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주민이 함께 만드는 '마을결혼식'

시민기자 김영옥

발행일 2016.05.10. 13:32

수정일 2016.05.10. 16:14

조회 3,902

결혼식이 치뤄질 하모니가 있는 집 정원

결혼식이 치뤄질 하모니가 있는 집 정원

성북구 정릉교수단지를 찾아 가는 길은 늘 행복하다. 이곳은 아름답게 정원을 가꾼 주민들이 2014년부터 봄과 가을 자신의 집 대문을 활짝 열고 아름다운 정원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정원페스티벌을 여는 곳이다. 제 계절을 담은 예쁘고 빛깔 고운 꽃들이 가득한 정원은 늘 설레는 마음을 갖게 한다.

얼마 전, 정릉교수단지로부터 행복한 소식이 한 자락 들려왔다. 4월의 어느 햇살 좋은 토요일 정릉마을의 처자와 상월곡동 삼태기마을의 총각이 정릉교수단지 정원에서 마을결혼식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어머나, 도심 속에서 마을결혼식이라니…게다가 그 예쁜 교수단지 정원에서란 말이지!’ 덩달아 행복해지는 상상에 날짜까지 꼽게 됐다.

정릉마을 정원결혼식이 열리는 골목 입구

정릉마을 정원결혼식이 열리는 골목 입구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 입구에서 조선왕릉 정릉 바로 옆에 있는 정릉교수단지로 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마을버스는 조선왕릉 정릉 입구를 향해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장 밑 양쪽으로 꽃길이 만들어진 교수단지 골목길이 왼편에 보이고 ‘정릉마을 정원결혼식’이란 안내 현수막이 보였다. 꽃길을 따라 올라가자 왼쪽 담장엔 종이꽃 장식이 걸렸고, 오른쪽 담장엔 흑백 결혼사진 10여 개가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다.

종이꽃 장식(좌), 주민들의 흑백 결혼사진(우)

종이꽃 장식(좌), 주민들의 흑백 결혼사진(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신랑신부를 위해 교수단지 주민들이 2,30년 전 자신들의 결혼식 사진을 기꺼이 골목길에 전시하도록 내줬다고 한다. 정릉교수단지 정원은 각기 예쁜 이름을 갖고 있고 그 이름을 새긴 정원 문패를 대문에 걸어 놓는다. 정원이 넓고 아름다운 ‘하모니가 있는 집’ 정원이 오늘 결혼식 장소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고 대문 위엔 ‘연희&수만 마을결혼식’이란 작은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이미 정원 안엔 하객들이 가득하다.

신랑신부의 이름이 적힌 결혼식 현수막

신랑신부의 이름이 적힌 결혼식 현수막

소박한 정원 결혼식이 이젠 마을에서 가능하다

무지갯빛 천이 옥상에서부터 내리 걸리고, ‘나는 그대가 여인인 줄만 알고 살았는데 꽃이었구나. 눈부신 꽃이었구나’ 라는 글귀가 흰 천에 수 놓여 다른 편에 걸려 있다. 노란 황매화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보랏빛 라일락에, 주홍빛 영산홍은 정원의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했다. 정원엔 키 작은 들꽃이 가장자리에 가득했고, 사다리모양의 나무 장식 위로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고, 신랑신부가 설 자리엔 노란 장미 꽃잎이 흩뿌려져 있었다.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샹들리에 대신 어느 때보다 밝은 4월의 태양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결혼식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는 현수막

결혼식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는 현수막

신랑신부의 양가 부모님이 자리를 잡고 음악에 맞춰 이 날의 주인공들이 나란히 대문을 통해 정원으로 입장했다. 예를 다해 부모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한 신랑신부는 평소 그들의 신념과 결연한 의지가 묻어난 결혼서약서를 함께 낭독했다.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하객들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하객들

‘각자가 가진 가치관 정치적 성향, 종교를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폭력에도 반대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차별도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지속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언제나 소통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 각자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겠습니다.’

결혼서약서의 내용들은 다른 결혼식의 서약서 내용과 사뭇 달랐다. 두 사람이 이제 막 삶을 함께 시작하면서 그들이 삶의 지표로 삼는 가치가 어떤 것들인지를 보여 주는 멋진 서약서였다.

신랑신부가 정원으로 입장하고 있다

신랑신부가 정원으로 입장하고 있다

반지도 서로 끼워주고 그들을 아끼는 지인의 축가도 이어졌다. 동네 구의원 목소영씨는 사회를 봤고, 성북구 사회적기업 아트버스킹의 김경서대표는 약 30분가량 웨딩토크를 진행했다. 신랑신부의 어머님들을 모시고 키우면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각자 자신의 아들과 딸에 대한 장점, 앞으로의 덕담 등을 주고받는 화기애애한 시간 속에 편안한 정원결혼식이 진행됐다. ‘이런 멋진 결혼식 처음 봐요’, ‘행복하게 잘 사세요.’ 등 하객들의 훈훈한 메모도 공개됐다. 신랑은 셀프 축가를 부르고 정릉마을 정원결혼식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정원을 기꺼이 공개해 준 ‘하모니가 있는 집’, ‘도도화’, ‘행복한 뜰’의 정원 주인들과 마을 주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것이 마을의 힘이구나, 주민들의 힘이구나!”

“두 분 다 성북 안에서 마을활동을 하는 활동가셨어요. 결혼을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지난 해 가을 결혼식장은 정했는지 물어 봤죠. 그랬더니 아직 안 정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년 봄 교수단지에 꽃이 만발할 때 정원결혼식을 올리면 어떠냐고 제안을 했죠. 그랬더니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러잖아도 틀에 박힌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다면서요.”

정릉마실 김경숙대표는 정릉교수단지에서 서로 이웃한 3개 정원, 하모니가 있는 집(방수자 씨)과 행복한 뜰(방소윤 씨)의 정원, 자신의 정원을 공개해 정원결혼식을 준비해 주기로 했다. 자신의 정원을 열어 마을결혼식을 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한 주민들의 마음씀씀이가 예사롭지 않았다. 정릉마실 김경숙대표는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예쁜 시구를 흰 천에 한 땀 한 땀 놓아 결혼식 당일 정원 한 쪽에 걸어 결혼식의 의미를 더했다.

신부 어머니가 직접 만든 피로연 음식

신부 어머니가 직접 만든 피로연 음식

정원이 넓은 ‘하모니가 있는 집’ 정원은 예식 장소와 피로연 장소로, 바로 앞집인 ‘행복한 뜰’ 정원은 음식이 차려진 피로연 장소로, 하모니가 있는 집의 바로 윗집 ‘도도화’의 정원은 다양한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목련 나무 아래서 분위기 있게 차를 마실 수 있는 장소가 됐다.

하객들을 위해 정원을 공개하는 것은 물론 화장실도 공개했다. 주민들은 결혼식을 앞두고 결혼식에 맞게 더 풍성하고 어여쁜 정원을 만들기 위해 안개꽃과 흰 꽃들을 사다 심는가 하면 결혼식 당일 마을 주민들과 함께 부추전을 만들어 하객들에게 대접하기도 했다.

하객에게 인사하는 신부와 전을 부치는 마을주민들

하객에게 인사하는 신부와 전을 부치는 마을주민들

“아름다운 정원을 혼자 보는 것보다 오픈해서 많은 사람들이 같이 보면 좋잖아요.”(방수자 씨)

“제가 가꾼 정원이 결혼식 피로연 장소가 된다는 것은 제가 더 기분 좋은 일이죠."(방소윤 씨)

“다른 건 없어요. 이런 계기로 정릉교수단지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해요.”(김경숙 정릉마실 대표)

자신의 정원을 내어준 주민들

자신의 정원을 내어준 주민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양가 부모님들은 정원을 공개한 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정원에서 결혼식을 하겠다고는 했지만 상상이 잘 안됐거든요. 그런데 하나하나 채워지더라구요. ‘이것이 마을의 힘이구나, 주민들의 힘이구나’ 싶었습니다. 너무 감사하게 누리고 있어요. 앞으로 살면서 다 갚아야죠.” 신부 최연희 씨가 결혼식을 마친 후 소감을 전했다.

정릉교수단지 주민들은 정원을 열었고, 신랑과 신부의 지인들은 현수막 디자인을 맡았다. 부케와 가족들의 코사지, 무대를 장식한 작은 꽃 화분들은 마을의 화원 꽃향기에서 만들어 주었다. 신부 머리 위의 화관은 교수단지 박영아씨가 만들었고, 아리랑시장 상인회장의 안내로 시장에서 결혼식 하객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맞췄다. 신부 어머님도 잡채와 김치 등 하객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손수 만들었고, 신랑 어머님은 답례품으로 준비한 효소차를 쌀 손수건에 예쁜 자수를 놓아 준비했다. 청수도서관에서는 흰 의자를, 정릉도서관에서는 문구들을, 음향장비는 마을예술창작소 감성달빛에서 공수됐다. 정말 많은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마음을 보탰다.

결혼식을 마치고 둘러앉아 담소 중인 주민들

결혼식을 마치고 둘러앉아 담소 중인 주민들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난 후, 교수단지 주민들은 도도화의 정원 목련나무 아래에 모여 골목길에 걸렸던 자신들의 그 옛날의 결혼사진을 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릉교수단지 정원결혼식을 끝낸 소감도 이어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 창문 열고 날씨부터 봤잖아요. 비 오면 어쩌나 하구….”, “전, 제가 다 설레던 걸요. 딸 시집보내는 심정 같았어요.”, “마을에서 정원결혼식도 하고 우리도 리마인드 결혼식 한 번씩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신랑신부가 인복이 많은가 봐요. 주변 사람들이 솔선해서 더 열심히 하더라구요.”, “날씨도 좋고 꽃도 많이 피고 정말 다 좋았어요.”

정릉교수단지 주민들은 자신들의 정원에서 마을결혼식을 치르면서 오늘 기분 좋은 추억을 하나 또 갖게 됐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찍은 결혼사진

마을사람들과 함께 찍은 결혼사진

■ 정릉교수단지는...

정릉교수단지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교수단지 옆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정릉 주변이 더 이상 개발로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릉과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제작해 유네스코에 제출하는가 하면 주민모임 ‘정사모(정릉을 사랑하는 모임, 현 정릉마실. 대표 김경숙)’을 만들었다. 교수단지 재개발을 반대하는 의미로 각자의 집 대문에 예쁜 화분들을 내걸고 폐목재를 잘라 주택 담장을 따라 미니 화단을 길게 만들기 시작했다. 꽃길을 만들면서 주민들은 자기 집 담장 밑 화단은 자신들이 물을 주고 보살피며 가꾸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시작된 골목 꽃길은 ‘정릉교수단지 꽃길’로 유명해졌고 2014년 ‘서울, 꽃으로 피다’ 경관조성사업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주민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들이 정성껏 가꾼 자신의 집 정원을 공개하는 축제를 2년 전부터 열고 있다.

○ 정릉교수단지 정원페스티벌 5월 20일(금) ~ 5월 21(토)

#마을결혼식 #정릉교수단지 #스몰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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