를 감추었다. 그 외에 제헌국회의원이 생전에 사용했던 유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출구로 나가는 정면에 제헌국회의원들의 단체사진이 걸려 있다. 흑백사진 속 국회의원들의 얼굴 표정은 하나같이 근엄해 보인다. 그때만 해도 사진을 촬영하는 게 지금처럼 흔하지 않은 탓에 긴장하고 카메라 앞에 섰을 것이다.

제헌회관 내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오니 가운데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담벼락 아래 푸르른 나무들이 지나간 세월을 품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의 헌법이 있기까지 기초가 되었던 게 제헌헌법이다. 제헌절을 맞이하여 제헌회관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헌헌법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 제헌회관 안내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26

○교통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300m 직진, 우리은행 효자동지점 건너편

○개방시간 :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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