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품은 '북한산', 본래 산 이름이 뭐냐면…

시민기자 최용수

발행일 2020.07.08. 09:57

수정일 2020.07.09. 09:12

조회 11,053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자 한강수(漢江水)야 / 고국산천(故國山川)을 떠나고쟈 하랴마난 / 시절이 하 수상(殊常)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청나라로 끌려가던 김상헌이 보았을 삼각산(북한산) 3봉

청나라로 끌려가던 김상헌이 보았을 삼각산(북한산) 3봉 ⓒ최용수

우리 귀에도 익숙한 이 시조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을 주창한 척화파 김상헌(1570~1652)이 지은 시조이다. 1640년(인조 18) 11월 반청 활동의 댓가로 노령의 나이에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충심과 슬픔이 절절하게 담겨있는 시조이다.

가파른 백운봉 암릉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모습

가파른 백운봉 암릉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모습 ⓒ최용수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에 따르면 올해 북한산을 찾은 탐방객은 3월 67만5,900명, 4월 71만4,633명으로 작년보다 무려 45%가 늘었다. 누구나 쉽게 나설 수 있는 만만한 산이 아닌데도 탐방객이 대폭 증가한 걸 보니 실로 놀랍다. 지속되는 코로나19 상황에 누적된 스트레스와 갑갑함을 해소하기에는 등산만한 게 없다는 걸 알게 된 까닭일까.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니 북한산이야말로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산인 것 같다.

북한산성 성곽길에서 바라본 삼각산 3봉(좌로부터 백운봉, 만경봉, 인수봉)

북한산성 성곽길에서 바라본 삼각산 3봉(좌로부터 백운봉, 만경봉, 인수봉)  ⓒ최용수

품 넓게 펼쳐진 산자락을 오르면서 내뿜는 들숨과 날숨에서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어가는 북한산, 이 곳에 수 백 년 동안 불리어왔던 고유의 이름이 있었다는 걸 아시는가. 북한산을 찾는 탐방객이라면 옛 이름과 삼각산을 이루는 3개의 주봉쯤은 기억하는 것이 서울의 진산(鎭山)에 대한 겸손이 아닐까 싶다. 오랜 세월 우리와 운명을 함께 하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삼각산의 주봉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위치를 알 수 있는 안내판

삼각산의 주봉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위치를 알 수 있는 안내판 ⓒ최용수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한반도 오악의 하나인 북한산의 본래 이름은 삼각산이다. 백운봉(836.5m) · 인수봉(810.5m) · 만경봉(799.5m)이 뿔처럼 각산(角山)을 이루어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사' 등의 기록에서 대부분 삼각산으로 표기된 것을 보면 고려시대에 ‘삼각산’이란 이름이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의 산행을 돕는 인수봉 인근의 경찰산악구조대

시민들의 산행을 돕는 인수봉 인근의 경찰산악구조대 ⓒ최용수

현재 불리고 있는 북한산이란 명칭은 1917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이던 일본인 금서룡(한국사 학자)이 ‘경기도 고양군 북한산 유적조사 보고서’에 명칭을 쓴 이후부터 삼각산과 혼용되어 쓰이다가 1983년 도봉산과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공식화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삼각산이라 부르면 북한산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 3봉우리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들 주봉 3개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휘날리는 태극기는 이곳이 서울의 최고봉인 백운봉(대)임을 말해준다

휘날리는 태극기는 이곳이 서울의 최고봉인 백운봉(대)임을 말해준다. ⓒ최용수

① 수도 서울에서 제일 높은 ‘백운봉’

 836.5m 높이의 백운봉은 삼각산을 이루는 3개의 봉 중 최고봉이다. 요즘은 백운대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중봉이라 불리기도 했다. 정상부에는 1,000여 명이 족히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가 있다. 그래서 돈대를 뜻하는 대(臺)가 붙은 백운대라는 이름을 가졌나 싶다. 너럭바위에서 20여m 더 오르면 최정상 백운봉이다. 동서남북으로 탁 트인 조망은 시원하고 거침이 없다. 맑은 날이면 인천 앞바다와 강화도 마니산은 물론 북한지역도 보인다. ‘白雲臺(백운대)’라 새겨진 바위 곁에는 약진하는 대한민국의 상징 태극기 365일 힘차게 펄럭인다. 북한산의 수많은 봉우리 중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는 봉우리는 최고봉인 백운봉만이 누릴 수 있는 자부심이다. 매년 새해가 되면 백운봉은 새해맞이 인파로 만원을 이룬다.

서울의 최고봉인 백운봉에 올라 태극기 아래에서 인증샷을 했다.

서울의 최고봉인 백운봉에 올라 태극기 아래에서 인증샷을 했다. ⓒ최용수

② 암벽등반의 메카 ‘인수봉’

백운봉 동쪽을 건너보면 흡사 민머리를 드러낸 듯 깎아지른 암봉이 보인다. 삼각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고도 810.5m의 인수봉이다. 멀리서 보면 흡사 아기를 업은 모습이어서 예전에는 부아악(負兒岳, 애를 업은 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해마다 국내 ·외의 등반가들이 찾아오는 암벽등반의 명소이다. 인수봉의 동쪽으로는 우이동계곡이 이어지고, 남동쪽 기슭에는 도선사가 있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다.

등산로 영봉코스에서 바라본 인수봉,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따라 암벽등반가들이 매달려 있다.

등산로 영봉코스에서 바라본 인수봉,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따라 암벽등반가들이 매달려 있다. ⓒ최용수

③ 1만개의 기묘한 형상 ‘만경봉’

삼각산의 3번째 봉우리는 고도 799.5m이 만경봉이다. 바위가 1만 가지의 기묘한 형상을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무학대사가 이 봉우리에 올라 한양도성 지을 곳을 살펴보았다고 하여 ‘국망봉’이란 이름도 얻었다. 1597년(선조 30)에는 만경봉이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크게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후로 조선 왕실은 만경봉에서 기우제와 기설제를 지냈다고 한다.

백운봉에서 바라본 만경봉(대)과 서울도심 풍경

백운봉에서 바라본 만경봉(대)과 서울도심 풍경 ⓒ최용수

김상헌이 청나라로 끌려갈 때 지났을 고양 땅(선유리)에서 북한산을 바라보니 주봉 3개가 어울려 선명히 ‘삼각산’을 이룬다. 삼국시대부터 북한산은 한반도를 지배하려면 반드시 차지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지금도 북한산 비봉에는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가 남아있다. 근래에는 의암 손병희 선생이 3.1독립운동을 구상하고 주역들을 길러 낸 독립운동의 산실이기도 하다. 

백운대 너럭바위는 탐방객들에세 소중한 쉼터를 제공한다.

백운대 너럭바위는 탐방객들에세 소중한 쉼터를 제공한다. ⓒ최용수

이제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변질된 이름 북한산과 백운대, 만경대 이름을 되찾아 줄 때가 되었다. ‘삼각산과 백운봉, 만경봉’으로 말이다. 그래야 삼각산(북한산)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찾아오는 시민들에게 넉넉히 품을 내어줄 것이다. 자연에 대한 진솔한 보답은 그를 기억함에서 출발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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