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동네, 서촌에서 숨은 명소 찾기

시민기자 김진흥

발행일 2019.11.06. 12:06

수정일 2019.11.06. 17:20

조회 4,761

서울시 종로구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 이렇게 말하면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촌’이라고 하면 얘기가 다르다. 서촌은 옛부터 '북촌'이라 부르던 이름과 달리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불리는 별칭이다. 서촌이라고 불린 것도 오래 되지 않았다. 본래 장의동, 장동으로 불렸던 서촌은 창덕궁 남쪽의 교동이나 북촌과 함께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들 중 하나다.

서촌은 길 따라 걷기 좋은 동네다. 다른 번화가들처럼 길이 반듯하고 직선으로 되어 있지 않고 미로 같은 꼬불꼬불 옛길이 많다. 하지만 서촌의 명소가 곳곳에 숨어 있고 역사적인 명소들도 군데군데 찾을 수 있다. 서촌은 걸어서 알 수 있는 곳과 숨은 매력들이 다양하다. 무엇이 있을까.

서촌 골목길 ⓒ김진흥

서촌 골목길 ⓒ김진흥

역사적인 인물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서촌

현재 서촌은 골목 사이로 카페와 갤러리들이 많다. 예술적인 풍취를 느낄 수 있어서 청년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런데 이곳은 예부터 예술과 관련된 것으로 유명하다. 서촌은 조선시대 역관, 의관 등 전문직인 중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근대에 들어서 화가 이상범과 이중섭, 시인 윤동주, 이상 등 예술가들이 서촌에 거주했다. 그래서 이들과 관련된 것들을 서촌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서촌 안쪽에 있는 수성동 계곡은 겸재 정선과 매우 밀접하다. 수성동 계곡은 겸재 정선이 이곳 자연 풍경이 매우 아름다워 그림으로 남긴 곳이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에 ‘수성동’ 그림이 그것이다.

겸재 정선이 찬사를 보냈던 수성동 계곡 ⓒ김진흥

겸재 정선이 찬사를 보냈던 수성동 계곡 ⓒ김진흥

하지만 이곳은 약 40년 전까지만 해도 자연이 아닌 아파트로 얼룩졌다. 1971년 계곡 좌우로 옥인시범아파트 9개 동이 들어서면서 빼어난 자연 경관을 잃었다. 그러나 2012년, 서울시가 수성동계곡 복원사업을 통해 아파트를 철거하고 이곳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이후 수성동계곡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아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시인 이상의 집 ⓒ김진흥

문학가 이상의 집 ⓒ김진흥

서촌에서 유명 시인 및 화가들의 거주지도 알 수 있다. 서촌에서 거주했던 대표 시인으로 이상(1910~1937)과 윤동주를 꼽는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7길 18에 위치한 ‘이상의 집’은 이상이 20여년 간 살았던 집터에 기념하기 위한 공간이다. ‘오감도’와 ‘날개’로 유명한 천재 시인 이상은 1911년부터 1934년까지 서촌에서 살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2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큰아버지댁에 옮겨 지냈다.

이상은 인생의 대부분을 서촌에서 보냈다. 1931년 시 ‘이상한 가역반응’을 시작으로 다양한 시와 소설을 신문에 연재했다. 그는 1931년과 1932년 사이에 무려 2,000여 점이라는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며 천재성을 알렸다. 하지만 계속된 밤샘과 피로로 인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이상의 집’은 옛 집에 대한 흔적을 볼 수 없지만 이상이 자라고 지낸 자리에서 이상의 문학집과 자료들을 엿볼 수 있는 기념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윤동주 하숙집 터 ⓒ김진흥

시인 윤동주 하숙집 터 ⓒ김진흥

‘별 헤는 밤’ 등으로 유명한 시인 윤동주도 서촌과 관련되어 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現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윤동주는 서촌에서 6개월간 거주했다. 자신이 존경하는 소설가 김송이 살던 집에서 하숙 생활을 했다. 이곳에서 그는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수성동 계곡 가는 길에 있는 윤동주 하숙집 터는 많은 관광객들이 발걸음을 멈춰 사진으로 남기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외에도 서촌은 화가 이상범이 거주했던 ‘이상범 가옥’과 그의 제자인 박노수 화백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도 있다.

벽수산장 입구를 알려주는 두 돌기둥 ⓒ김진흥

벽수산장 입구를 알려주는 두 돌기둥 ⓒ김진흥

역사적 아픔의 흔적이 서려 있는 서촌

서촌 일대는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매우 큰 별장이 세워졌다. 99칸 한옥과 함께 10여 년간 지은 프랑스식 호화 건물이 있었던 ‘벽수산장’이다. 원래 이곳은 송석원이 있었다. 조선시대 인왕산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평민시인 천수경을 비롯한 여러 시인들이 시사를 지은 곳이었다. 1910년 순정황후 윤씨의 백부 윤덕영이 송석원 일대를 매입했다. 그가 매입한 규모는 옥인동에서만 16,628평 정도로 알려졌다. 윤덕영은 왕의 외척이자 대표적인 친일파로, 한일 합방 당시 일본에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순종에게 일본 왕실 참배를 종용하는 등 앞잡이 역할을 자처했다.

드넓은 땅에 대저택을 지으며 '아방궁'이라는 별칭이 있던 벽수산장은 1935년 완공된 이후 홍만자회 조선지부에서 임대해 사용했다. 이후 세월이 흘러 1966년 4월 5일 화재로 전소됐고 1973년 6월 도로정비 공사로 인해 철거됐다. 현재 벽수산장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은 서용택 가옥과 박노수 가옥이다. 그리고 벽수산장의 입구로 볼 수 있는 두 돌기둥 흔적도 있다. 지금은 돌기둥들이 훼손되어 있지만 벽수산장의 면적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약국 위치가 예전에는 친일파 이완용의 저택이었다 ⓒ김진흥

약국 위치가 예전에는 친일파 이완용의 저택이었다 ⓒ김진흥

이 주변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는 옛 벽수산장 일대를 ‘엉컹크 길’이라고 부르곤 한다. 한국전쟁 이후 UNCURK(United Nations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라는 UN국제기구가 화재로 소실되기 전까지 벽수산장에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언커크, 언컨크’로 불리다가 ‘엉컹크’로 됐고 주변 길을 ‘엉컹크 길’로 부르면서 탄생했다.

 포도나무 아래로 걷는 서촌 골목길 ⓒ김진흥

포도나무 아래로 걷는 서촌 골목길 ⓒ김진흥

주렁주렁 달린 포도 아래로 난 꼬불꼬불 옛 서울길

도시에서의 길을 떠올린다면 대부분 반듯한 길, 대로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도심 속 서촌은 옛 서울길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서울에서 보기 힘든 미로 같은 길부터 감나무, 포도나무 등 과일 나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옥과 좁은 골목길이 만들어 낸 레트로 감성은 서촌만의 매력이다. 앞서 말했던 곳들 대부분이 대로가 아닌 골목길에 있다.

심지어 골목길 사이로 마을버스가 지나간다. 정류장이 없음에도 사람들은 어느 장소에 머무르고 마을버스는 그곳에 멈춰 그들을 태운다. 마치 이 마을만의 규칙이 있는 것처럼 당연하듯 말이다.

서촌 골목길 구석에 있는 이상범 가옥 ⓒ김진흥

서촌 골목길 구석에 있는 이상범 가옥 ⓒ김진흥

그러기에 처음 서촌을 찾은 사람에게는 쉽게 헤맬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촌을 처음 찾는다는 한 시민은 “다른 동네들과 달리 골목길이 너무 많아 여기가 어딘지 헷갈린다. 버스가 지나가는 것 같아 타고 싶은데도 정류장이 어딘지 몰라 헤맸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서촌을 더 걷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촌을 종종 방문한다는 한 시민은 “서촌은 차보다 걷기 좋은 동네다. 걸어야 볼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서촌을 제대로 보려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산책하며 걷는 것을 추천한다”라고 전했다.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서촌 산책길 프로그램 ⓒ김진흥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서촌 산책길 프로그램 ⓒ김진흥

서울시는 서울시내 곳곳에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산책하듯 걷는 도보관광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서촌이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함께 걸으며 서촌의 역사와 문화, 과거와 현재 등 다양한 정보들을 약 2시간에 걸쳐 배울 수 있다. 서울시가 추천하는 서촌 산책, 더 추워지기 전에 한번 서촌을 거니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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