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나칠 수 없는 ‘효창공원 다섯 무궁화 이야기’
발행일 2021.06.17. 10:56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 의사의 유언이다. 효창공원 삼의사묘역에서 가묘 형태로 잠들어 있는 안중근 의사는 이제 한 그루 무궁화로 다시 태어나 살아있다.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 의사의 유언이다. 효창공원 삼의사묘역에서 가묘 형태로 잠들어 있는 안중근 의사는 이제 한 그루 무궁화로 다시 태어나 살아있다.
효창공원 상징조형물 점지와 연못 전경 ⓒ최용수
6월의 이른 아침 효창공원은 싱그럽고 고요하다. 정문인 창열문을 들어서자 파란 기둥이 하늘로 솟구쳐 창공을 뚫는다. 작은 연못 가운데 뿌리를 내린 효창공원 상징조형물 점지(點指)이다. 우리민족의 정기가 생명의 근원을 이루는 땅 내부로 귀결되어 소통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단다. 연못 옆 산책로에는 아침 운동을 즐기는 시민들이 오가고, 숲속에서는 스윙의자에 몸을 맡긴 시민들이 여유를 먹는다. 새소리 바람소리가 공원의 아침을 독차지한다.
효창공원 스윙벤치에서 여류를 즐기는 시민 ⓒ최용수
삼의사묘와 안중근 가묘(왼쪽) ⓒ최용수
상징조형물의 연못을 돌아 삼의사묘역으로 향하는 길은 오솔길 분위기이다. 건너편을 바라보며 순간 지나치기 쉬운 길, 이곳에 특별한 무궁화 다섯 그루가 자란다.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고 이곳 효창공원에 잠든 5명의 애국지사들이 무궁화로 환생한 것이다. 의열사, 삼의사묘역, 백범묘역, 임정묘역 등 효창공원에는 다른 볼거리가 많지만 순국선열의 삶과 정신을 온전히 담아낸 것은 바로 이곳 조형물과 무궁화다. 이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렸으면 하고 욕심을 내본다.
7명의 애국지사를 모신 효창공원 의열사 입구 ⓒ최용수
효창공원 의열사 모습 ⓒ최용수
① 안중근 무궁화
상징조형물이 있는 작은 연못을 끼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오른쪽 길가에 안중근 무궁화가 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하얼빈 역두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렸다. 그날 쏜 단총은 벨기에제(製) 브라우닝, 총기번호 262336이었다. 그의 유해는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 삼의사 옆에 가묘(假墓) 형태로 잠들어 있다. 돌아올 때까지 빈 무덤을 만들어 무궁화를 심고 땅 밑에 이 뜨거운 숫자 262336를 묻었다.
효창공원 상징조형물 인근에 있는 안중근 무궁화 ⓒ최용수
② 백정기 무궁화
“모자 하나의 영토 / 모자 하나의 대지 / 모자 하나의 하늘”
중절모 하나에 의지해 망명 혁명가로 살다간 백정기의 이름으로 나무 한 그루의 영토에 꽃 한 송이를 심고 대지에 모자를 씌웠다. 백정기 의사는 항일운동을 전개하면서 상하이에서 중국 주재 일본대사 아리요시 아키라 암살을 모의하다 체포돼 복역 중 순국했다. 안중근 무궁화 곁에서 중절모 이름표를 달고 무궁화로 환생해 자라고 있다.
중절모 하나에 의지해 망명 혁명가로 살다간 백정기의 이름으로 나무 한 그루의 영토에 꽃 한 송이를 심고 대지에 모자를 씌웠다. 백정기 의사는 항일운동을 전개하면서 상하이에서 중국 주재 일본대사 아리요시 아키라 암살을 모의하다 체포돼 복역 중 순국했다. 안중근 무궁화 곁에서 중절모 이름표를 달고 무궁화로 환생해 자라고 있다.
중절모 모양의 아나키스트 백정기 조형물 ⓒ최용수
③ 이봉창 무궁화
백정기 무궁화에서 돌다리를 건너면 세 그루의 무궁화가 있다. “소년 이봉창이 뛰고 놀던 효창공원에 터를 닦아 꽃은 땅에, 우리 가슴에는 잔디를 심는다. 살아서 이 고향 언덕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의 눈물 한 방울을 찍어 여기 새긴다.” 이봉창 무궁화 앞에 서있는 표석이다. 그는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궁성으로 돌아가던 일왕에게 수류탄을 투척해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같은 해 10월 10일 교수형을 받아 처형됐다.
이봉창 무궁화와 조형물 ⓒ최용수
백범 기념관 앞에 있는 이봉창 동상 ⓒ최용수
④ 윤봉길 무궁화
이봉창 무궁화 곁에는 11시 40분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무궁화가 있다. 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 40분,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제 침략자들의 천장절(천황탄생일) 축하행사 단상을 향해 물통형 폭탄을 던진 윤봉길의 시간을 담았다. 25세의 나이로 순국한 윤봉길 의사의 짧지만 강렬했던 생애가 83년이 지난 2015년 4월 29일 오전 11시 40분, 그 숭고한 뜻을 기려 효창공원에 무궁화를 심고, 쇠에 글을 새겨 그 시간을 영원히 고정시켰다.
폭탄을 던진 시간을 영구히 고정한 윤봉길 의사의 조형물과 무궁화 ⓒ최용수
⑤ 김구 무궁화
삼의사 무궁화 가운데 돋보기 모양의 철제 조형물이 서있다. 눈에 익은 돋보기안경, 백범 김구를 연상시킨다. “김구의 시선으로, 꽃 한 송이를 본다.” 상하이로 망명한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고 194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된다. 신민회, 한인애국단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이곳 삼의사(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무궁화 가운데 자리해 그의 역할과 비중을 짐작하고 남을 듯하다.
무궁화 앞에 세워진 돋보기 안경의 김구 조형물 ⓒ최용수
백범 김구 묘소 입구 모습 ⓒ최용수
“효창공원에 자주 왔지만 눈 여겨 보지 않아서 이런 무궁화가 있는 줄 몰랐어요. 부끄럽네요!” 인근에 산다는 한 시민이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물론 효창공원에는 다른 볼거리도 많다. 그러나 이곳 조형물과 무궁화를 소개하는 까닭은 삼의사와 안중근, 김구 선생의 삶과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낸 한 권의 현장 역사책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지 말아야 미래가 있는 법이다.
효창공원 안내도 ⓒ최용수
■ 효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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