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도시 서울의 꿈 '횡단보도'

정석

발행일 2015.11.12 16:59

수정일 2015.11.2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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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컴사랑

정석 교수의 서울 곁으로 (3) 걷는 도시 서울 만들기

얼마 전 남부순환도로 예술의전당 삼거리에 횡단보도 3개소가 모두 설치되어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과거에는 두 곳뿐이었다. 남부순환도로를 건너는 횡단보도가 양재역 쪽에만 있고 사당동 가는 쪽에는 없었다. 삼거리에 횡단보도가 두 곳 밖에 없으면 한 번에 건널 길을 불필요하게 두 번 건너서 가야 한다. 자동차를 편리하게 배려하고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자동차 위주 교통정책의 결과물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재작년 여름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러나 서울에는 여전히 횡단보도가 전혀 없거나 부족하게 설치된 교차로가 많다. 예술의 전당에서 멀지 않은 곳, 남부터미널역에서 서울연구원과 서울시인재개발원으로 넘어가는 삼거리에도 여전히 횡단보도는 두 곳뿐이다.

삼거리에는 횡단보도 3개소가 있어야 하고, 사거리에는 4개소 설치되어야 한다. 아니다. 사거리에 네 방향 횡단보도를 설치하고 여기에 대각선 방향까지 두개를 더해 총 6개소가 설치되면 최상이다. 보행자들이 원하는 목적지를 한 번에 건너가게 해주니 불편도 덜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횡단보도를 하나 둘 빼먹고 설치하면 보행자들은 안 건너도 될 위험한 찻길을 한 번 더 건너느라 고생해야 한다.

지하도나 육교만 있고 횡단보도가 아예 없는 교차로도 있다. 과거에는 지하철역이 교차로에 설치되면서 교차로 횡단보도를 일부러 없앤 적도 있다. 200미터 이내에 횡단보도, 육교, 지하도의 병행설치를 금지하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11조 때문이었다.

교차로 횡단보도는 그 도시와 그 나라의 보행권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척도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교차로의 모든 방향에 횡단보도를 당연히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진 도시로 알려진 뉴욕에서 이례적인 해프닝이 한번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 임기 중 일이었다.

줄리아니 시장은 만성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맨하탄의 자동차 주행속도를 올려보겠다며 교차로 횡단보도 하나씩을 폐쇄하였다. 보행자는 불편해도 우회해서 길을 건널 수 있을 것이고, 횡단보도 하나가 줄어들면 자동차들은 그만큼 지체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뚜벅이 뉴요커들이 들고 일어났다. 뉴욕에서는 차보다 사람이 우선이라 굳게 믿던 뉴요커들은 울타리를 쳐 가로막은 횡단보도를 보란 듯이 넘거나 돌아 건너다녔다. 찰스 코마노프라는 사람은 횡단보도 폐쇄로 인해 자동차를 탄 사람이 얻게 되는 시간보다 보행자들이 잃는 시간이 훨씬 크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뉴요커들을 응원했다. 결국 줄리아니 시장이 손을 들고 말았다.

서울을 자동차가 아닌 사람을 더 배려하는 도시, 보행권을 존중하는 도시로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꽤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다. 민선1기 조순시장 때 교통운영과에 녹색교통계가 신설되었고, 자동차 위주였던 덕수궁길이 보행자우선도로로 바뀌었다. 인사동과 대학로 등에 차 없는 거리가 처음 등장했던 것도 이무렵이었다. 민선2기 고건시장은 후보시절 걷고 싶은 서울 만들기를 자신의 첫 번째 공약으로 내세웠고 시장에 당선된 뒤에는 걷고 싶은 거리 만들기에 열정을 쏟았다. 이명박시장과 오세훈시장 때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청계고가가 철거되었고, 서울시청 앞과 광화문에 보행자광장이 조성되었으며 서울을 보행자와 대중교통 중심도시로 바꾸려는 노력이 강화되었다. 박원순시장 또한 보행친화도시 서울, 그리고 걷는 도시 서울에 대한 의지를 밝히며 서울을 사람의 도시로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다.

“걷는 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해 할 일들이 많겠지만, 그 중 첫째가는 일은 횡단보도의 전면적이고 완전한 복원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막힘없이 걷게 하는 것은 우리 몸의 피가 통하게 하는 것과 같다. 굵은 핏줄뿐만 아니라 모세혈관까지 피가 골고루 돌아야 건강하듯, 우리 도시에서 사람들이 어디든 편안하게 걸을 수 있어야 도시도 건강하고 활력이 넘친다. 지하도나 육교만 있고 횡단보도가 없으면 걷기 힘들어진다. 횡단보도의 간격이 너무 멀어도 마찬가지다. 휠체어와 유모차도 어디든 편히 다닐 수 있어야 한다. 무거운 짐가방을 든 사람들도 횡단보도가 있어야 편히 길을 건널 수 있다.

횡단보도 설치여부는 서울시가 아닌 서울시경찰청에서 결정한다. 현재는 횡단보도 설치여부를 한 건 한 건 따로 심의하고 있는데, 내 생각엔 서울시장과 서울경찰청장이 만나 대합의를 이루었으면 좋겠다. 서울시 모든 교차로에 횡단보도를 완전하게 복원하겠다고 말이다. 우리 마을과 나의 도시 서울을 뜨겁게 사랑하는 주민과 시민의 적극적인 요청과 응원이 있으면 빨라질 것이다. 걷는 도시 서울 만들기, 결국 우리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