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야 우지마라~ ‘이들’이 있다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4.12.04. 11:51

수정일 2014.12.04. 16:43

조회 432

강서노인종합복지관의 어르신

서울시립 강서노인종합복지관의 어르신 '연극동아리'를 찾아가 보았다. 4층 프로그램실 문 밖으로 애잔한 아코디언 연주가 새어나온다. 변사의 구성진 해설이 이어지는 가운데 눈물 없인 볼 수 없다는 '홍도야, 우지 마라' 연극 연습이 한창이다. 한국 연극사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는 악극이다.

"오빠 그이가 보고 싶어요. 언젠가는 꼭 저에게 돌아올 테죠?"
"잊어버려라 홍도야. 이 불쌍한 것아!"

창문 밖을 바라보는 홍도와 동생이 가여워 주르륵~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있는 오빠.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배역에 몰입하는 연극 동아리 회원들은 이미 타임머신에 몸을 실은 듯했다. 책걸상을 양쪽 벽에 붙여 만든 중앙 간이무대에 몰려 있던 동아리 회원들이 이번에는 간드러지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 '절도 있게 음을 끊으라'는 강사의 주문에 단원들이 다시 한 번 목청을 가다듬는다.

강서노인종합복지관의 연극 동아리는 15년 전 복지관 설립 이듬해 교육 프로그램으로 개설된 전통을 자랑하는 모임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연습을 이어가며 그동안 '미워도 다시 한 번', '댄서의 순정', '빨간 구두 아가씨' 등 1년에 한 편씩 연극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마을 축제는 물론 복지관의 입학식과 졸업식, 경로잔치 등을 찾아 이웃과 함께 즐기는 동아리이기도 하다.

연극 동아리

연극 동아리가 오랫동안 이어지고 성장해온 배경에는 회원 개개인의 노력이 깔려 있다. 재작년 방송통신대학의 2개 학과를 늦깎이 졸업했다는 김봉규(71)씨는 고희가 돼서야 시작했지만 "몸도 생각도 젊게 산다가 우리 연극 동아리의 신조"라며 껄껄 웃었다.

"연극을 하고 싶었지만 젊을 땐 먹고 살기 바빴죠. 아들 딸 키워 시집 장가보내 독립시키고 나니 시간이 남질 않았겠어요?" 안정숙(79)씨는 오랜 꿈을 실현하기로 했다. 발성연습을 겸해 노래교실도 신청하고 집에서 연습할 수 있도록 큰 거울도 들여놓았다.

최금순(82)씨는 올해를 끝으로 은퇴할 최고참 배우이다. 그는 "연극이 있고 10년을 동거동락한 아우님들이 있어 행복했다"며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듯이 만족스러운 이때가 적기란 생각에 용단을 내렸다"고 했다. 그는 "연극을 하는 동안 생을 귀히 여기고 값지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할 수 있었던 것이 큰 보람"이라고 덧붙였다.

악극을 이끄는 이들이 배우들만 있는 건 아니다. 소품 만들기와 코디에 능한 강성조(66)씨, 시적 감수성이 뛰어난 박정자(73)씨 등 회원 저마다의 재능과 열정 또한 동아리의 발전을 이끌고 있는 분들이다.

강서노인복지관의 '연극동아리'는 각종 마을 축제는 물론 강서어르신아카데미의 입학식과 졸업식, 경로잔치, 초등학교 운동회 등 세대를 넘나드는 공연을 펼치며 행복 에너지를 전파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어르신들을 만나고 난 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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