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3.1운동 발자취'를 따라서…

시민기자 박칠성

발행일 2022.03.03. 09:00

수정일 2022.12.26. 15:00

조회 7,515

3.1독립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한 항일 역사 유적지 7곳 탐방기
3.1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유적지 7곳을 찾아가는 길 안내도
3.1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유적지 7곳을 찾아가는 길 안내도 ©박칠성

3.1 독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유적지

103주년 3.1절을 맞아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운동인 3.1독립만세운동(이하 3.1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유적지 7곳을 찾았다. 

항일 유적지 탐방은 보신각( 3.1운동 중심지) ▶보성사 터(3.1독립선언서 인쇄소) ▶중앙고등학교(2.8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 장소) ▶천도교 중앙대교당(3.1독립만세운동자금 마련 장소) ▶태화빌딩 앞 3.1독립선언광장(3.1독립선언서 낭독) ▶탑골공원(3.1운동을 이끌어 낸 곳) ▶덕수궁 대한문(3.1운동 발상지) 순으로 방문했다. 종로구 7곳에 위치한 유적지를 카카오맵에서 대충 가늠해본 거리는 6.5km. 차분하게 둘러보아도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소요되는 편안한 산책로로 필자는 도보로 다녀왔다. 
보신각 앞 3.1독립운동기념터 표지석. 한성정부를 선포한 곳이기도 하다.
보신각 앞 3.1독립운동기념터 표지석. 한성정부를 선포한 곳이기도 하다. ©박칠성

1. 3.1독립운동의 중심지인 보신각 앞 터

역사 탐방 순회의 첫 시작점인 보신각 앞터는 지하철 1호선 종각역 4번 출구에서 올라서면 바로 보인다.  보신각의 종루는 매년 송년과 새해맞이 타종을 하는 곳으로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1396년 태종 때 인사동에서 현 위치로 옮겨졌으며, 1895년 고종이 보신각으로 명명했다. 현재 걸려 있는 종은 1985년 제작되었고, 그 전 동종은 보물 2호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보신각 앞에 세워진 3.1독립운동기념터 표지석에는 이곳이 1919년 3.1운동의 중심지로 4.23국민대회를 개최하고 한성정부를 선포한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919년 3월 1일 시위 군중 대표가 타종을 하기 시작하여 서울지역 3.1운동에 불길을 당긴 역사적인 장소다.
독립선언문을 인쇄했던 보성사 터의 기념탑
독립선언문을 인쇄했던 보성사 터의 기념탑 ©박칠성
기념탑을 세운 이유를 설명해 놓은 표지석
기념탑을 세운 이유를 설명해 놓은 표지석 ©박칠성

2.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인쇄한 보성사

두 번째 찾은 곳은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인쇄한 천도교의 인쇄소 보성사가 있었던 곳이다. 당시 보성사의 사장이던 독립운동가 이종일은 비밀리에 이곳에서 3.1독립선언문 3만 5천여 부를 인쇄하였고, 우리나라 전역에 뿌려졌다고 한다. 현재는 아담하게 꾸민 근린공원으로 조성되었는데 독립운동가 이종일의 동상과 독립선언문이 기록된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중앙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숙직실이었던 삼일기념관(三一記念館)은 3.1운동의 마중물이 된 곳이다.
중앙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숙직실이었던 삼일기념관(三一記念館)은 3.1운동의 마중물이 된 곳이다. ©박칠성

3. 3.1운동을 계획했던 중앙고등학교 숙직실, 삼일기념관

세 번째로 방문한 장소는 북촌 계동에 위치한 중앙고등학교의 숙직실이던 삼일기념관(三一記念館)이다. 이곳에서 1919년 1월 교사와 학생들이 2.8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했으며, 독립운동가들이 3.1운동을 계획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코로나19 방역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경비실에서 CCTV화면을 통해 기념관 전경 모습을 촬영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36호로 등록된 천도교 중앙대교당 전경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36호로 등록된 천도교 중앙대교당 전경 ©박칠성

4. 건축비를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한 천도교 중앙대교당

네 번째 방문지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36호로 등록된 천도교 중앙대교당이다. 1918년 4월 건축 공사를 시작했고, 1919년 3.1운동의 중심 단체로 활동하면서 건축비 일부를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방문한 2월 28일, 정문에는 103주년 3.1기념식이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의암 손병희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 3.1절 전야제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나무와 돌로 우리민족의 기상을 표현한 작은 동산 모습
나무와 돌로 우리민족의 기상을 표현한 작은 동산 모습 ©박칠성
3.1독립선언광장의 물길 조형물
3.1독립선언광장의 물길 조형물 ©박칠성

5. 3.1독립선언식 장소, 삼일독립선언광장

다섯 번째 방문한 곳은 종로구 인사동의 옛 태화관 터로 지금은 태화빌딩이 세워진 자리다. 이곳에는 ‘삼일독립선언유적지’라는 표지석이 있는데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식을 가진 곳이다. 서울시는 이곳에 3.1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3.1독립선언광장을 조성해 놓았다. 오래도록 우리 겨레의 기상을 상징해온 소나무 세 그루와 우리 공동체를 나타내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어 작은 동산을 조성했다. 또한 광장 바닥에는 백두산, 한라산, 서울 종로, 베이징, 하얼빈, 사할린, 쿠바, 카자흐스탄, 오키나와, 훗가이도 등 10곳의 자연석으로 국내외로 퍼져 나간 독립 염원과 독립운동을 표현한 독립돌 10개를 띄엄띄엄 놓았다. 여기에 산천 곳곳에서 모아 온 물이 흐르도록 물길을 조성해 놓았다.
3.1운동의 시발점이 된 탑골공원 전경
3.1운동의 시발점이 된 탑골공원 전경 ©박칠성

6~7. 3.1운동이 시작된 탑골공원과 덕수궁 대한문

여섯 번째 방문지는 탑골공원이다. 원각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빈 터가 된 곳을 공원으로 조성했다. 서울 최초의 근대 공원이며 사적 제354호이다. 기존 파고다공원이라는 명칭은 1992년 5월 28일 탑골공원으로 개칭되었다. 이곳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이후 공원을 나가 덕수궁 대한문으로 향하면서 3.1 운동을 벌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시민이 주도한 시민운동으로 3.1운동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일곱 번째로 방문한 덕수궁 대한문은 지금도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덕수궁의 정문이다. 이곳에서 거행된 고종의 국장을 치르기 위해 상경한 민중들은 고종 독살설로 일본에 대한 민족적 증오감이 격화된 상태였다. 여기에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의 민중이 대한문으로 이동하여 함께 수십만 인파가 모이게 되었고, 본격적인 3.1운동이 시작되었다. 장례 기간인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가 선포되었고, 3.1 운동이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게 한 역사적 장소가 되었다. 

3월이 다 가기 전 우리의 아픈 역사와 자랑스러움이 묻어나는 항일 역사 유적지를 탐방해 보기를 추천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애쓴 독립운동가들의 용기와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이며, 다시는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는 길일 것이다.

시민기자 박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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