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 명소들...조선어학회 흔적을 찾아서

시민기자 김진흥

발행일 2019.02.07. 16:38

수정일 2019.02.07. 16:38

조회 4,541

영화 ‘말모이’의 감동을 안고 찾아간 종로 ‘조선어학회 터’

영화 ‘말모이’의 감동을 안고 찾아간 종로 ‘조선어학회 터’

지난 1월에 개봉한 영화 <말모이>가 관객 수 280만 명을 넘기며 뜨거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말모이>는 일제의 통치가 가장 극악했던 1940년대에 ‘조선어학회’가 펼친 거국적인 사전 편찬 사업을 그린 영화다.

조선어학회는 우리의 얼을 지키기 위해 한글을 모아 사전을 편찬하고자 했다. 그래서 한반도에 있는 모든 말들을 모은다는 뜻으로 ‘말모이’ 작업을 펼쳤다. 1942년 10월, 조선인 민족말살 정책으로 한글을 연구한 학자들을 투옥시킨 ‘조선어학회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조선어학회의 노력은 계속됐다.

영화 <말모이>의 토대가 된 조선어학회는 서울이 배경이었다. 서울 곳곳에는 실제 ‘말모이’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서울 속 조선어학회와 관련된 장소들을 좇아본다.

① 실제 말모이 작업을 했던 곳 ‘조선어학회 터’

조선어학회 회관이 자리했음을 알리는, 종로구 ‘조선어학회 터’ 안내문

조선어학회 회관이 자리했음을 알리는, 종로구 ‘조선어학회 터’ 안내문

영화 <말모이>에서는 문당책방 지하에서 말모이 작업을 펼쳤다. 하지만  실제 조선어학회는 조선어학회 회관에서 말모이 작업을 진행했다.

조선어학회는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해 있었다. 조선어학회가 서울의 중심인 종로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정세권의 역할이 컸다. 당시 조선어학회 대표 이극로로부터 조선어학회 건물이 없다는 소식을 들은 정세권은 종로구 화동 129번지 1호 소재의 대지 32평 부지를 매입했다. 지금 시가로 땅값만 계산해도 12억 8,000만 원에 달한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정세권 선생은 1935년 2층 양옥의 건물을 완성하고 이를 조선어학회에 기증했다. 조선어학회는 1935년 7월 11일 이곳에 입주했다. 1층은 조선어학회 대표 이극로의 살림집으로, 2층은 조선어학회 사무실 겸 사전편찬실로 사용했다. 이극로, 이중화, 한징, 정인승, 권덕규, 정태진, 권승욱, 이석린 8명의 사전편찬 정리위원들을 중심으로 이곳에서 사전을 편찬했다.

조선어학회는 이곳 회관에서 여러 업적을 남겼다. 조선어 표준말 사전 작업을 완수해 1936년 한글날에 발표했다. 그리고 조선어대사전 편찬 사업을 통해 16만 개에 이르는 우리말 어휘의 뜻풀이를 완료했다. 그것을 대동출판사에 넘겨 1942년 조판까지 진척했다. 하지만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인해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작업이 중단됐다.

당시 조선어학회 2층 사무실 입구에는 한글로 “일없는 사람은 들어오지 마시고 이야기는 간단히 하시오”라는 문구를 붙여 뒀다고 한다. 그만큼 위원들과 회원들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 하겠다.

84년 전, 이곳에 조선어학회 회관이 있었다

84년 전, 이곳에 조선어학회 회관이 있었다

영화 <말모이>에서 그려진 장면 중 실제 조선어학회가 펼쳤던 것들도 많다. “전국의 사투리를 보내달라”는 광고와 많은 사람들이 사투리를 보내온 우편들, 표준어 확정을 위해 전국 국어교사가 모여 공청회를 연 것은 모두 사실이다. 또한 영화에서 호떡이 자주 나오는데, 실제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호떡으로 겨울을 보내곤 했다. 왜냐하면 조선어학회는 추운 겨울날, 난로도 넉넉히 때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먹을 것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종로구 화동에 조선어학회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건물 터를 알리는 푯말만 있다. 영화 개봉 전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최근 영화의 인기로 관심 있게 둘러보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시민 이수영 씨는 “전에는 여기에 조선어학회 건물 터가 있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화 <말모이>를 보고 가까운 곳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걸 알았다. 건물이 남아 있다면 좋았을텐데 아쉽다”고 전했다.

조선어학회 건물 터(종로구 율곡로3길 74-23)는 3호선 안국역에서 북촌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② 2만6,500여 장 사전 원고지가 발견된 ‘경성역’ 창고

기적적으로 사전 원고가 발견된 서울역

기적적으로 사전 원고가 발견된 서울역

일제 강점기 경찰은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단체로 판단해 탄압했다. 사전 원고를 압수했고 이극로를 비롯한 33인의 관련자들을 검거했다. 모진 고문으로 이윤재와 한징은 옥사했고 16명은 내란죄로 함흥형무소에 수감됐다.  이것이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에서 일제 경찰에 빼앗긴 원고지는 2만6,500여 장이라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십수 년 간 작업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위기였다. 조선어학회 사건 3년 후,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했고 조선어학회 학자들이 모두 석방되면서 사전 원고를 찾기 시작했다.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된 '말모이' 원고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된 '말모이' 원고

다수의 사람들은 사전 원고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1945년 9월 8일, 광복을 맞이한 후 경성역 조선통운(現 CJ대한통운) 창고에서 사전 원고가 발견됐다. 2만 장이 넘은 사전 원고는 함흥지방법원에서 경성고등법원으로 보낸 상고심 재판 관련 서류에 포함돼 있었다. 해방을 맞으면서 서울역 창고에 방치됐다가 발견된 것이었다.

서울역에서 발견된 원고는 1947년 <조선말 큰사전> 첫 권으로 태어났다. 주시경 선생의 뜻으로부터 출발했던 사전 편찬 작업의 첫 작품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이후 10년 간 6권을 완간하며 작업이 종료됐다.

③ 세종로공원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

광화문 세종로공원에 있는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

광화문 세종로공원에 있는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

광화문광장 옆 세종로공원에는 조선어학회의 뜻과 정신을 담은 탑이 있다. 조선어학회 사건이 일어난 지 72주년이 됐던 해인 2014년에 한글학회와 서울시는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을 세웠다. 혹독한 일제강점기에 목숨을 걸고 우리말 우리글을 지켜낸 조선어학회 선열들의 거룩한 뜻과 정신을 길이 전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이 세워진 게 된 것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글학회 김종택 회장이 2010년 12월 20일,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청원서를 냈다. 이듬해 당시 김황식 국무총리의 주선으로 2011년 6월 3일 서울시장 면담이 이뤄졌고 기념탑 건립으로 결실을 맺었다.

기념탑 옆에 적혀 있는 33인 위인들

기념탑 옆에 적혀 있는 33인 위인들

기념탑은 10m 높이의 청동과 오석 재질로 이뤄졌다. 조선어학회 수난으로 구금돼 탄압을 받은 33명과 조선어학회의 운영 및 큰사전 편찬 사업에 공헌한 24명,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투쟁기, 옥중 고문기 등이 새겨져 있다.

④ 조선어학회의 정신을 이어가는 ‘한글학회’

종로구 신문로에 자리한 한글회관, 조선어학회는 오늘날 ‘한글학회’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종로구 신문로에 자리한 한글회관, 조선어학회는 오늘날 ‘한글학회’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우리말을 지키고자 애썼던 조선어학회는 현재 ‘한글학회’라는 이름으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1908년 8월 31일 주시경과 김정진 등이 창립한 ‘국어연구학회’를 모체로 하여 1921년 12월 3일 국어학과 국어운동의 선구자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10여 명이 모여 한국 최초 민간 학술단체인 ‘조선어학회’를 재건했다. 광복 후 1949년 9월 5일, 조선어학회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날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글학회(서울시 종로구 신문로)는 한글 문화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 가게 이름 선정, 휴대전화 쪽글(문자) 자랑, 한글 손글씨 공모전 등 우리말과 글에 대한 진흥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정기 간행물인 <한글>을 발행해 500호가 넘길 정도로 역사가 깊다.

이 외에도 주시경 선생과 헐버트 선생의 업적을 기린 ‘주시경 마당’, 영화 소재인 우리말 사전을 직접 볼 수 있는 ‘국립한글박물관’ 특별전 등이 있다. 특히, 국립한글박물관 ‘사전의 재발견’ 전시는 영화 상영과 함께 방문한 시민들이 급증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국립한글박물관은 2019년 3월 3일까지 전시 기간을 연장했다.

한글학회 입구에 있는 주시경 선생 흉상(좌),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사전의 재발견’ 전시 포스터

한글학회 입구에 있는 주시경 선생 흉상(좌),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사전의 재발견’ 전시 포스터

한글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지만 일제강점기 속 우리말과 글을 지킨 인물들과 단체의 활동을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화 <말모이>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조선어학회와 조선어학회 관련자들에 대해 인지하고 의미있는 장소들을 찾아가 그 뜻을 되새겨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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