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계속 바라봐야 하는 역사의 현장 ‘경교장’
정명섭
발행일 2018.12.24. 15:47
정동사거리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강북삼성병원 안에는 특별한 보물이 하나 숨어있다. 모던하고 깔끔하면서 고풍스러운 서양식 저택으로 한때는 ‘죽첨정’으로 불렸다가 ‘경교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국무회의가 열렸던 곳이며, 남북 화해를 위해 애를 쓰던 김구 주석이 암살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 근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저택은 1938년, 조선일보를 인수한 방응모와 더불어서 조선의 2대 금광왕으로 불리는 최창학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 갑자기 돈을 모으게 된 조선인 갑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양식 저택을 지어서 자신의 부를 뽐냈다. 그 중 한명인 최창학 역시 마찬가지로 정동이 내려다보이는 죽첨정의 언덕 위에 보란 듯이 서양식 주택인 죽첨장을 세웠다. 저택이 세워진 자리는 서대문이라고도 불리는 돈의문이 있다가 허물어진 곳이다. 조선의 흔적을 지운 자리에 서구와 근대의 상징인 저택을 지은 것이다.
그러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찾아오자 친일행각을 벌였던 최창학은 재빨리 귀국하는 임시정부에 죽첨장을 기증했다. 임시정부를 이끌고 돌아온 김구 주석은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명칭을 버리고 경교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근처에 있던 경구교, 혹은 경교라는 다리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30년대는 모더니즘 열풍이 불었던 시기라 앞선 시대에 지어진 벽수 산장 같은 저택과는 달리 깔끔하고 담백한 형태로 지어졌다. 지붕이 있는 출입문의 좌우에 활처럼 볼록 튀어나온 보우 윈도우 정도가 눈에 띈다. 내부는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나눠져 있는데 현재 전시관으로 꾸며져서 일반에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 놓고 들어가도 된다. 단, 신발은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한다.
전시관 안에 들어가면 경교장을 소개하는 영상을 잠깐 보도록 되어 있다. 영상을 보는 장소는 죽첨정 시절 썬룸이었다. 1층은 식당과 응접실이 있었는데 임시정부가 귀국한 이후 접견실과 회의실로 사용했다. 1층에 있는 식당에는 지하의 주방에서 음식을 올리는 덤웨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지하 1층은 저택의 고용인들이 머물던 숙소와 주방 등이 있는데 현재는 김구 주석의 데드 마스크와 임시정부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2층에 올라가면 깜짝 놀랄 것이다. 2층은 다다미가 깔려있는 일본식 주택의 내부 형태이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화양절충식 건축 양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2층 창가에는 김구 주석이 쓰던 책상과 의자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암살범 안두희가 쏜 총탄에 맞아서 유리창이 금이 간 흔적도 복원되어 있다. 병원에 둘러싸인 탓인지 이곳을 둘러보고 나면 늘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바라봐야 하는 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진정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 경교장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강북삼성병원 |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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